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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미 Oct 11. 2020

여전히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에 관하여

자존감 끌어올리기 10년 차의 내가 나를 사랑하는 법(1)


혹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능력이 없다거나 서투르고 그래서 부족하다고 여길까 봐 걱정한 적이 있나요?

저는 며칠 전, 딱 그런 상황과 또다시 맞닥뜨렸습니다.


홍보실에서 기관장의 입장을 대표하는 글을 준비 중이었고, 그 글의 대부분이 제 업무와 연관이 있기에 제가 초안을 작성하던 중이었습니다. 저는 초안 중 일부를 과장님께 보여드리고 검토를 부탁드렸습니다. 해당 부분이 과장님 파트의 업무내용이었기에 정확도를 높이고자 검토를 부탁드리는 거지요.

과장님은 살펴보시곤 저한테 이렇게 물으셨어요. 

“이거 누가 쓴 거예요? 실장님?”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동적으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내가 쓴 글이 이상한가? 내용이 엉망이거나 문법이 엉망진창인 거 아니야?

-책을 두 권이나 냈다면서 글을 이렇게 엉망으로 적었다고, 알고 보니 내실이 영 꽝인 사람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정말 짧은 순간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고, 그 순간 심리적으로 얼어붙어 위축되고 말았습니다. 정신없이 허둥대는 모습으로 저는 제가 쓴 거라고 답을 했고, 과장님은 수정 부분을 보내주셨습니다. 수정 부분은 정말 접속어 하나를 빼는 정도였습니다....

과장님의 질문 속에 등장한 실장님은 국어교육과 교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었겠지요.

-아, 국어교육과 교수가 작성한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면 내가 글을 꽤 잘 적었다는 뜻인가? 내용은 모르지만 형식 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는 걸. 

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습니다. 국어교육과 교수이긴 하지만 이 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 글이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 상태에서 완전 잘못 작성된 글이라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는 질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곧 제가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하지만 문법도 엉망진창일 거라는 논리는 정말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거지요.


근데 저는 왜 단순히 ‘이거 누가 쓴 거예요?’라는 질문에 스스로를 아주 많이 서툴고 업무 이해도가 낮은 사람으로 연결시켜 버린 걸까요? 사실 상황만 다르지 제게 반복되는 패턴 중에 하나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팀장님이 A 교수님과 통화했느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통화한 적이 없기에 없다고 답변했지만 곧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어, 뭐지? 어제 공문이 하나 나갔는데, 혹시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그래서 그 교수가 팀장님한테 이의제기를 한 걸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긴장되기 시작했고, 불안해졌습니다. 잠시 후 저는 팀장님께 결재를 받으러 갔다가, 아까 왜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 물었고, 팀장님은 그 교수한테 문의사항이 왔는데 혹시 저와 먼저 이야기가 끝난 부분이면 본인이 다시 연락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물어본 거라며,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답변을 받았고, 제 걱정은 정말 쓸데없는 걱정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앞뒤 맥락 없이 내가 나를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부정적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저를 종종 발견합니다. 저는 여전히 그렇습니다.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이 하루아침에 통찰력 하나로 달라지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관계 속에서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를 순간순간 더 잘 알아차릴 수 있게 되고, 그걸 알게 되는 순간 맥락 속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처참한 기분에서 얼른 헤어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살다 보면 심리적으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헛다리를 짚어 넘어질 뻔하기도 합니다. 지난날 저는 매번 같은 자리에서 반복해서 걸려 넘어지고, 넘어지고 나면 그 상처가 너무 아파서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곤 했습니다. 이제는 넘어져도 좀 더 쉽게 일어서고, 헛다리를 짚어 넘어질 뻔 휘청거리다가도 이내 중심을 잡아 바로 서기도 합니다.

이전의 반복된 경험으로 돌부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넘어서고 싶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실망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능력이 없다거나 서투르고 그래서 부족하다고 여길까 봐 걱정하는 마음은 곧,

내가 스스로를 여전히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나의 부족한 부분까지 인정할 수 없는 내 마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것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거든요.

왜냐고요? 

실은 내가 나를 형편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형편없음이 드러나서 사람들이 실망하고 날 떠날까 봐 두려운 거지요. 우리는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무리 속에서 배제되는 것은 정말 심리적으로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저처럼 이런 상황이 이따금씩 반복되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감정에너지가 소진되고 있나요?

아예 이런 상황을 단칼에 잘라 없애버리기는 힘들어요. 시간의 힘은 정말 어마 무시하거든요. 오랜 시간 반복되어 체득된 습관이기 때문에 또 다른 습관으로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런 패턴에서 사용하는 저의 대응방법은 바로 ‘물어보는 것’입니다.

제가 과장님이 '이거 누가 쓴 거예요?'라는 질문에 바로 '왜요? 글이 많이 엉망인가요? 이상해요?'라고 물어봤더라면 다른 사람의 머릿속을 무작정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수고는 들이지 않아도 됐겠지요.

팀장님의 질문에 좀 더 빨리 '어떤 일 때문에 그러세요?'라고 한마디 물어봤다면, 한동안 괜히 긴장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제게 필요했던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으로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를 상상하는 대신, 좀 더 객관적인 단서를 얻을 수 있는 ‘물어보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던 겁니다.

바로바로 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조금 늦더라도 물어보세요.

그래야 내 안에 부정적 해석이 진실인양,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걸 그만둘 수 있거든요.

열린 답변을 받을 수 있는 개방형 질문도 좋고, 내가 생각하는 바대로 물어봐도 좋습니다.


혹시 내가 마음대로 상상한 대로 ‘그렇다’라는 답변이 돌아오면 어쩌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정말 우리가 아는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다’라고 직설적으로 답변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관계 속에서 나와 유연하게 지낼 수 있길 희망하는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니깐요.


만약 물어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음 주문을 외워보세요.

-나 저 사람 마음 모르잖아? 그럼 마음대로 상상하지 말자! 개구리 뒷다리~~~♬

우스꽝스러운 노랫말로 억지 추측하고 있는 나의 생각을 멈추는 겁니다.



자존감 끌어올리기 10년 차의 내가 나를 사랑하는 법(1)

"다른 사람의 생각을 무작정 해석하지 말고, 물어보세요!"

"맥락 안에서 상황을 해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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