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지에 따른 직무 특징
나는 한 회사에서만 세 나라를 경험하였다. 싱가포르 지사에서 시작하였고, 한국법인을 거쳐 덴마크 본사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었다. 본사는 영어로 HQ(Headquarter, 헤드쿼터)라고 부르는데, 주로 회사의 경영 전략이나 제품 기획 등 핵심 기능(Core function)을 담당한다. 규모가 있는 회사들은 고객과의 거리, 인재확보 등의 이유로 여러 지역에 지사(Branch Office)를 추가로 설립하는데, 외국계회사의 한국법인은 대부분 영업 및 서비스에 초점을 둔 지사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국내 기업에서 일한다고 모두 본사에서 근무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전 직장의 본사는 울산에 있었지만 나는 용인 연구소에서 일했다.
당연한 사실 한 가지를 먼저 언급하자면, 본사라고 좋고 지사라고 덜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각각은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는데, 일반적으로 지사는 소기업에 가깝고 본사는 대기업과 유사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규모가 작은 소기업(지사)에서는 커버해야 하는 업무 범위가 넓을 수 있으나 보다 유연한 경향이 있다. 반대로, 본사는 체계적이고 안정적이지만 다소 경직된 면이 있는데, 아무래도 다수의 직원들 사이에서 형평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덴마크 본사가 상대적으로 임금 협상의 폭이 좁고 승진의 기회가 제한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회사마다 다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본사의 가장 큰 장점은 전문지식 및 보안정보에 대한 접근성이다. 어찌 보면 이는 본사 근무의 장점 보다는 글로벌 포지션(Global Position)의 특징이라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입사 후 온보딩(Onboarding) 교육 차 덴마크 본사에 방문했는데, 이곳에서 R&D 부서는 철저히 격리되어 있었다. 일반 직원들의 R&D 건물 출입이 제한된 것은 물론이고, R&D 엔지니어들과 업무적인 교류의 기회는 일절 없었다. 그나마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잠깐 스치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본사 글로벌 포지션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R&D 소속은 아니었지만, 업무 협의 목적으로 R&D 건물 출입증을 부여 받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을 지나다니다 보면 비밀리에 개발 중이던 신제품을 목격하곤 했다. 물리적인 접근권한만 부여 받은 것이 아니었다. R&D에서는 내부 시스템(웹사이트)을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에 필요한 각종 보안정보를 공유하였는데, 나는 이에 대한 계정을 부여 받아 제품 개발에 대한 각종 자료를 조회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일부 R&D 엔지니어들은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파악한다며, 나에게 신규 소프트웨어 베타 테스트를 요청하곤 했다. 내가 담당하던 업무 중 하나는, 지사의 엔지니어조차 어려워하는 고객사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었는데, 나 조차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서는 R&D 엔지니어의 전문지식에 의존해야 했다. 각 분야의 R&D 엔지니어와 다양한 전문지식을 주고 받다 보니 제품에 대한 기술적인 이해가 한층 깊어 졌다.
본사의 또 다른 장점은 다양한 직무 기회가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사에서는 해당 지역의 판매 및 서비스를 위한 영업, 마케팅, 기술지원 직무에 한정되어 있다. 반면 본사에는, 연구개발부터 생산, 기획 등 회사 전체의 방향을 잡는 다양한 포지션이 있으므로 직무 전환 시 선택의 폭이 넓다.
반면, 본사의 한계점은 고객과의 거리가 멀다는 부분이다. 본사에 있으면 고객을 직접 만날 기회가 적으며, 고객 가까이에서 그들의 의견을 직접 청취하기 어렵다. 최고의 스승인 고객으로부터 멀다 보니 배움의 속도가 더뎌 질 뿐만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본사 특징
- 대기업 문화에 가까움
- 체계적, 안정적
- 전문지식 및 보안정보에 대한 접근성
- 다양한 직무 기회
지사 특징
- 유연한 조직문화
- 고객과 가까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