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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떡궁합 여행지 감별법

로망과 취향

by 소율

당신은 지금 첫 자유여행을 결심했다. 이때 누구와 갈 것인가를 정했다면 이윽고 다음 단계에 부딪친다.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세상은 넓고 갈 데는 많은데 도대체 어디를 골라야 하지? 남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 아니면 남들이 잘 안 가는 곳? 무언가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그게 뭐든 자기만의 기준이 있다면 그걸 따르면 된다.


우리 부부의 경우, 주말에 영화를 보러 가곤 한다. 남편은 주로 네이버 평점이 8점대 이상인지 아닌지로 영화를 고른다. 나는 평점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SF 장르인지 아닌지가 우선이다. 만약 SF 영화라면 침부터 발라놓고 나중에 평을 살펴본다. 둘이 같이 영화를 볼 때는 남편 기준을 배려하는 편이고, 나 혼자 영화를 볼 때는 나만의 기준에 따른다.


자유여행 초보가 여행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나에게 맞는 여행지는 어디일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내 맘에 들어야 합격이다. 남들이 아무리 추천한들 내가 흡족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런데 막상 ‘나에게 맞는 여행지’가 어디일지 도통 모르겠다면? 솔직히 중국집에서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를 놓고도 고민하게 되는 우리다. 이런 결정 장애자들을 위해 ‘짬짜면’이라는 깜찍한 대안이 존재한다만, 여행지 선택에서도 짬짜면처럼 딱 떨어지는 해답은 없을까? 그걸 찾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겠다. 스스로에게 답을 해보자.


로망을 실현하라


이 순간 당신이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는 어디인가? 혹은 평소 당신이 꿈꾸던 로망의 여행지는 어디인가? 어릴 적에 어른이 되면 거기를 꼭 가봐야지 했던 곳은 어디인가? 우연히 본 한 장의 사진 때문에 두근거렸던 곳은 어디인가? 좋아하는 영화의 배경지라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그곳은 어디인가?


어디가 나에게 맞을지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보다 내 가슴에 물어보는 게 정확할 수 있다. 내가 가장 끌리는 곳, 그곳을 생각하면 심장이 뛰는 곳, 그곳이 바로 당신에게 맞는 여행지 후보 1순위다.


파리에서 만난 승희 씨. 우리는 몽마르트르 투어에서 한 팀이었다. 그녀는 평소 파리 여행을 꿈꿔 오다 드디어 그곳에 온 참이었다. 그저 파란 하늘만 보아도 감탄했고, 평범한 골목길도 멋지기만 했다. 심지어 굴러가는 돌멩이마저 그녀 눈에는 예뻐 보였다. 몽마르트르 언덕이라고 해서 발길 닿는 곳이 모두 아름답지는 않았다. 사실 파리는 생각보다 지저분했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전철역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낭만이었다, 오직 그녀에게는 말이다. 한마디로 콩깍지가 씌었다. 이런 콩깍지 여행,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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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 씨의 대학생 따님 이야기. 그녀는 첫 여행지로 일본을 꿈꾸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꼭 일본을 제일 먼저 가보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일본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엉뚱한 일이 생겨 번번이 포기해야 했다. 그럼에도 ‘일본이 아니면 아무 데도 안 가겠어!’라는 뚝심으로 기회를 보던 중,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과 드디어 오키나와 여행을 가게 되었다. 마침내 밟게 된 일본 땅, 오키나와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특히 준비과정에서부터 역할을 하나씩 분담한 것이 모두가 행복한 여행의 비결이었다. 벼르고 벼른 여행인 데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했으니 무엇인들 즐겁지 않았으리오. 그녀는 지금 알바를 뛰며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 행선지는 어디냐고? 물어보나 마나, 일본이지. 그녀의 콩깍지는 한층 두꺼워졌다.


실제 여행을 가면 어떤 여행지건 완벽하게 좋기만 한 곳은 없다. 이런 건 좋지만 저런 건 맘에 안 들고. 어디에서나 장단점이 공존한다. 그러나 콩깍지 여행은 평소의 로망을 실현한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단점을 상쇄시킨다. 어떤 형태의 여행보다 충족감이 높다.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뤄내는 순간, 당신은 그저 행복하다.


딱히 그런 곳이 없다고? 그렇다 해도 걱정하지 마시라. 2순위 감별법이 있으니까.



타인의 취향 말고 당신의 취향


당신의 관심사와 취향은 무엇인가? 자신만의 취향을 즐기는 여행을 ‘테마여행’이라고들 한다. 즉 나만의 주제를 가지고 여행을 한다면 그게 테마여행이다. 한 온라인 서점에서 여행 부문을 열어 보면 테마여행 꼭지가 있다. 그걸 누르면 “답사/도보여행, 문화기행, 배낭여행, 별미여행, 사찰 기행, 성지순례/오지탐험”이라고 세분화되어 있다. 이런 종류 외에도 무엇이든 테마가 될 수 있다. 테마는 정하기 나름이고 만들기 나름이다. 전문가만 테마여행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라도 테마여행을 할 수 있다. 당신에게 있어서 먹는 게 중요하다면 맛집 탐방 여행을 해도 좋다. 그림 감상을 좋아한다면 미술관이 많은 도시 위주로 그림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이렇게 비교적 평범한(?) 테마 외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테마를 가지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훈 씨는 유럽에서 각 도시의 축구경기만 찾아다니는 여행을 했다. 그도 처음에는 남들처럼 미술관과 성당들을 보러 다녔다. 그러나 곧 그것이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 방식임을 깨달았다.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자기만의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고심했다. 그러다 자신이 축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유럽에는 축구팬들이 열광하는 실력 있는 축구클럽이 널려있다. 그는 방향을 바꿔 축구장만 돌아다녔다. 평소 좋아하던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관람하는 호사를 마음껏 누렸다. 페이스 북에는 매번 새로운 축구장을 배경으로 활짝 웃는 지훈 씨 얼굴이 올라왔다.


나는 석 달 간의 유럽여행을 두 가지 테마로 정했다. 하나는 ‘한 도시에서 한 달 살기’였다. 스페인 세비야, 프랑스 리옹, 독일 드레스덴에서 에어비앤비로 방을 빌려 약 한 달씩 살아보았다. 현지인 호스트와 맘이 맞아 즐겁게 지내기도 했고, 무례한 호스트를 만나 영 불편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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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테마는 ‘한복 여행’이었다.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한창 인기 있는 한복 입고 여행하기를 시도했다. 평소 한복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는데 여행 가기 한 달 전부터 갑자기 한복에 꽂혀버렸다. 한복 카페에 가입을 하고 세미나에 참석을 하는 등 극성을 부렸다.


그렇게 한복 공부를 한 뒤, 총 세 벌의 치마저고리와 짧은 두루마기 하나를 준비했다. 흔히들 떠올리는 결혼식 때의 한복이 아니라 여행용 한복이다. 치마 길이는 발목 위로 올라가 활동하기에 편리했다. 재질도 구겨지지 않고 물세탁이 가능한 원단이다.


보통 한복 여행자들은 날씨 좋은 날, 하루 정도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다. 그것도 물론 재밌겠지만 나는 가능하면 한복만 입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을 시작하는 인천공항에서부터 한복을 입고 출발을 했다. 여행 중에도 날씨만 허락한다면 한복을 입고 돌아다녔다. 특별한 옷차림 덕분에 먼저 다가와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다. 새로운 시도는 새로운 경험을 불러온다. 그게 또 여행의 매력이지.


아직 당신만의 뚜렷한 취향이 없다면, 괜찮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각종 취미를 섭렵하고 외국어에도 능숙하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자랑하는 세대라고들 하지 않나. 하지만 우리 4060세대는 자기 취향을 발견하고 확장할 기회가 적었다. 더구나 초보 여행자라면 자신의 여행 취향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아직 해본 적이 없으니까. 여행을 거듭하다 보면 없었던 취향이 생기고 발전하게 된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과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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