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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Mar 03. 2024

우리는, 500살까지 살게 될까?

 

 열아홉 살 때 일이다. 당시 내가 아는 문학가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는 막 서른을 넘어가며 우울함에 가을을 타곤 했다. 휴대폰이라는 것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으므로 메시지보다 이메일을 많이 주고받던 시절이었다. 나는 우울해 보이는 나의 선생님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메일의 내용은 다짜고짜 이렇게 시작했다. 열아홉 살인 나는 앞으로 140살까지 살 계획이라고. 과학이 발전할 것이고, 나는 워낙 건강 체질이니 아마 그때까지 사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고. 그리고 100살쯤이 되면 창원시 시장 선거에 한 번 출마해 보고 싶다고. 백 년 동안 모인 지혜와 통찰력이면, 어쩌면 당선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리고 당돌하게도, 선생님은 140살이 좀 많아 보이면 120살까지만 사시라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도 선생님은 아직 인생의 1/4 밖에 살지 않은 것이니 내가 보기엔 애기 같다, 그러니 우울해하실 필요가 없다. 100살 넘어까지 살 거니까 미래의 계획을 세우시라. 오래 살 거라고 장담하며 젊게 살다가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으면 그것 또한 축복 아니겠나, 뭐 이런 내용이었다.


 참 맹랑하기도 하지, 열아홉 주제에 서른한 살 선생님에게 이런 편지를 쓰다니. 그때의 선생님의 나이를 훌쩍 넘긴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기가 차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때 이 말에 꽤 위안을 받으신 듯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내가 보낸 편지를 아이들에게 수차례 읽어 주셨다며 내가 서른 살 즈음되던 해에 이 메일을 전달해 주셨다. 그래서 지금도 내용을 꽤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입에 발린 말도 아니었고 위로를 하려고 지어낸 말도 아니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과학의 힘을 믿었다. 2020년대에 들어서며 초고속으로 변하는 과학이 실제로 하나씩 입증을 해주고 있다. 요즘은 그런 뉴스를 과학 커뮤니케이터들 덕에 거의 실시간 급으로 빠르게 받아볼 수 있어서 나의 희망은 더욱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되도록 오래 살고 싶다. 빨리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의 순간을 지각하는 것이 너무 무섭고 죽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최대한 그 순간을 멀리 하고 싶다. 그렇기에 내가 열아홉 살에 제시했던 저 미래 계산법은 나 같은 사람에게 꽤 희망적인 것이다. 죽음을 멀리 뒤로 밀어 두고 어느 날 예상치 못하게 죽어버리는 것이 나의 죽음에 대한 계획이다. 그렇다고 더 오랜 세월이 나에게 주어진다고 해도 나태해 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날 급작스럽게 죽을지도 모르는 변수는 늘 염두에 두어야 하고, 오래 살려면 건강한 신체와 경제적인 능력도 무척 중요하니까.  

   

 이제 사람이 200살에서 500살까지 살 것이라는 예측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사람의 장기, 세포, 혈액 등등을 갈아줘야 할 수도 있지만 임플란트 시술을 하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게 받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내가 진짜 200살까지만 산다면, 나는 지금 39세, 인생의 1/5밖에 살지 못한 여전한 애기인 셈이다. 어차피 우리는 살아보지 못한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부모님이 나이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으면서도 직접 내가 맞닥뜨리는 30대는 너무나 생경하고 새롭다. 나는 영원히 아이일 줄 알았는데 나도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 어떨 땐 새삼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요 몇 년 정말 이상한 일이 생겼다. 38살이 되면 39살이 되고 다음엔 40살이 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런데 1984년생인 나와 내 친구들은 현재 3년째 39살을 맞이하는 중이다. 2022년에는 한국 나이로 39세였다. 2023년에는 상반기에 잠깐 40세로 올랐다가 정부 규정에 따라 만 나이가 적용되면서 7월 1일부터 도로 39세로 돌아갔다. 2024년에는 생일이 되기 전까지 여전히 39세이다. 이렇게 정해놓고 보니 진짜 나이란 숫자에 불과한 것이라, 3년째 39살로 살아가는 희한한 상황이 생겼다. 나는 생일이 8월 29일이니까 거의 3/4분기까지 39살로 계속 사는 것이다. 아직 30대처럼 명랑하고 핑크색을 좋아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걷는 대신 우다다다 뛰어다닌다. 아직 인생의 1/5 밖에 살지 않았는데 충분히 그래도 괜찮은 것 아닐까.


 몇 년 전 사진을 돌아보면 그때 참 못 생기게 찍혔다고 생각했던 것도 탱글탱글 어리고 이쁘다. 그럼 지금 사진도 10년 후에 다시 보면 얼마나 예쁠 텐가.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고 자신감 있게 살아가기로 했다. 그래서 몇 년째 마지막 발악이라고 하면서 레몬 색으로 탈색을 했다가 핑크색으로 염색을 했다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산다. 누가 뭐라고 하면 어떤가. 누구에게 예쁘게 보일 일 없으면 어떤가.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겠다는데 어느 누가 와서 때리기라도 하겠는가.


 지금 쓴 내 글을 70세가 된 내가 보고 위로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50살임이 자각되는 어느 날 훅 하고 명치가 찌릿해 올지 모르겠고 60살이 되는 해에 ‘아, 이제 나는 좀 늙은 것인가?’ 자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손에 쥐게 되는 경험과 지식 지혜 경력과 같은 걸 써먹으며 여유 있게 늙어가면 좋겠다.


 그리고 말이다. 어쩌면 나 아직 늙은 거 아니라고 이렇게나 긴 글을 쓰며 자기위안을 하는 건 늙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큰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차피 늙을 거, 겉으로라도 쫄지 않겠다. 싸움에 기선제압이 팔 할이듯, 세월에 내가 먼저 숙이고 들어가지 않을 테다. 




핑크로 염색했는데 잦은 탈색+염색 때문에 이제는 더이상 머리카락이 색깔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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