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뒤 우리는

미리 보는 육아의 마일스톤

by Grace Hanne Lee

시댁 조카는 자매 둘이다. 언니와 동생 둘 다 참 잘 자랐다. 어떻게 저렇게 예쁜 사람들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맑은 아이들이고, 매력적이게 예쁘게 생겼다.


큰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사 학년이 되었고, 둘째가 첫 초등학교를 경험했다. 만나자마자 내 친구 누구누구 누구누구 이름을 읊어대는 아이를 보니 첫 학교의 설라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둘은 대개 사이좋게 잘 지내는데, 요 근래 만날 땐 종종 자매간의 말다툼이 일기도 한다. 아마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과정 중 자연스러운 일일 테고,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사회생활을 가장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할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이란 역시 서로의 날 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비치게 되고 그로 인해 쉽게 상처를 받게 되는 관계이기도 하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성숙해가는 언니는 뭐든 빠르고 잘한다. 동생은 느릴 수밖에 없다. 둘이 같이 하는 놀이에서 늘 동생은 지고 언니는 이긴다. 그리고 대개 동생은 게임도 조금 서투르다. 부지런히 배워가고 있지만, 세 살 터울의 갭을 채우기엔 부족할 때도 있다. 오늘도 게임을 하면서 손이 늦은 동생은 언니에게 한 소리를 듣는다. 그러다 모처럼만의 동생의 승리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미리 카드를 엿봤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언니의 주장에 결국 동생은 울음을 터뜨린다. 쌓이고 쌓인 것이 폭발한 것. 하지만 여태껏 동생에게 양보하던 일이 잦았던 언니도 질 수 없다. 엉엉 우는 동생에게 또 시작이네 한마디를 던지며 무시한다. 옆에서 보던 아빠는, 오늘은, 매번 조금만 기분 상하면 울어버리는 동생을 나무란다. 좀처럼 그치지 않은 둘째의 울음에 아빠의 언성이 높아진다. 결국 할머니의 개입으로 일은 마무리되었다. 동생을 방으로 데려가 달래고 언니에게 사과를 하도록 훈육하고 끝이 났다.


이런 상황일 때 나는 어떻게 했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나 역시 첫째로, 그 위치가 갖는 부담감과 혼자 스스로 독립해가는 과정을 또래의 견본 없이 해쳐나가야 했던 어려움에 공감한다. 또한 디지털의 지배적인 영향력과 식사 패턴 등의 신체 호르몬에 미치는 영양학적인 이유에서 이전 사춘기는 중2병이 되고 이젠 초4까지도 내려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못지않게 둘째 아이처럼 나는 억울하거나 화가 올라오면 우는 타입이다. 또한 내가 본 관점으론 둘째가 많이 눌려있던 감정이 있었고, 혼이 나서 감정을 해갈하기엔 마음이 상해 보였다. 이럴 땐 어떻게 했을까. 첫째를 타이르고 둘째 편을 들어주기도, 둘째에게 자꾸 울기만 하면 안 된다고 타이르기도 어렵다. 결국 나는 머릿속으로 답을 얻진 못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둘째가 내 곁으로 왔다. 무릎에 앉혀두고 나 역시 눈물이 많은 아이라서 네 맘을 알 것 같다고 달래주는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과 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어떤 조언과 중재 등으로 이런 갈등을 풀어내는 부모가 될까? 둘째를 생각하는 지금, 이런 갈등에 대해 미리 생각해볼 수 있어 참 감사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국 우리는 어떤 가치를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가 라는 주제로 귀결되었다. 남편은 정직을 가르치고 싶었고 나는 명철과 자애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열 살 남짓 터울이 있는 조카들이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참 감사한 일이다. 조카들이 나무를 잘 돌보아주는 것도 있지만, 우리 부부가 좀 더 큰 미래를 바라보며 육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해서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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