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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e by May 03. 2023

(4) 그냥 평범한 이야기인데요




 자발적 악역을 합니다. 애써 써온 글을 과감히 빼거나 분량을 줄이기를 권해야 할 때 코치도 괴롭습니다. 대중을 대상으로 글을 쓸 때 의식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시간입니다. 독자의 시간입니다. 광고 제작에서도 ‘What’s in it for me?’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던가요?


 독자는 나와 관계없는 글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바쁘거나 아프거나 지쳐있으니까요. 사방에 재미있는 볼거리과 들을 거리도 넘쳐납니다. 그 와중에 굳이 나의 글에 잠시 멈추어 읽어준다면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거예요. 재미있거나, 공감되거나, 새로운 정보가 있거나, 생각을 바꾸게 해주거나, 나와 닮은 글....


 B님은 코칭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전체 글을 다 써올 정도로 꼼꼼한 성격이었습니다. 분양 직업 안내서를 출간한 작가였기 때문에 필력도 좋았고요. 두 번째 책은 직업 이야기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정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치열하게 살아온 만큼 제때 보살피지 못한 내적 감정이 글과 말에 배어났습니다. 독자가 귀를 기울일만한 이야기라 생각했어요.


 코칭을 통해 구체적이고 현장감 넘치는 에피소드를 최대한 끌어냈습니. 그녀의 집은 열한 명 대가족이었대요. 매년 3월에 하는 가구조사가 너무 싫었고, 밥상에서 고소한 굴비 한쪽 먹기 위해 고도의 눈치작전을 펼쳐야 했다고 했습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고기랑 바나나를 혼자 실컷 먹더라고요."

 부잣집 친구집 대문을 나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방구석에서 돼지 저금통을 만지작 거려본 기억이 있는 독자는 공감할 부분입니다.  그녀는 중학교 연합고사를 마치고 돌솥 비빔밥 전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목표는 워크맨! '응답하라 1988' 시절의 마이마이의 위대함을 생각하면 100% 공감됩니다. 나도 그랬으니까요.

 

 이렇게 글쓴이와 독자의 시간이 만납니다.  돌솥비빔밥 전문점 아르바이트 시절, 무거운 돌솥을 나르며 손목이 아파 한겨울 손님에게 메밀국수를 권할 때 웃픕니다. 딸들 중 유일하게 기어코 대학에 간 그녀가 4년 내내 미팅 한번 못하고 종각에서 미팅족들에게 돈가스를 서빙하는 장면은 안쓰럽습니다.  


 새벽 4시 종합청사 녹즙 배달을 준비하며 혹시 있을 잠재 고객에게 씁쓸한 녹즙과 함께 내밀 사과 한쪽을 준비하는 야무진 센스에 미소 짓게 됩니다. 무심한 공무원이 앳된 여대생 뒤통수에 던지는 못된 말에는 함께 분노하게 되죠.  아기가 아파 응급실에 간 날, 모델하우스 분양 행사를 마치고 혼자 화장실에서 소리 죽여 울 때면 그녀를 안아주고 싶어집니다. 어느새 독자가 글쓴이와 나란히 걷게 되는 것입니.


 오디오북 <나는 어려서 돈 맛을 알았다> 이야기입니다. B님의 글을 많이 들어냈지만 대신 대화를 나누며 '발굴한' 생생한 이야기로 채웠습니다. 그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어요. 코치라고 글을 뜯어 고치며 갖은 악역을 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가까워졌습니다. 비슷한 기억이 있어서였겠지요. 특히 어린 시절 친구집에 가서 부러웠던 이야기... 아버지만 드실 수 있었던 특별 반찬의 한풀이...  '다음 생에는 제발 외동딸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 기도했던 방구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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