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되는 시집살이를 빗방울 피하듯 피하고 싶었다.

by 포카혼타스



그는 나보다 2살이 어린 목회자의 자녀였다.



나는 당시 30대 초반의 대학원생이었다. 나는 여태껏 물 흐르듯이 살자는 주의로 살아왔다. 어떤 계획을 투철하게 세우고 목표를 향해 전심전력 질주를 하는 것은 나에게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들의 영향이 컸으리라. 더군다나 여기저기를 살고 나서 맥이 풀린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그런 방면에서 나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어떤 분야에서는 굉장히 맹했다.



어느 날 그의 부모님은 대뜸 전화를 나에게 하셔서는, 자기 아들을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물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첫 번째 적신호였다. 다 큰 성인인 아들의 여자친구를 직접 정해주는 부모님이라니.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나를 좋게 봐주셨구나, 하는 감사한 마음이 더 컸다. 교회에서도 칭찬받는 집안이었기에 좋은 환경에서 잘 자란 사람이겠거니 했다. 그의 아들은 학교를 늦게 졸업하고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를 세 번째쯤 만나고 나서, 그는 나에게 정식으로 사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후에 알았지만, 그것 또한 그의 엄마가 ‘지금쯤이면 사귀어야 하는 거 아니니?’라는 물음 한 마디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데이트 중 그와 대화를 하고서 일요일 교회를 가게 되면, 그의 엄마가 우리의 대화 내용을 알고 있는 경우들이 있었다.


“~가 그러던데, 이번에 무슨 시험을 쳤다면서? 근데 그 시험은 무슨 내용이야?”


처음 한 두 번은 그냥 그가 집에 들르면 내 얘기를 했겠거니 했고, 조금 지나고서는 그냥 그의 엄마가 나에게 던져주는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함을 느낀 것은 6개월이나 지난 무렵이었다.


“내가 그거 하지 말라고 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자리는 우리 아들한테는 아닌 것 같더라고.”


그의 엄마는 나에게 자신의 아들에게 그 직장에는 가지 말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 이후에 인턴 제안을 받았다. 그의 부모님과 내가 있는 계신 고향과는 다소 떨어진 곳이었다. 그의 엄마가 자신의 아들에게 그 직장에 가지 말라고 한 것은 마치 그녀의 삶에서 오랫동안 기도를 하고 받은 응답이나 그녀 자신이 오랜 고심 끝에 마음을 써서 대신 내려준 결정 같은 모양새를 갖고 있었다. 나는 그의 엄마가 어떤 이유로 그 일자리가 그의 아들과 맞지 않다고 얘기했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그럴싸한 직업이 아니었나? 연봉이 적은 것이었을까? 자신과 물리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싫었던 건가? 무엇보다도 왜 그의 엄마가 그걸 판단하는지 살짝 의아했다. 이 직장이 나에게 잘 맞을지, 맞지 않을지는 본인이 결정할 문제가 아닌가? 싶었다.


그는 그의 연애 경험 횟수에 대해서도 극도로 함구했는데, 목회자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성 문제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이름에 먹칠할 것 아니면 여자를 멀리해라.’라는 교육을 어린 시절부터 받고 자랐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두 번째 적신호였다. 당시에는 그가 그저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인 줄 알았다. 후에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그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살아야 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타인의 시선은 그의 부모님이었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간 물 흐르듯이 ‘될 테면 되라지.‘라는 심정으로 살아온 나와 부딪힐 것은 뻔한 것이었다.


그 무렵, 나는 그와 얘기할 때면 이것이 그의 엄마가 얘기한 것인지 아니면 그가 그의 마음에서 얘기한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는 결혼 이야기를 서서히 꺼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알 턱이 없다. 그는 정말 나랑 결혼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주위에서 지금쯤이면 해야 하지 않아?라고 한 마디씩 해서 그냥 생각해 본 걸까? 아니면 그의 엄마가 결혼하라고 한 걸까? 사실 이제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도 아니지만.



나는 내가 솔직히 느끼고 있는 바를 그에게 얘기했다. 그는 영문도 모르겠다는 투였다. 엄마에게는 충고와 조언을 받을 뿐이며, 결정은 자신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마주하고 있는 그는 마치 빈껍데기인 것 같았다. 엄마가 정해준 학교, 엄마가 정해준 전공, 엄마가 정해준 여자친구, 엄마가 정해준 직장. 그는 되레 내가 너무 독립적이며, 혼자서만 앞서나가며, 가족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며 자신이 얘기한 것도 듣지 않을 것이냐고 나무랐다.



그런 말을 듣고서도 사실 당시의 나는 정신을 못 차리긴 했었다. 다들 이렇게 결혼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이 가장 컸다. 이게 보통이고, 내가 이상한 거야? 싶은 마음.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께 지혜를 구하고자 말씀을 드려봤지만 그다지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 여자는 결혼하면 아내로서 가정을 잘 운영해 나가는 것이 최선‘이라던가 ’ 여자는 출가외인, 결혼하면 남자 집안의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꽤나 고지식하면서도 내가 보아온 삶들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말들이었다. 이전에는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말들에 대해 나는 반감을 느꼈다. 그건 아마 그 말 자체에 대한 반감이라기보다는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사람과 이 가정에 대입했을 때 느껴지는 반감도 컸던 탓이다.



그의 엄마는 아직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중이었다. 며느리를 보고 손주를 봐야 할 나이에, 아직까지도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듣고 눈치를 보며 모시고 살고 있었다. 더군다나 목회자의 사모로, 교회라는 틀 안에서 고단한 그녀의 삶을 얼마나 위로받고 고단했을지는 헤어진 이후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그의 아들을 놓는다는 것은 그녀에게 절망이었을 것이다. 그가 보고 배워온 아버지의 모습은 그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는 좀처럼 이별사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날더러 ‘노력조자 해보지 않고 포기하냐’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헤어지자는 이에게 붙잡기 위한 시도로 맹비난을 택한 것은 그다지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노력조차 해보지 않고 포기하냐니. 그는 그간 내가 어리숙하게 이해해 보려 수도 없이 애쓴 것을 ‘나는 전혀 모르겠소.‘ 스스로 얘기하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건 노력에 달린 일이 아니었다.



나는 예상되는 시집살이를 빗방울 피하듯 피하고 싶었다. 이리가도, 저리가도 피할 수 없는 빗방울이라면 그냥 건물 안으로 잠깐 들어가 있을래. 비가 그친 뒤에 다시 걸으면 되니까. 그러나 지금 후드득 내리는 이 비를 맞을 재간은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가정의 역동과 내가 만나고 싶은 이에 대해 한참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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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