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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Jul 14. 2019

사는 게 힘드냐고 - 니체가 물었다

우연히 중고서점에 갔다가 "사는 게 힘드냐고 - "에 멈칫해서 책을 집어 들었다. <쾌락독서>에서 문유석 작가가 사용하는 방식인 짜사이 이론(30쪽을 읽어보고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 확인한다)을 실험하다가 선택하게 되었다. 근래 읽었던 책 중 가장 감명 깊었고 니체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졌다.


인생은 운명과의 싸움이다. 운명이 더욱 가혹하길 바라라.
인생은 우리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우리를 엄습하는 운명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날지, 어떤 외모와 지능을 갖게 될지, 어떤 병에 걸릴 것인지, 어떤 사람들을 만날 것인지 등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인생은 이러한 운명과의 싸움입니다. 이러한 싸움에서 우리는 좌절하면서 자신이 부딪힌 운명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진 운명에 비해 너무나 가혹했고 인생은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한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니체는 “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너의 도시를 세워라”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이 평온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베수비오 화산처럼 가혹해지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과 대결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다 강하고 깊은 존재로 고양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서 우리는 이 가혹한 운명을 오히려 아름다운 것으로 사랑할 수도 있게 됩니다.


니체가 생각하는 인생

니체는 인간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안락과 길고 긴 연명이 아니라 자신이 고양되고 강화되었다는 느낌으로 보았다. 이런 느낌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가혹한 운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운명 앞에서 좌절할 수 있지만, 니체는 가혹한 운명과의 대결을 통해 소수의 인간은 보다 강하고 심원하며 아름다운 존재로 고양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대의 운명이 평탄하기를 바라지 말고 가혹할 것을 바라라

그런 운명과 투쟁하면서 장렬하게 죽을지언정 패배해서는 안된다.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인해 연결되고 노출되어 있는 사회에서, 나와 다른 환경에 있는 타인을 보고 때로는 부러움이 때로는 좌절감이 들기도 한다. 금수저라는 용어로 태어났을 때부터 맛있게 차려진 밥상이 주어진 사람들을 보고, 특히나 나의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좋은 감정이 느껴지진 않는다.


나도 예전에는 나보다 나은 환경에서 시작한 사람들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환경으로 인해, 운명으로 인해 더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었다. 도전하고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생각이 그저 합리화가 아닌, 인생의 고된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니체로부터 많이 위로를 받은 것 같다.


태어나 주어진 환경은 바꿀 수 없다.

다만, 개척할 수는 있다.

가혹한 운명은 오히려 나 자신을 고양시킨다.

쉬운 문제보다 어려운 문제를 풀었을 때가 더 좋은 것처럼, 어려운 인생이어야 더 큰 성취감을 얻어낼 수 있다.


아이처럼 살아라

인생이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로 여겨지는 사람은
‘이 놀이를 계속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습니다.
그저 삶이라는 놀이에 빠져서 그것을 즐길 뿐이지요.
아이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말은 곧 인생을 유희처럼 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어떤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왜 이 놀이를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놀이가 재미있어서 놀 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순간에 ‘왜 이 놀이를 해야 하지?’라며 놀이의 의미를 묻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놀이의 재미가 사라졌는데도 계속해서 그 놀이를 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로 여겨지는 사람은 ‘이 놀이를 계속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습니다. 그저 삶이라는 놀이에 빠져서 그것을 즐길 뿐이지요. 우리가 삶의 의미를 묻게 되는 것은 삶이 더 이상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으로 느껴질 때입니다. 그때 우리는 삶을 무거운 짐으로 느끼면서 ‘왜 이 짐을 짊어져야 하지?’라고 묻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상황과 삶을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놀이처럼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정신력을 강화하면 세계는 아름답게 보이고 매 순간 즐기며 살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정신력을 강화할 때 세계는 다시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드러나는 세계에서 매 순간 충만한 기쁨을 느끼면서 경쾌하게 사는 것, 매 순간 자체가 이미 충만한 의미를 갖고 있기에 그 순간의 충일함을 즐기면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아이의 정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경쟁은 피할 수 없다.

니체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힘을 추구하며 자신을 강화하고 고양시키려 하기 때문에 세계에서의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인간의 세계에서 뿐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도 투쟁은 존재합니다. 많은 동물들이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에 있습니다. 니체가 보는 세계에서 살아 있는 것들은 자신의 감각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증대시키기 위해 싸웁니다. 이 세상은 모든 것들이 서로 힘을 겨루는 세계이고, 니체는 이러한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니체는 그리스도교나 불교와 달리 사람들 간의 호승심과 승부욕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심리나 욕망이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니체는 경쟁을 통해서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자신을 뛰어난 인물로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쟁과 투쟁은 내가 겨루어야 할 상대가 나와 비등하거나 나보다 더 우월한 존재여서 나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할 때만 정당화된다는 뜻이다. 이 경우에만 경쟁과 투쟁이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고 고양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이 부분에 공감한다. 적당한 경쟁은 서로에서 적절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각자에게 좋은 자극제가 된다. 현대 사회 아니, 자연의 세계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으니 즐기며 나를 발전시키면 된다.



그대 자신이 되어라

그대 자신이 되어라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주체성을 가져라)
니체는 ‘그대 자신이 되어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격과 적성 그리고 환경 등을 잘 고려하면서 그것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는 주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항상 남의 시선과 평가에 신경을 쓰고 남이 무시하지 않을까 걱정하니까요.     

우리가 이렇게 남의 평가에 민감한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노예근성 때문이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는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평가하지 못했습니다. 노예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주인뿐이기 때문입니다. 노예는 주인이 ‘잘했다’고 칭찬하면 기뻐하고 ‘못했다’고 지적하면 슬퍼합니다. 남의 시선과 평가에 연연할 때 우리는 자신을 노예의 지위로 하락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자기를 극복하라
(사회에서 요구하는 거짓된 자신을 극복하라)
니체는 ‘그대 자신이 되어라’라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를 극복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대 자신이 되어라’라는 말과 ‘자기를 극복하라’라는 말이 서로 모순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 자신이 되어라’라는 말에서의 ‘그대 자신’, 그리고 ‘자기를 극복하라’라는 말에서의 ‘자기’는 서로 상반되는 것입니다. 전자의 ‘그대 자신’은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형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과 소질 등을 승화시킨 참된 자기’를 가리키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자기를 극복하라’라는 말에서의 ‘자기’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형에 영합하려는 거짓된 자신을 가리킵니다. 즉, 진정한 의미의 자기 자신이 되려면 거짓된 자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니체는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각자가 자신의 타고난 성질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하나의 스타일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성격에 ‘스타일을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위대하고 희귀한 예술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오롯이 나 자신이 되어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개인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니체라면 동정하지 않고 이렇게 외치겠지요. 돈에 연연하지 말고 온 열정을 다 바쳐 그대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그리고 어떠한 곤경이 와도 그것을 자기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면서 흔쾌하게 받아들이라고. 그리하여 니체 자신이 말을 건네는 공동체에 속하여 이 세계를 변혁하라고.

니체의 인생관은 도전적이고, 호전적이다. 투쟁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나도 호전적인 면이 있기에 삶에 대한 그의 사상이 공감되고 이해되었다.

근래에 읽었던 책들에서는 행복을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소소한 행복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게 안 받아들여지는 성품이라면 니체의 사상처럼 조금 더 투쟁적으로 인생을 살아봐도 좋을 것 같다.

사는 게 꽤나 퍽퍽하다면 니체의 말에 위로를 받고 고통을 자양분 삼아 성장의 발판으로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정답은 없되 나에게 맞거나 맞지 않는 사상이 있을 뿐이니까.

니체의 말처럼 과감하게 운명과 한판 승부를 벌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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