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묻는다면 잠깐 생각을 해봐야 한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멋진 경치도 많고 물가도 저렴하고 음… 하지만 “베트남에서 뭐가 최고로 맛있었어?”라고 묻는다면 생각할 필요도 없다. 뭘 물어봐, 당연히 쌀국수지! 내 지론은 이렇다. ‘1일 1쌀국수를 먹지 않는다면 베트남 여행자가 아니다.’
베트남 여행에서 가장 많이 먹었으면서도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쌀국수다. 쌀국수를 빼놓고 베트남 여행을 말한다면 ‘꽃 없는 봄’을 맞이하는 것처럼 허망한 노릇이리라. 유독 쌀쌀하거나 비라도 오는 날이면 아침, 저녁으로 두 번씩 먹은 날도 수두룩했다. 굳이 맛집을 찾아갈 필요도 없었다. 단순한 내 입엔 맛집이나 동네 식당이나 비슷한 맛이다. 숙소 근처에서 또는 길을 가다 아무 식당에서 먹어도 한결같이 만족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맛집을 순례하는 데는 도통 소질이 없다. 한 번 갔던 곳을 계속 가는 이상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하여 그 집 메뉴를 얼추 다 맛본 뒤에야 다른 식당을 찾는다. 이러면 금세 단골이 되어 주인과 친해지는 반면에 어딘가에 숨어있는 또 다른 맛있는 식당을 놓치기 쉽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서 파는 쌀국수는 달랏 길거리 식당의 발꿈치도 못 따라간다. 일단 국물부터 실격이다. 먹어보면 너무 짜다. 베트남의 쌀국수는 국물이 담백하고 싱거운 게 최고 미덕이다. 베트남 음식에서 놀라웠던 건 쌀국수 외에도 모든 음식의 간이 기본적으로 싱겁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대로 조절할 수 있게 식탁에는 간장과 고추, 칼라만시 등 양념들이 놓여 있다. 더 짜게나 더 맵게 먹고 싶다면 본인이 양념을 추가하면 된다. 참으로 합리적이다.
나는 소고기 쌀국수인 ‘퍼 보’를 즐겨 먹었다. 익숙한 소고기 국물은 언제 먹어도 뿌듯함을 안겨준다. 같은 면이라도 한국에서 먹던 면발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인데 역시 원조의 맛이랄까. 위에 얹어주는 소고기도 미리 삶아서 편육처럼 썰어놓은 것, 생고기를 얇게 썰어 올려 아직 붉은 기가 남아있는 것 등이 있다. 처음에는 생고기를 먹기가 꺼림칙했는데 국물에 담그면 곧 익어버려서 담담하게 건져 먹곤 했다. 닭고기 당면 국수인 ‘미엔가’ 역시 국물이 예술이다. 닭고기 국물이 이렇게 깔끔한 맛을 내다니. 부드럽게 술술 넘어가는 당면은 또 어떻고. 잡채에 들어가는 고구마 당면이 투박한 시골 아저씨 같다면 미엔가의 당면은 우아한 귀부인이랄까. 달랏을 떠나기 전날, 후미진 길가 식당에서 처음으로 미엔가를 먹었다. 우째 이런 일이! 퍼 보와는 또 다른 신세계였다. 진즉에 와서 먹을걸.
노란색 두툼한 면발에 새우나 돼지고기, 땅콩, 허브를 넣어 비벼 먹는 ‘미꽝’ 역시 별미지. 아, 침이 흐른다. 중부지방에서라면 미꽝을 빼놓을 수 없다. 메콩강 델타 지역은 건면을 사용하는 ‘후띠에우’가 흔했다. 독특하기로는 껀터의 작은 시장에서 먹은 후띠에우가 첫 번째였다. 국물이 간장 색깔에다 달콤 짭조롬한 것이 먹을수록 빠져드는 맛이다. 새우, 돼지고기(삶았는데 껍질만 튀긴 것처럼 바삭하다), 구운 양념 고기가 잔뜩, 채소도 듬뿍. 날마다라도 먹을 수 있겠다. 다른 지역에는 없는 종류의 쌀국수였다. 나는 그것에 ‘마약 쌀국수’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석쇠에 구운 양념 돼지고기와 채소를 면 위에 얹어 소스와 함께 비벼 먹는 ‘분팃느엉’은 언제 먹어도 오케이. 길을 걷다가 돼지고기 굽는 냄새만 나도 저절로 고개가 돌아간다. 이미 식사를 한 뒤라면 어찌나 아쉽던지. 그럴 때면 애꿎은 나의 작은 위장을 원망한다.
하루를 새벽부터 시작해서인지 베트남 사람들의 식사 시간은 비교적 이른 편이다. 점심도 2시가 넘으면 장사를 접는다. 먹을 사람들은 다 먹었고 재료도 떨어졌으니. 저녁이라고 다르지 않다. 6시 반이면 문을 닫으니 조금만 늦게 가도 허탕 친다. 초저녁에 장사 마치고 문 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걸 알아채고 나서는 배가 덜 고프더라도 늦어도 6시까지는 식당에 간다. 일단 쌀국수 국물을 한 입 넘기고 나면 바로 배고파지고 식욕이 생긴다. 그러니 조금 일찍 간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다.
여행 와서 하는 일 중 쌀국수를 주문하는 것만큼 쉬운 게 있을까?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끓고 있는 커다란 솥단지 안을 들여다보면 끝. 영어고 베트남어고 몰라도 상관없다. 그냥 여러 개의 솥단지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가리키면 된다. 여행 내내 쌀국수를 먹고 실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항상 첫입을 먹을 때는 양이 많지 않나 싶은데 결국 면발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게 된다. 국물까지 양껏 떠먹고 나면 어지간히 배가 부르다. 그래도 걱정 없다. 금방 소화가 되고 또 배고파지니까. 그럼 다시 쌀국수를 찾게 되고……. 마성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도다. 나같이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는 천상의 음식이랄까. 아무리 먹어도 소화불량이란 있을 수 없는 일.
현지인은 아침 식사로 반미(바게트)도 많이들 먹지만, 한국 사람 입맛에는 뜨끈한 국물과 함께 먹는 쌀국수가 최상의 메뉴다. 나는 칼라만시 한 조각을 반드시 국물에 짜 넣는다. 있는 그대로 먹어도 담백하지만, 새콤한 즙이 더해지면 한결 깊고도 풍부한 맛을 낸다. 위에 푸짐하게 얹어진 고기와 함께 후룩후룩 면발을 건져 먹고 짬짬이 국물도 먹는다. 곁들이는 채소도 국물에 넣었다가 살포시 익으면 면과 같이 먹는다. 그 모든 것이 조화롭다. 작은 그릇 하나가 전부인데 이렇게 완전할 수가. 뜨거운 국물에 국수 가락을 담그면 스르르 풀어지는 것처럼 여행자의 긴장과 불안도 같이 풀어진다. 국물의 온기가 몸속을 흘러 마음까지 덥혀준다. 배 속을 채우는 양식과 더불어 소박한 위로가 든든하게 나를 채운다. 그러면 나는 다시 홀로 하는 이 여행을 씩씩하게 마주할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쌀국수는 베트남 여행의 ‘닳지 않는 건전지’였다.
집으로 돌아가면 가장 그리울 것이 쌀.국.수. 아, 언제나 그리울 쌀국수여! 대체로 먹는 일에 무심한 나지만 쌀국수에서만큼은 용암을 내뿜는 활화산처럼 식탐이 치솟는다. 베트남에 다시 온다면 이유는 무조건 쌀국수가 나를 부르기 때문일 터. 어쩌면 오직 쌀국수만을 탐하는 먹방 여행에 도전할 수도 있겠다. 다음번 여행에서는 나도 미식가로 등단하게 될지도. 앞에서 여행자의 변신은 뭐라고 했겠다? 무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