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주말 보내기
싱가포르는 분명 추천할만한 여행지다. 화려한 고층 빌딩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끝내주는 야경을 감상할 수 있고 반드시 맛보아야 하는 현지 음식들이 기다리고 있다. 거리가 깨끗하고 치안도 확실하며 크기가 작은 도시 국가이다 보니 공항으로부터 도심까지의 거리도 가깝고 대중교통이나 택시 등 교통 체계도 잘 갖추어져 있어 접근성 또한 훌륭하다. 럭셔리한 쇼핑 거리도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5일 이내의 짧은 여행을 즐기기에는 손 꼽을 정도로 괜찮은 여행지이며 만약 싱가포르에서 경유할 기회가 있으면 레이오버(Layover, 경유지에서 24시간 이내로 머무는 경우) 혹은 스탑오버(Stopover, 경유지에서 24시간 이상 머무는 경우)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나의 싱가포르 생활 초창기는 말 그대로 '관광객(Tourist) 모드'였다. 주말만 되면 여행 명소들을 한 곳씩 돌아다니며 싱가포르를 만끽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Universal Studio)에서 놀이기구를 타고(스릴 면에서는 에버랜드나 롯데월드의 놀이기구와 큰 차이 없었지만 '스토리텔링'면에서 탁월하더라) 싱가포르 동물원(Singapore Zoo)의 사파리를 체험했다.
영화 '아바타'가 연상되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는 나의 단골 관광지였고, 틈만 나면 루프탑 수영장과 카지노로 유명한 싱가포르 시그니처 호텔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 주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곳의 야경은 언제 봐도 장관이었고 레이저 쇼 또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It's boring!"
그런데 싱가포르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싱가포르에 사는 것이 어떤지 물어보면 상당수는 이곳이 지루하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화려한 야경이나 색다른 먹거리들은 처음에는 흥미로울 수 있지만 매번 똑같은 장면을 보다 보면 시간이 지날 수록 무뎌진다. 작은 도시 국가가 가진 다양성의 한계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나 역시 싱가포르에 넘어온지 몇 주가 지나면서 하루 하루가 여행의 설렘으로 가득하던 관광객 모드를 벗어나 평범한 일상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월요일이면 회사 동료들은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묻곤 하였는데, 나는 십중팔구 "청소하고 요리하며 보냈다"는 재미없는 대답을 해야 했다. 사실 나는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열정도 가득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루즈한(loose) 상태 또한 아주 좋아한다. 주말 내내 집 안에 머물면서 TV 시리즈를 보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내가 살던 콘도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바다(해변은 아니고 부두에 가깝다)가 있었는데,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잠깐 책을 읽다가 음악을 들으며 낮잠을 자고나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물론 싱가포르 탐험을 완전히 그만둔 것은 아니었는데 싱가포르 현지인들과 이야기하면서 짧은 일정의 관광객들이 찾진 않지만 숨겨진 명소들을 알게 되었다. 섬 속의 섬으로 알려진 팔라우 우빈(Palau Ubin)에서는 바닷바람(Sea Wind)을 맞으며 자전거 트래킹을 즐길 수 있고, 싱가포르에서 가장 높은 산(그래봐야 해발 182 미터에 불과하다고 한다)이 있는 부킷 티마 언덕(Bukit Timah Hill)에서는 기나긴 숲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싱가포르의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이 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하고자 사교적인 취미활동을 알아보았다. 여전히 영어가 부족했기에 말 보다는 몸을 쓰는게 편했고, 대학교 동아리 활동의 경험을 살려 '춤'을 배우기로 했다. 싱가포르의 '댄스' 수업을 알아보던 중 '웨스트 코스트 스윙(West Coast Swing)' 이라는 장르의 댄스 영상을 발견하였고 그 길로 수업을 등록했다. 싱가포르인들은 한국인, 한국 문화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있었는지 친절하게 잘 대해주었다. 웨스트 코스트 스윙 덕분에 싱가포르 친구들도 사귀고 여가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