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들어가면 등장하는 질문입니다. 쓰긴 썼는데 이렇게 쓰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는 뜻이죠. 일단 남이 읽게 될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걸 알면서 기어코 글을 쓰겠다고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 고민도 잠시입니다. 글을 쓴다는 건 이해받고 싶어서니까요.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을 때 무엇을 할까요? 일단 내 생각과 느낌을 상대에게 말로 설명하지 않을까요?
저는 말을 그대로 받아쓴 것이 글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특별한 기교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요. 여행길에 목이 말라 잠시 들른 슈퍼 평상에서 목을 축이고 있을 때, 곁에서 나물을 말리는 할머니의 몇 마디…. 단지 종이에 글자로 활자화하지 않았을 뿐 삶의 단단한 내공과 촌철살인의 문장들이잖아요.
코칭을 할 때 글쓰기를 자신 없어 하는 분일수록 말로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글이 되는 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가는 ‘티키타카’ 사이에 많은 사담이 쌓이는데 ‘이거다!’ 싶은 지점에서 멈춥니다.
E 님의 오디오북 <내 인생은 러닝타임>은 그렇게 완성된 책입니다. 몇 해 전 처음 수강생으로 만난 E 님은 경계심이 강해 보였습니다. 막 인생 새 출발을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접은 게 여러 개였습니다. 30년 넘게 운영한 피아노 학원, 결혼 생활, 사랑하는 남자와의 관계를 접었고,부모님을 떠나 보내며 길고 긴 병간호도 접었습니다.
이제 자유롭게 새 출발을 할 시기였지만, 온갖 의무에서의 갑작스러운 분리에 불안해했습니다. 얼굴도 익힐 겸 E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경제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 다시 피아노 학원을 하고 싶진 않으세요?”
“학원은 싫고, 이것저것 하는데…. 재미있어요.”
의외로 낙천적인 성격이더군요.
“가사도우미도 재미있더라고요. 사람들 사는 거 보는 게.”
다른 사람의 무질서한 공간에 들어가 그것을 말끔히 정돈하는 일이 좋다고 했습니다.
“제가 청소를 아주 파워풀하게 끝내거든요. 다시 와줄 수 있느냐고 묻는데…. 스케줄 보고 연락하겠다고 했어요. 바로 대답하면 자존심이 상해서.”
저는 계속 타이핑을 하고 있었어요. 조금 더 이야기를 끌어냈습니다.
"청소 못하는 사람들 좀 가르쳐주셔도 좋겠어요. 돈도 벌고 피아노 학원보다 마음도 편하고. "
“저 가사도우미 교육 강사도 했잖아요. 여기저기서 불러대는데 완전히 꿀통에 빠진 곰돌이 푸가 된 느낌?그런데 이 가사도우미 한 이야기는 글에 별로 안 넣고 싶은데요….”
늦었습니다. 저는이미 촉이 왔거든요.
“그런데 저가사도우미 하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
“쉬워요. 어플, 대리 주부요. 근데 코치님, 청소 잘하세요?”
“분리불안 그런거 됐고, 이 이야기로 씁시다.”
E 님의 첫 오디오북 <내 인생의 러닝타임>에서 독자들이 가장 재미있어하는 부분이 이 가사도우미 파트입니다.
경험상 저의 작은 결론! 좋은 글은 말을 닮은 글입니다. 짧고 쉽고 한 번에 읽힙니다. 그대신 평소에 글 쓰듯이 말하며 살면 됩니다. 언젠가 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