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
믿을 수 없게도 밤을 꼬박 새웠다.
얌전히 침대에 누운 채로 단 1시간도 잠들지 못했다. 밤새 ‘생각’이라는 작은 벌레들이 멈추지 않고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짙은 안개 속에서 헤매는 것처럼 답답했다. 관자놀이와 머리 전체가 조이는 듯 통증이 몰려왔다. 서서히 방이 환해지고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어제 호찌민에 도착했다. 지난번에 연이은 2주 만의 방문이기에 비자가 필요했다. 나는 준비해 둔 E-비자로 무탈하게 입국장을 통과했다. 핸드폰 유심도 베트남 걸로 갈아 끼웠고 공항 내 ATM에서 당분간 쓸 돈을 인출했다. 지난달 달랏에서처럼 바가지 택시도 안 탔고 저렴한 공항 셔틀버스로 시내까지 수월하게 왔다. 예약해 둔 숙소는 금방 찾았고 직원은 사근사근했다. 명백히 이 모든 과정이 매끄러웠다고 장담한다. 이 정도면 완벽에 가까운 여행 첫날이다. 그런데 왜 잠을 못 자는 거냐고!
따지고 보면, 옆방이 밤 12시까지 시끄럽기는 했다. 겨울 나라에서 갑자기 여름 나라로 넘어와 온도에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에어컨을 켜면 추웠다가 끄면 더웠다가 반복해서 금방 잠들기엔 무리가 있었다고 치자. 그래도 그렇지, 어제 새벽 5시에 일어나 종일 움직였단 말이다. 최소한 밤에는 몇 시간이라도 잘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밤새도록 점점 또렷해지는 이 의식은 뭐지? 몸이 그렇게 피곤한데도 의식이란 놈이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사람들은 여행을 자주(그래 봐야 일 년에 한두 번) 다니는 내가 여행에 특화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겠거니 짐작한다. 배낭을 메고 여기저기 쏘다녀도 지치지 않는 체력과 머리만 대면 노상에서도 꿀잠을 잘 수 있는 능력과 어떤 음식이라도 거침없이 소화시킬 수 있는 위장 정도는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을 줄 아는데 전혀, 착각이다. 명색이 여행작가라면 그 정도는 되지 않겠냐는 기대는 가당치 않다.
미안하게도 일단 배낭부터, 못 맨다. 여행 초창기에는 ‘배낭족’이었지만 몇 년 전 큰 수술 이후로는 ‘캐리어 족’이 되어버렸다. 위장도, 매우 약하다. 남들보다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서 조금씩 자주 먹어야 한다. 소화불량은 어릴 때부터 고질병이었다. 특히 잠자는 부분에서 가장 취약하다. 시끄러워도 더워도 추워도 잘 못 잔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도 못 잔다. 역시 나이 들수록 심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건 악조건 속에서도 나름대로 대비책이 있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이라고 해서 꼭 배낭을 메지 않아도 괜찮다. 요즘은 캐리어로도 못 가는 곳이 거의 없다. 작은 기내용 캐리어라면 시골 오지를 가는 것도 가능하다. 이전에도 체력이 약했고 지금이야 말해 뭣하리. 그래서 내 속도에 맞춰 천천히 다닌다. 무리한 일정에 매달리지 않는다. 여행지에서는 하루에 몇 시간씩 걷는 게 예사이므로 집에서의 소화불량이 치유된다. 자동으로 다이어트까지 된다, 얼쑤! 게다가 가리는 음식이 없어서 이국의 낯선 요리도 꺼리지 않는다. 장기 여행이라도 한국 음식을 싸 들고 간 적은 없었다. 가장 큰 애로사항인 수면 문제에 대한 대책은 일차적으로 조용한 숙소를 구하는 것이다. 시설, 청결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일단은 방이 조용하면 합격이다. 다음으로는 너무 덥거나 너무 춥지 않으면 된다. 이런 조건이면 대체로 무난하게 잘 수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불면에 시달릴 때는 난감하기만 하다. 그래, 이유는 무슨. 이유 따위는 내려놓고 차분히 내 안을 들여다보았다. 불현듯 오래전에 읽은 인디언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자신이 쉬려는 것도 아니었다.
행여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였다.
그리고 영혼이 곁에 왔다 싶으면
그제서야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서
인디언처럼 말도 아니고 고속 비행기로 바다와 대륙을 넘어 다섯 시간을 넘게 날아왔다. 단순히 공간을 옮긴 것을 넘어서 시간까지 달라졌다.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엄밀히 말해 나도 떠나기 전의 나는 아니다) 나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이 완전히 바뀌는 것. 그 안에서 나의 영혼은 잠시 혼란에 빠졌나 보다. 몸은 여기로 왔지만, 영혼이 아직 따라오지 못한 걸까. 아직 영혼은 한창 바다를 건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멀리 있는 영혼에게 말했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너의 몸은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테니 걱정 말라고. 찬찬히 오라고. 아무리 여행의 시대라지만 시공간을 바꾸고 모르는 언어와 낯선 얼굴들 사이로 들어서는 건, 언제나 쉽지 않은 것을. 몸에게도 영혼에게도 적응할 ‘틈’이 필요한 게야. 안달하지 말고 여유롭게 주인답게, 기다려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