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나에게도 1억이 모였다> 그 후
강의를 종종 나간다. 사실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라 사람들 앞에서 몇 시간씩 떠들어야 하는 강의를 준비하는 것이 꽤 부담스러운 편인데, 사주에 강의가 있다더니(?) 비대면 시대에도 화상강의 의뢰까지 꾸준히 들어오니 감사한 일이다. 가끔 강의에 나가 수강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정말 많은 영감을 떠오르게 한다. 30대 초반에 내 강의를 듣고 찾아온 한 대학생이 "그래서 선생님, 어떻게 하면 1억을 모을 수 있어요? 1억 모은 이야기 좀 자세히 해 줘 봐 봐요"(진짜 말투가 이랬다) 하는 바람에 <서른 살, 나에게도 1억이 모였다>를 쓸 수 있었고 얼마 전에 만난 학생은 "그래서 선생님, 서른 살에 1억 모으고 나서 무슨 변화가 있었나요? 현재는 어떻게 살고 있나요?"라고 해서 이 글을 풀어본다.
살림이 풍족하지 않아 냉동 삼겹살 먹으며 사이다 하나 못 시키고 참던 20대의 나와, 치열하게 돈을 모으고 내 앞가림한 후의 30대의 내가 사는 모습은 꽤 달라져 있긴 했다.
<나의 20대>
서두에 부연설명을 조금 하자면,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부모님이 삼겹살 집에서 사이다 한 병 못 사줄 정도는 아니었다. 부모님 덕에 알바 한 번 하지 않고 대학교, 대학원까지 무사히 졸업했고 그 후로 나 혼자 홀로서기를 하며 한 5년 정도를 고생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착실히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생뚱맞게 무협 영화를 보고 감동받아 강호에 나가서 무술 하며 살겠다며 수능 치는 대신 북경 체육대학으로 무술 유학을 가 버렸다. 한 줄로 쓰니 순탄해 보이지만 그 과정에 부모님과 얼마나 마찰이 많았는지 모른다. 다리몽댕이 하나 정도는 가뿐하게 위협할 수 있는 보수적인 경상도 아빠를 설득해서 겨우 북경행 티켓을 마련했다. 집을 떠나면서 앞으로 내 인생은 내 뜻대로 하겠노라 큰소리를 쳤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무술을 하게 되었고 나름 열심히 하여 우슈 국가대표로 발탁도 되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보니 꿈을 좇아서 중국 무술을 꽤 잘하게 된 나의 능력치는 사회생활에서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나를 써주려는 사람도 없었고 능력을 발휘할 곳도 마땅히 없어 보였다. 하도 앞이 캄캄하게 길이 보이지 않으니 "길거리에서 도복 입고 무술 동냥을 해볼까?"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 와중에 사업을 해보겠다는 결심이 섰고 자본금 0원으로 인터넷 판매 사업을 시작했다. 낮에는 직장을 다니며 밤에는 투잡으로 물건을 팔았다. 그저 부모님 얼굴 보기 쪽팔려서. 내 고집대로 나 잘난 척하며 동분서주 열심히 살았는데 성인이 되어서 제 밥그릇 하나 못 챙기면 아빠가 "야,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집에 내려와서 가게 일이나 거들고 취업 준비 더 해 봐." 이럴까 봐. 이를 악물고. 커피 한 잔 못 사 먹고 미용실 가서 머리 한 번 못 하고. 버는 족족 죄다 모았다. 그리고 만 원 한 장이라도 더 벌려고 하루에 쪽잠 두 시간씩 자면서 틈만 나면 인터넷에 물건을 올려서 팔았다. 그랬더니 28,29,30살 만 3년 동안 1년에 약 3,000만 원+@ 씩 저축이 되어 30살 겨울에 1억을 모았다. 방법은 단순하지만 작정하고 이렇게 모으는데 돈이 안 모아지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2억은 쉬웠다>
한 번 해 놓은 게 있으니 두 번째는 쉬웠다. 30대 초반부터는 잠을 좀 많이 잘 수 있었고 건강 걱정도 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첫 1억을 모으면서 마우스 클릭을 하도 많이 해서 검지 손가락에 깁스도 했고, 오래 앉아 있어서 등이 아파 정형외과에 뼈주사도 맞으러 다녔기 때문이다. 그나마 20대였기 때문에 위가 아프다거나 간 수치가 떨어졌다거나 하는 심각한 건강악화는 닥치지 않았던 것 같다. 투잡으로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졌고 직원을 고용할 여유도 생기고. 회사를 키우고. 그러면서 나는 피부관리도 좀 받을 수 있었고 미용실도 다니기 시작했다. 돈을 여기까지 잘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주거 겸 사무실로 이용하던 오피스텔을 전세로 옮기면서 눈에 불을 켜고 전세 대출금을 갚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습관이라는 게 잘 안 바뀐다고, 근검절약하는 습관이 들어 놓으니 쉽게 바뀌진 않았다. 시간은 있고 앞으로도 돈은 쭉 벌면 되지! 하는 자신감이 생기니 20대 때보다는 마음적인 여유를 가지고 저축을 할 수 있었다.
<돈 쓰는 것에 맛이 들리다>
나의 꽃다운 20대는 츄리닝과 작업복으로 마감했으나 30대는 그래도 좀 꽃답게 살으리... 라고 다짐했지만 꾸미는 것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었나 보다. 예쁜 것, 좋은 것을 봐도 그렇게 좋은 지 모르겠고 프리미엄 잔뜩 붙은 명품은 아직 나와 수준이 맞지 않는지 하나 사 보려 해도 도무지 마음이 땡기지 않았다. 다만 내 통장의 잔고를 생각하니 흐뭇해져서 동생 유학 가는 데에 3,000만 원을 보태줬고 부모님 환갑 때는 각 1,000만 원씩 용돈을 드릴 수 있었다. 5억, 10억, 50억 모으면 뭐하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 그들을 기쁘게 할 수 있을 때 돈을 쓴다면 그것이 값어치라 생각해서 그랬다. 아빠가 천만 원짜리가 든 수표를 꺼내 들고 (정말 물리적으로) 몸을 들썩 거리며 놀라는 모습을 보니 '아, 부모님들이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서 우리에게 그렇게 노력하셨구나', 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부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 가족을 돈 때문에 서럽게 만들지 않을 거라고. 누군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때 준비된 딸이 되어 있겠노라고. 그런데 이렇게 목돈이 쑹덩 쑹덩 빠져나가니 돈 모으기에 막 박차를 가하던 것에 살짝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쇼핑에 맛이 들리다>
좋은 핸드백을 사는 대신 내가 좋아하게 된 수집벽이 생겼는데 바로 땅문서를 모으게 된 것이다. 부동산으로 재테크를 하려면 단돈 천만 원이라도 종잣돈을 모으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다. 좋은 땅이 없는 게 아니라, 여유돈만 있으면 좋은 땅은 세상에 많다. 땅 투자는 10년 이상을 보라고 했던가. 일단 사 두고 무슨 일을 하지 않더라도 배부르다. 땅은 사는 게 가장 쉽고 파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하긴 하던데 어떻게 처음 산 땅이 대박이 날 수 있겠는가. 처음 몇 개의 땅은 공부하는 셈 치고 날려도 된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에 쓸모없는 땅은 없다. 나중에 안 팔리면 내가 그 땅에 꽃도 심고 나무도 심고 농가주택 하나 지어서 살며 개들을 마음껏 뛰어다니게 키울 수도 있다. 경기도 외곽의 저렴한 곳은 평당 10~20만 원에, 1~2 필지 1,000만 원 내외로 살 수 있는 땅들도 많았고 내 마음이 가는 땅을 하나 둘 사기 시작했더니 이거 원, 땅 사려고 돈을 모으는 꼴이 되었다.
그중에 가장 잘한 일이 지금 있는 경기도 이천 변두리의 땅을 사서 자그마하게 우리 소유의 사옥을 지은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kYKtdo5EiA) 사실 여기에 투자하느라 나는 이제 현금이 거의 없다. 도시에서 2개 층을 쓰던 사무실을 한 층으로 줄이고, 한 층의 월세만큼 대출 이자를 내며 겨우 돌아가는 사옥이지만 그래도 우리 땅에 우리 건물을 짓고 다시 어디론가 이사 갈 걱정을 하지 않으며 사니까 참 좋다. (여기 오기 전에 4년 동안 3번의 이사를 했다.) 여기서 더 큰 곳으로, 옆 땅까지 더 크게 넓혀서 가는 것을 목표로 일을 하니 또다시 돈 모으는 재미가 생겼다. 가장 좋은 점은 마당에서 개 네 마리를 실컷 자유롭게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시골로 와보니 우와 시골 생활 왜 이렇게 좋아! 나에게 딱 맞는 곳 같다. 시골에서 1년을 살고 낸 결론은 앞으로 나는 또 열심히 돈을 모아서, 아파트가 아닌 회사 근처의 마당 있는 내 땅의 내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것이다. 내 집과 내 회사가 있고 계속 일을 할 수 있으면 30대를 마감하는 즈음인 지금, 나름 나 또 열심히 잘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만족했으니 나름 성공? ㅎㅎ)
어린 친구들에게 "1억 모으면 뭐가 달라져요." 하는 질문을 수십 번 들은 것 같다. 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이면 1억이라는 금액이 모호할 테다. 이 질문을 했던 사촌동생에게 "야, 1억으로 살 수 있는 거 없어, 더 모아야 해."라고 이야기했다가 무책임했던 것 같아 집에 와서 따로 메시지를 보내 주었다. 누나가 얼마 전에 회사 차가 한 대 필요해서 포터 트럭을 보았다가, 렉스턴을 보았다가 이것저것 비교하다가 결국 인간의 욕심의 끝을 보았노라고. 내가 구매했던 내 첫 차는 무려 포드에서 나온 F150이었다고. 정말 간지(!)나는 차였다. 조그만 내 체구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차가 너무 커서 주차 한 번 하려면 진땀을 엄청 빼야 했지만. 그래서 2년 만에 되팔았지만 1억을 모으면, 2억, 3억은 차례로 모으게 되고, 음료수 한 병 값에 손 벌벌 떨던 내가, 어느새 유지비 많이 들어도 내가 타고 싶은 차 한 번 타 보게 되는 거라고.
<진짜 부자는 시간 부자>
종잣돈을 모았을 때의 장점은 금전적인 자유보다는 시간적인 자유를 얻은 것이 더 크다. 이를테면 성수기 대신 비수기에 여유롭게 여행을 한다거나. 볼 일이 있으면 평일에도 내가 할 일만 재빨리 처리해 놓고 회사를 나갈 수 있는.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단연코 봄과 가을이라 생각한다. 바쁜 일이 있으면 며칠 밤낮을 꼬박 일에 바칠 때도 있지만 상황이 허락할 때는 제주도로, 창원 부모님 집으로 휭 가버릴 수 있는 것이 자영업의 진짜 묘미 아니겠는가. 사실 시간을 조금 더 투자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젊은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적당히 절충하며 살고 있다.
매일 아침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고, 오후가 되면 동네 뒤편 복숭아밭 근처로 개들을 끌고 산책을 한다. 개를 산책시키는 건지 내가 산책당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함께 매일 산책을 하니 개들도 나도 근육이 늘고 더욱 건강해졌다. 매일 땀 흘리며 운동할 시간이 있고 매일 노트북을 켜 놓고 글을 끼적거릴 수 있어서 만족한다. 일을 더욱 많이 벌여서 할 일은 더욱 많아졌지만 이쁜 직원들이 고맙게도 제 역할들을 잘해주어서 더 많은 일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일을 하며 불편하거나 힘든 인맥들을 정리하니 마음 쓸 일도 스트레스받을 일도 적어 편해졌다. 20대까지는 뭣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며 시간을 많이 버렸지만 30대가 되고 난 후에는 무슨 큰 영광을 누리겠다고 내가 참아가며 돈을 벌어야 하나 싶어 미운 사람들을 정리했더니 오히려 일의 효율이 오르더라. 지금은 딱 마음 맞는 직원들, 딱 마음 맞는 인연들과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시간 부자 마음부자가 아닐 수 없다.
<30대의 장래희망>
그리고 시간이 허락해 준 덕에 좋은 작가가 되려고 부지런히 공부 중이다. 첫 책이 나오고 나서 글공부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일 년에 나오는 책이 4만 여권이라고 하는데. 누구나 마음먹으면 책 한 권 내기가 예전처럼 어렵지도 않은 세상에, 내 책 한 권은 오롯이 땀과 피가 스며든 좋은 작품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문학을 좋아하기도 했기 때문에 시 수업, 소설 수업을 듣는 것이 즐거웠다. 즐겁게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다 보니 올해 운이 좋게도 <한국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등단을 했다. 무술에 심취해서 칼밥 먹고 살 줄 알았던 내가 글밥 먹고살게 될 줄이야. 인생은 모를 일이다. 40대에는 더 여물고 성숙한 좋은 작가로 발돋움하고 싶다. 돈돈돈 거리며 돈 벌고 돈 모으는 데에 매진한 데에 이어 뭔가 자아실현적 욕구가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꿈이 있다면 과학 공부를 꾸준히 해서, 나이가 들어도 좋으니, 아마추어라도 좋으니 언젠가 과학도가 되어보고 싶은 것이다. 천생 문과생이었던 내가 과학과 조우하게 된 것은 30대 중반. 그저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며 세상의 신비로움을 접하고 있는데 성취감이 매우 크다.
내 입에 풀칠하기 바빴던 어린 시절과 다르게 나를 돌아보는 여유가 생긴 것은 30대의 장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서른 되는 걸 두려워하지 말걸. 40대는 더 여유롭고 더 좋은 일이 많을까? 긴장되긴 하지만 용기 있게 부딪혀 봐야지. (내년에 40 아닙니다, 내년에 38.... 벌써 마음은 40대를 향해 가네요.. 이렇게 성질이 급해서야..^^)
그냥 열심히 뭔가에 매진하는 것이 좋다. 어릴 때는 그것이 운동이었고 사회생활 시작하면서는 돈 벌기에 열정을 쏟아 보았고 또 뭐 신나는 일 없나 싶어서 두리번 거리고 있다. 아마 즐겁게 일을 벌리는 아빠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는 탓이리라. https://brunch.co.kr/@wushuwriter/10
좋아하는 만화가 천계영이 만화를 너무 많이 그려서 손가락 연골이 다 닳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성과와는 별개로 마음을 두드리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지만 우리는 어릴 적 오디션과 언플러그드 보이에 얼마나 열광했던가요. 이렇게 열심히 그렸는데 성과가 안 좋으면 이상한 것 아닐까요)
나중에 드러나는 성과도 중요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영광의 상처 하나 남길 정도로 최선을 다 해 본다면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너무나 떳떳할 수 있지 않을까.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은 그저 감사하고 행복할 일일 뿐. 무엇이 되었든 간에 현재 충실하고 행복할 것, 그리고 열심히 살 것. 1억 모은 후 7년이 지난 지금도 생활은 예전보다 조금 풍족해졌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은 변함없이 그렇게 충실히 살고 있다.
우리는 약 150세까지 살게 될까? 가야 할 길은 멀고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더 잘해볼 만하고 더 열심히 해 볼 만하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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