깟바섬
자꾸만 눈길이 갔다.
도무지 한 번도 칭얼대지 않는 10개월짜리 아기라니. 누가 안아도 방긋방긋. 옆에는 한시도 쉬지 않고 조잘대는 오빠, 서너 살쯤 되었겠다. 배 안에서 요 천사들에게 반하지 않은 승객은 한 명도 없다는 데 내 ‘롤 빗’을 걸어도 좋다.
‘하롱베이와 란하베이’를 묶은 일일 투어를 떠났다. 아쉽게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먹구름이 잔뜩 끼었고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기분 좀 내보려고 전망이 좋은 2층으로 올라갔다가 덜덜 떨면서 도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반 이상이었다. 그래도 배는 착실히 달려 하롱베이에 도착했다.
곧이어 카약을 내리고 손님들에게는 ‘신선놀음’ 시간을 하사했다. 사람들은 두 명씩 짝을 이뤄 카약을 탔다. 날이 흐린데도 바다는 초록색이었고 아름다운 카르스트 지형의 섬들이 병풍처럼 늘어섰다. 바다 색깔은 서양화요, 섬들은 동양화였다. 섬에 둘러싸여서인지 바람이 잠잠했다. 노를 저으니 추위도 가시는 듯했다. 엉뚱하게도 몇몇 카약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로 빙의했다. 누가 더 빨리 가나 경쟁심에 불타서 열성적으로 노를 저었다. 동행과 나는 ‘왜들 저런대?’라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우리 카약은 잔잔한 물살을 느끼며 천천히 부유했다. 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선놀음이로구나. 시조에서나 나오는 ‘신선들의 뱃놀이’가 정확히 어떤 행위인지 몰랐었는데 그 단어를 온몸에 새기게 되었달까. 나는 명사가 동사로 변환되는 걸 온전히 느꼈다. 하롱베이는 명성 그대로였다. 아니 하롱베이에서 신선처럼 뱃놀이를 즐기는 건 명성 이상이었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투어는 이미 제값을 했다고 생각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는지 손님들은 그만 배로 돌아오라는 소리에도 뱃놀이를 계속하고 싶어 했다.
‘신선놀음’ 시간 다음은 ‘바다 수영’ 시간이다. 배는 하롱베이를 떠나 작은 섬 근처에 멈추었다. 수심이 얕아 수영하기 좋은 장소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찬 바닷물에 과연 사람들이 들어갈까, 의심했지만, 언제나 용감한 ‘첫 타자’는 있기 마련. 주저하던 한 사람이 ‘에라, 모르겠다!’ 하는 표정으로 뛰어들자 머뭇거리던 다른 사람이 ‘그렇다면 나도!’ 하는 얼굴로 몸을 던졌다.
두 아기를 데리고 있던 젊은 부부는 남편이 먼저 들어갔다, 어깨에 큰 아이를 매달고. 널찍한 아빠 등에 올라탄 아들은 신이 나서 종알거렸다.
“저 아저씨는 문어같이 헤엄쳐! 나는 물고기같이 헤엄친다!”
오, 아이가 가리키는 남자는 머리카락이 절반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하 웃으며 아이를 넘겨받았다. 문어 아저씨 등에 갈아탄 아이는 다시 깔깔거렸다. 아들을 친구에게 넘긴 남편은 배에 올라와 아내에게서 어린 딸을 받아 들었다.
아내가 “어때?”라고 묻자 “괜찮아, 물속은 춥지 않아.”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물속에서 엄마와 만난 아들은 또 소리쳤다.
“엄마, 나 좀 봐! 나 물고기처럼 헤엄치고 있다고!”
여전히 문어 아저씨 등에 올라탄 채였지만 말이다.
이렇게 어여쁜 가족을 나는 자꾸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아빠가 눈에 띄었는데, 굉장히 자연스럽게 당연하단 얼굴로 아기를 돌보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점심을 먹을 때도 수영을 할 때도 가만히 배를 타고 있을 때도 아내와 번갈아 가며 아이들을 챙겼다.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어린 딸을 내내 안고 있으면서도 조금의 짜증이나 생색을 내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놀아주는’ 게 아닌 ‘같이 노는’ 아빠였다.
엄마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육아의 시간을 아빠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내 아이를 내가 돌본다는 ‘능동’이 아니라 아내가 할 육아를 ‘도와준다, 해준다’ 이런 수동적인 의미의 언어를 주로 사용한다. 누군가에게 어떤 행위를 ‘주는’ 건 그게 곧 자신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의 일이라면 ‘주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게 되겠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심으로 이렇게 행동하는 아빠는 드물었다.
이 가족의 분위기는 ‘자연스러움, 부드러움, 편안함, 따뜻함, 미소’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옆에 있던 나까지 저절로 심장 부근이 말랑해졌다. 아직 10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투어 내내 한 번도 울지 않는 건 아마 그런 덕분일 테지. 금발에 갈색 눈동자가 별처럼 빛난다. 거기다 아랫니가 딱 두 개.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나는 왼쪽 검지를 장난감 삼아 아기에게 내주었다. 어쩜 낯도 안 가릴까. 투어에서 돌아오는 길, 모르는 아줌마의 손가락을 조물락거리며 잘만 놀고 있으니. 그들에게 특히 어린 딸에게(그래, 난 딸이 없다) 흠뻑 빠진 나는, 살며시 아기를 안아 보았다. 손가락이 아닌 낯선 얼굴을 코앞에서 마주한 아기는 갑자기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아아 너는 내 손가락만 좋아하는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