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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e by May 03. 2023

(5) 오래 전 이야기에요




 스토리 코칭을 할 때 수강생들끼리 서로 그림을 그려보게 합니다. 한 사람자기 글을 읽는 동안 다른 수강생들은 그림을 그리고요. 물론 하나같이 “저 그림 못 그려요” 엄살을 부리지만 글 쓰러 와서 그림 그리기를 한다니 내심 좋은가보다. “잠시만요, 종이 좀 가져올게요.” 아이처럼 반색합니다. 다양한 수강생들이 포착해 내는 포인트가 다채로워 재미있거니와 사진을 찍어 수업 카톡방에 올려주면 글쓴이에게 두고두고 추억이 됩니다.


 수업에서 그림을 재미로 끼워 넣은 것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그림은 네 칸에서 다섯 칸 정도의 만화인데요. 그렇게 그리려면 글이 칸칸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연결된 서사 구조를 지녀야 합니다. 본인의 글이 어떤가 보려면 그 글을 들은 사람이 몇 칸의 만화로 선명한 말풍선 대사와 함께 그릴 수 있는지 보면 되죠. 중언부언이 많으면 여기저기 같은 내용이 섞여 있을 것이고, 불필요하게 장황한 글이라면 똑 떨어지는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빠른 숏콘 시대에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기 쉬운 스토리는 힘이 있습니다. D 님의 글은 유독 잘 그려졌어요. 타고난 필력도 좋았지만 한 문단, 다음 문단 서서히 연상되는 장면들이 영화적이었습니다. 그녀의 오디오북 <그땐 왜 그랬어>의  4화는 30년 전 담임 여선생님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아련한 기억 속 원피스를 입은 선생님의 모습은 디테일하게 떠오르지 않는 법이죠. 빛바랜 빈티지 사진처럼 낡은 교탁과 책상 사이의 선생님을 묘사하는 글도 딱 그만큼 희미해야 합니다.


 선명한 부분은 살렸습니다. 선생님이 “이 갈매기 눈썹 나에게 다오” 하던 말…. 점심시간에 선생님이 도시락을 꼬맹이들에게 내어놓을 때면 선생님의 양철 식판에 올라있는 소시지를 향해 뻗던 작은 팔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들입니다. 희미한 부분은 탈색시키는 문체로 다듬었습니다. 나른한 오후, 청소를 마친 빈 교실... 맨 뒷줄 나무 책상 위에 앉히고 그림을 그려주시던 선생님이 “풉! 하고 웃으셨던 것 같기도 하고” “몇 가지의 사소한 질문이 오갔던 것 같기도 하다”라고요...


  D님의 글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읽고 생각에 잠기게 한 글이였어요. 코치도 내게 코칭을 의뢰한 겸손한 글에 압도될 때가 있습니다. 한 글자 고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이 글을 읽을 때면 도 다시 그때 그 교실로 돌아갑니다. 잃어버린 시간이 그립습니다. 너무나 잘 그려져서 눈앞이 흐려집니다. 좋은 글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세상을 향해 아름다운 글 글 계속 써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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