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여전히 아버지였다.

by 포카혼타스

그는 투어 가이드였다.


그의 말재주는 꽤 좋았다.

투어지역의 민심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곳의 원주민들은 문명이 닿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부족 단위 마을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바깥세상의 투어 그룹을 주기적으로 이끌고 마을을 꾸준히 방문하는 타지인으로써 그는 꽤 인정을 받는 듯했다.


그날도 나를 포함, 20명가량의 관람객들이 마을을 방문했다.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에게 그는 혹시나 내가 더 큰 문화충격을 받을까 염려가 되었던지, 다른 이들보다 나를 조금 더 챙겨주곤 했다.


그에게는 8살, 4살 난 아들이 있었다.

4살 난 아들은 너무 어려 함께 오지 못했지만, 8살 아들은 그의 여행 메이트이자 훌륭한 조수였다.

부족 내의 또래들 중에서도 친한 친구들이 몇몇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아들은 그가 사는 여느 도시 아이들처럼 축구에도 능숙해 보였고, 여느 부족 아이들처럼 수영과 물고기 잡기에도 능숙해 보였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3여 년 후,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잦아들 무렵이었다.

다른 이유로 도시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투어 사무실을 지나가게 되었다.

나는 그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반가이 인사했다.


"코로나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 사실... 그게 거의 내 모든 것을 가져갔어."


그의 사무실을 지나가기 전 이미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다.

그는 투어가이드였고 코로나가 터지면서 직격탄을 맞은 산업 중 하나였으리라.

그의 수입이 한 순가 0이 되어버린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나는 그가 혹시 생활고를 겪고 있다면 약간의 도움을 줄 마음도 있었다.



"내가 투어를 나간 날이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폈더라고. 그걸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야 알았어."


그의 눈은 나를 보고 있었지만 눈빛은 허망하고도 저 먼 어딘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나는 아내에게 집을 지어줬고... 아내의 가족을 위해서도 집을 지어줬지.

어느 날 그 남자랑 차를 몰고 오더니... 집에 있는 것을 하나, 하나 다 빼더라.

정말 다 가져갔어. 수저 하나 남기지 않고.

그리고 아이들 손을 잡고서는 차에 타라고 하더라.

나는 그녀를 막지 않았어."


나도 그의 이야기를 중간에 막지 않고서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지도, 떨지도 않았다.

분노도, 아쉬움도 없는 목소리였다.

되려 차분함마저 느껴졌는데, 이상하게 그의 눈만 공허해 보였다.


"작은 아들은 차에 탔는데... 큰 아들은 차에 타지 않겠다고 했어.

애 엄마랑 약간 실랑이를 하더라고.

애 엄마는 우리 둘을 남겨놓고 그대로 떠났어.

그날 밤, 큰 아들이랑 아무것도 없는 집에 누워 잤지.

컴컴한 밤에 천장을 보고 있는데 큰 아들이 그러더라.

'엄마가 다른 남자랑 바람피운 거 알아. 그래서 다른 남자랑 살겠다고 나간 것도 알아. 난 아빠랑 남을 거야.'"



내가 3년 전 기억하고 있던 그의 아들이라면, 그는 벌써 11살 무렵의 초등학생 아들이 되었을 터였다.

그는 그 다음날 큰 아들의 손을 잡고 큰 쇼핑몰에 갔다고 한다.

접시, 식기류, 냉장고, TV 등등 갖가지 살림을 다시 새로 샀다고 했다.

이제부터 우리 집은 너와 나, 다시 시작하는 거라며.



그는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다 잠시 멈추었다.

어느 호텔에 투어상품 미팅을 다녀와야 하니 작은 아들을 20분 정도만 봐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의 작은 아들은 그날 때마침 엄마 집에서 넘어와 아빠 집에서 3일 지내게 된 날이었다.

나는 그러고마, 하고 걱정 없이 다녀오라 했다.



그의 작은 아들은 그의 큰 아들과는 달리 조금 더 내성적인 것 같았다.

이제 곧 7살이 되었을까, 그에게 나는 혹시 부모님의 별거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들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모르겠어.

갑자기 어느 날 싸우더니,

엄마랑 아빠랑 따로 살아야 한다고 했어.

나는 왜 싸웠는지도 모르겠어.

근데 시간이 지나면 그냥 다시 같이 살지 않을까?

나도 형이랑 싸우는데 다시 또 사이좋아지고 그러거든."


나는 그의 답변에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멈칫했다.

그의 살아온 날에 비하면 그가 감당하고 있는 답은 그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

그는 그것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20여분 뒤에 그의 아빠는 돌아왔다.

나는 그에게 내가 아이와 했던 대화를 전했다.

그는 잠자코 듣다가, 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우리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해주겠어?"

나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다.

더불어 그와 그의 큰 아들과, 그를 든든히 치켜세워주던 마을 부족민들과, 그가 펼쳐갈 앞 길을 위해서도 기도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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