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버리지 않고 숨 쉬고 싶었다.

by 포카혼타스

나에게 외로움과 흔들림의 시간이었다.

그 고독함은 지긋지긋했다.

더 무서운 것은 그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디 빛이라도 보일 것 같으면 그 방향으로 걸어 나가볼 마음이었다.

근데 사방 천지를 둘러봐도 한 줄기의 빛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출구 없는 미로에 빠진 것은 아닌가 했다.



누군가는 그것이 우울증이라고 했다.

나는 일부러 볕을 쬐기 위해 밖을 나가 걸었고, 나뭇잎에 기어오르고 있는 개미를 보기도 했다.

일부러 바나나를 챙겨 먹었고, 밤이 되면 물을 끓여 캐모마일 티백을 넣어 차를 진하게 우려내었다.

그것이 없으면 잠이 들 수 없었고,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애를 썼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중간에 끊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뜻처럼 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빈 천장을 보고 있는데 정말 우울증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누군가는 기도를 해보라고 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라고 하면서.

나는 기도를 했다.

성경책도 폈고, 이 말씀, 저 말씀도 찾아 들어보려 애를 썼다.



어떤 설교는

“세상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아 천벌을 받는 중”이라고 했다.

나도 그런가, 하고 자조적으로 피식 웃었다.

따라야 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을까?

그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내 마음에서 말하는 건가?

책에서 얘기하는 것인가? 내가 받은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모르고 지나친 것인가?



나를 있는 그대로 가만히 놔두지 못하던 이 세계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은

그 세계의 틈바구니를 탈출하는 것이었다.


나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면서도 그 세계에 속하기는 거부했다.

그건 성경 그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성경 전체를 덮고 아우르고 해석하고 있는 그 세계에 대해

껍질을 깨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나는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형태로 나타났다가,

후에는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 혹은 ’ 하나님께 반기를 드는 자’의 모습으로 다른 이에게 비치기도 했다.

그건 나 스스로에게도 지독한 시간이기도 했다.

껍질을 깨지 않으면 내가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고

나의 혼란과 집단의 시선을 생각하면 껍질을 깨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되었다.


시간이 아주 흐른 뒤에서야, 그리고 그 세계에서 나오고 나서야

’ 나는 신앙이 있는 사람’이면서도 ’다른 세계도 있음.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아도 됨.’이라는 사실을 같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을 증명하지 않아도,

어딘가에 속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숨 쉬고 있는 나를 매일 마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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