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랏
커피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심정이 된다.
좋아한다기엔 커피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좋아하지 않는다기엔 나만의 취향이 뚜렷하다. 커피와 나의 관계란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사이이고,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아직 ‘썸을 타는’ 관계라고 해야 하나.
주변에 커피깨나 마신다는 사람들 가운데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딱히 바리스타가 될 생각이 아닌데도 그저 커피가 좋아서, 커피에 대해 알고 싶어서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좀 멋있는걸! 나는 귀를 팔랑거리며 우리 동네 문화센터에도 초급 바리스타 과정이 있는지 찾아보곤 했다. 아니 찾아보기만 했다. 거기에서 그쳤으니 그들만큼 순수한 열정은 없었다고 해야겠지.
그런 주제에 커피의 선호도만큼은 명확했다. 원두 고유의 다양한 맛이 어우러지면서도 신맛이 강한 커피를 좋아한다. 원두를 약하게 로스팅하거나 산미가 강한 종류를 쓰면 그런 맛이 난다. 핸드드립 커피의 시작은 제주도 여행에서부터였다. 게스트하우스 2층에 있던 카페에서 20년 경력의 바리스타를 만난 것이다. 그는 갖가지 원두를 종류별로 내려 맛을 보여 주었다. 커피에는 쓴맛 외에도 고소한 맛, 신맛, 단맛이 공존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러다 ‘인생 커피’를 마주친 건 발리 우붓.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했더니 바리스타는 어떤 원두를 원하냐며 벽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 끝에는 인도네시아의 각 지방에서 생산된 원두가 족히 열 개 가까이 진열되어 있었다. 무얼 골라야 할지 몰라서 신중하게 하나를, 찍었다. 마침 지나가던 우연의 신이 축복을 내린 게 틀림없다. 오, 진하디진한 산미와 고소함, 단맛, 쓴맛이 조화된 그 황홀함이란. 그런 원두를 겨우 500g만 사 왔다니!
에스프레소를 알게 된 건 3개월의 유럽 여행 중 프랑스에 머물 때였다. 일주일을 같이 지낸 안시의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아침마다 정성껏 에스프레소를 뽑아주었다. 에스프레소는 ‘사약’에 가까울 거라고 지레짐작했는데 나는 매혹적인 강렬함과 묵직함에 반해 버렸다. 유럽에서 돌아온 후로도 종종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여행은 나를 커피의 세계로 초대했고 그렇게 해서 나에게도 ‘커피 취향’이라는 게 생겨났다.
베트남의 커피 중 80%를 생산하는 지역답게 달랏에는 카페가 널려 있다. 여행자 숙소가 모여있는 중심가에 예쁘고 유명한 카페들이 있지만 평범한 골목골목에도 카페가 없는 곳이 없었다. 가히 ‘1골목 1카페’라고나 할까. 예전부터 달랏은 현지인의 신혼여행지로 꼽히는 곳이란다. 몰려드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카페가 그만큼 많은 것이리라.
특이한 건 골목마다 있는 로컬 카페였다. 관광객들 말고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곳 말이다. 딱딱한 갈색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과 의자는 때가 묻어 반질반질했고, 영락없이 아동용이어야 할 만큼 작고 낮았다. 어둠침침한 내부에는 이른 아침부터 진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부터 중년의 아저씨,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들까지 손님들의 나이는 다양했다. 그런데 전부 남자다.
보통 카페는 여자들로 붐비는 장소 아냐? 베트남에서는 천만의 말씀이다. 카페란 당연히 남자들의 사교장이라는 듯, 나이를 불문한 남자들이 사이좋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수다를 떨었다. 아무 생각 없이 커피 한 잔을 마시러 들어갔다가 뒤통수가 따가워 혼났다. 하노이나 호찌민, 다낭 같은 대도시나 관광도시라면 이렇지 않을 것이다. 달랏 외에도 작은 도시일수록, 시골로 들어갈수록 카페에서 ‘금녀의 법칙’은 유효했다. 나는 내내 왜 그럴까 궁금했다. 여자들은 어째서 동네 카페에 가지 않을까?
나중에 커피 투어에서 해답을 찾았다. 커피 공장 한 켠을 카페로 사용하는 ‘라 비엣 커피(La Viet Coffee)’는 커피 산지 달랏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여행자라면 한 번씩은 들러본다. 하루는 그곳에서 진행하는 커피 투어에 참여했다. 직접 농장에 가서 커피 체리를 따고 씻고 말리고 로스팅하고 내려서 마셔보는 과정이다. 가이드는 커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열정이 넘치는 청년이었다. 그는 아라비카 원두와 로부스타 원두의 차이점이라든가 베트남과 달랏의 커피 생산 현황이라든가 하는 학술적인(?) 설명을 한참이나 늘어놓았다.
내가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로컬 카페의 이상한 법칙에 대한 연유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그는 말인지 당나귀인지 모를 궤변을 늘어놓았다. 베트남에서 흔히 마시는 로부스타 원두에는 카페인이 아주 많단다(이건 사실이다. 아라비카 원두보다 로부스타 원두가 더 많은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다). 카페인은 여자들에게 해롭기 때문에 커피는 남자들만 마신다네? 그래서 카페에는 남자들만 가는 거라네? 단번에 그는 ‘커피 박사’에서 ‘젊은 꼰대’로 퇴행해 버렸다.
이런, 예전에도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여자들은 몸에 해로우니 술 먹지 마라, 담배 피우지 마라.’ 술 담배가 여자에게 해롭다면 남자에게는 영양제라도 된다더냐? 커피에 든 카페인이 여자에게만 해롭고 남자에게는 건강식이라도 된다더냐? 달랏처럼 작은 동네에서 여자가 남자들만의 카페에 들어간다는 건, 스무 살의 내가 고향 사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은 현재 베트남에서도 버젓이 통용되는 것이었다. 재밌는 사실은 한국에서는 카페인 많은 해로운 커피를 여자들이 더 많이 마신다는 거지. 그가 한국에 와서 온통 여자들로 넘치는 카페를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카페인은 핑계일 뿐, 그저 베트남의 남성 문화가 아니냐 되물으니 마지못해 동의한다. 남자들만의 커피 문화에 ‘감히’ 여자들이 끼어드는 걸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 그게 원인이었다.
내 뒤통수에 쏟아지던 따가운 시선들은 그런 의미였다. 그렇다고 나까지 그 법칙을 따라줄 리가 있나. 내게는 ‘이방인’이라는 편리한 우산이 있었다. 내가 원할 때는 언제라도 그 우산을 펴들고 당당히 동네 카페에 들어갔다. 남자들이 쑥덕거리거나 말거나, 쳐다보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