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가 싫다

호찌민

by 소율


증상이 심해졌다.

대도시를 거부하는 증상. 이건 나라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그랬다. 예전이라고 대도시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크고 세련되고 으리으리한 도시보다는 작고 소박하고 조용한 도시에 끌렸다. 평생 복잡한 대도시에서 살았던 사람과 평생 한가한 소도시나 시골에서 살았던 사람은 어떻게 다를까? 대도시에서 오래 살아 질려서 싫을 수도, 대도시가 익숙하지 않아 낯설어서 싫을 수도 있겠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똑같은 이유로, 익숙해서 좋을 수도, 낯설어서 좋을 수도 있겠다. 재밌네,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


나는 평생을 소도시에서 살다시피 했다. 고향인 충주에서 19년을, 제2의 고향인 과천에서 24년째 살고 있다(제1의 고향과 제2의 고향의 자리를 맞바꾸어야겠다). 나머지 몇 년은 서울과 안양에서 지냈다. 나는 이제 소도시용 인간이 되었나 보다. 베트남에서도 대도시는 거쳐 가는 길목이지 머무는 도시가 아니었다.


지난달 호찌민에 왔을 때는 숫제 시내에 들어가지 않고 공항 근처에서 하룻밤만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금은 두 번째 방문이지만 숙소 근처에서만 서식 중이다. 다음 날이 되어서도 여전히 침대에서 뒹굴었다. 전날 밤에 한숨도 못 잤기 때문에 아침에 조금이라도 자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내일 갈 숙소를 찾아서 예약하고 샤워를 하고 나니 오후 2시 반.


이 일대는 일명 ‘맥주 거리’로 알려진 ‘부이비엔’ 거리. 배낭여행자 숙소가 밀집해 있다. 밥을 먹은 뒤 소화도 시킬 겸 거리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이 길은 방콕의 ‘카오산 로드’를 닮았다. 그보다 덜 소란스럽고 길이 더 넓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들과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후 카오산 로드에서, 정확히는 옆 샛길 ‘람부뜨리 로드’에서 오랫동안 지냈다. 그곳은 네팔과 미얀마 여행을 준비하기에 알맞은 베이스캠프였다. 카오산 로드는 소문난 ‘배낭여행자의 메카’답게 사람 혼을 쏙 빼낼 듯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다. 그에 비하면 ‘람부뜨리 로드’는 내 집, 내 동네 같은 푸근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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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가 넘어서자 부이비엔 거리는 별안간 화려해졌다. 레스토랑과 바에서는 간판 조명을 켰고 길에다 의자와 테이블을 내어놓았다. 거리의 시작과 끝 지점에 울타리가 세워졌다. 밤에는 오토바이와 차들의 통행을 금지하고 워킹 거리로 변하는 것이다. 낮의 부이비엔이 특색 없이 밋밋한 느낌이었다면 밤의 부이비엔은 ‘이게 진짜 내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거리 곳곳이 작은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설핏 보아도 가족이 분명한(서로 얼굴이 닮았다) 밴드가 등장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열 두어 살로 보이는 어린 소녀. 격려하듯 뒤에 선 두 남자 중 한 사람은 기타를 쳤고 다른 한 명은 북을 두드렸다. 가끔 삑사리가 났지만 소녀는 꿋꿋하게 여러 곡을 불렀다. 저쪽 편에서는 고전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중국식 경극을 하고 있었다. 영화 〈패왕별희〉에 나오는, 가늘고 높은 음으로 노래하는 경극 말이다. 베트남어로 하는 경극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다가도 또 그럴듯해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길가의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나처럼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다. 거리는 귀청이 울리도록 시끄러웠다. 1시간쯤 지났을까? 이제 그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호기심에 구경하겠지만 매일 하라면 절대 사양이다. 나는 골목 맨 끝 쪽에 박힌 조용한 내 숙소로 재빨리 돌아왔다.


이상하게도 이 거리, 부이비엔은 정이 안 간다. 그동안 이미 베트남 소도시의 매력, 아니 마력에 빠져버렸나 보다. 정겹고 소박한 사람들, 산책하기 좋은 한가한 도로, ‘한꿕, 한꿕’이라고 소곤대는 속삭임, 대놓고 편안한 분위기. 여기는 그런 게 없다. 이런, 대도시가 눈에 차질 않는다. 동네가 딱히 위험하지도 않은데 왜 이리 관심이 안 갈까? 박물관이라도 가보려고 했지만 아무 의욕이 나질 않았다. 이런, 대도시 거부증이 심해졌다. 어쩌다 내가 대도시 거부자가 되어버렸나. 새삼 놀랄 일이다. 난 이제 도도하고 세련된 도시 여행자에서 완전히 밀려나는 건가? 그것도 나 스스로?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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