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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Sep 12. 2022

해맞이숲길만 콕집어 걷는법,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2편

해맞이숲길이 좋아


나는 사랑스러운 나만의 해맞이 숲길을 되찾고 싶었다. 9월, 무서운 태풍 힌남노가 지나갔다. 덕분에 하늘을 말끔하게 닦았다. 햇빛이 쨍 내리쬐고 공기가 상큼해졌다. 


일기 예보에 수요일 기온이 선선하단다. 붉은오름 자연휴양림은 8시에 문을 연다. 7시 반에 출발해서 8시에 딱(!) 도착하자. 꿈은 야무졌다. 그러나 생각대로 될 리가. 집에서 8시 15분에 나왔는데 어째서 도착은 9시인가(35분 거리).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 김밥 한 줄을 샀다만 뭐가 그리 시간이 걸렸는지.


세 번째 방문의 목표는 명확했다. '해맞이 숲길 완전 정복!' 거창하다, 무슨 정복씩이나. 길치 주제에 말이야. 그냥 행복하게 숲길을 즐기기. 붉은오름과 상잣성 숲길은 건너뛴다. 왜냐, 이젠 기운이 달려서요. 봄엔 세 개의 길을 다 걸었지만 제주 생활 막바지, 그나마 남은 에너지를 잘 분배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해맞이 숲길로 막바로 가는 길을 몰라! 두 번째 왔을 때 영혼이 가출한 상태로 사람들 꽁무니만 따라갔다. 워낙 지쳐있어서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치인도 아닌 것이 뭐가 맨날 기억이 안 나는 건지요. 


9시도 이른 시간이었을까. 주차장엔 차가 몇 대 없었다. 이번에도 도민 혜택을 받고 매표소를 지났다. 길을 따라가면 왼쪽에 붉은오름으로 가는 입구가 나타난다. 자석이라도 붙인 듯 자연스레 발걸음이 그리로 향했다. 이 길로 가면 안 돼. 나는 정신을 챙기고 다시 걸었다.   



지도에 뻔히 목재문화 체험장 옆에 '해맞이 숲길 가는 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걸 찾았으면 내가 길치가 아니겠지. 나는 어영부영 반대편 숙박 동이 있는 지점까지 갔다. 때마침 저쪽에서 청소하는 직원을 만났다. 


"해맞이 숲길로 바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요?"

"저쪽 길로 들어가세요." 




목재문화 체험장 왼쪽 길이 해맞이 숲길로 가는 직통로. 여기였구나 여기였어. 나는 얄팍하게 감동했다. 햇살은 4월보다 더욱 강렬했다. 하늘이 시리게 새파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선했다. 기온은 겨우 23도. 걷는 사람은 오직 나뿐.


안내도가 나타났다. 햇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선명했다. 동그란 돌바닥이 깔린 어둠 컴컴한 길로 들어섰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숲길에 들어서자 멧돼지. 뱀 등을 조심하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제주에 살면서 멧돼지는 아직 만난 적이 없었다. 숲길 모임에서 뱀은 여러 번 보았다. 가을 뱀은 독이 오른 상태라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저건 그냥 하는 경고문이 아니다. '진짜' 주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바닥엔 나뭇잎, 열매들과 가지들이 뒹굴었다. 태풍 힌남노의 위력이리라. 태풍이 지난 지 겨우 이틀밖에 안 되었으니까. 날씨는 시원한데 나는 왜 이리 목이 탈까? 등에 맨 가방에 물 두 병이 들어있다. 언제나 두 병씩 챙긴다. 남들보다 물을 많이 마시는 탓이다. 내가 먹는 약들이 목을 마르게 하는 성분이 있단다. 물이 모자랄까 살짝 걱정되었다.


갈림길이 나왔다, 상산 삼거리다. 곧이어 제1목교가 나타났다. 해맞이 숲길의 3개의 다리 중 첫 번째. 사실 다리라기엔 무척 짧다. 다리 본연의 기능보단 귀여움의 역할을 맡았달까. 해맞이 숲길의 아기자기하고 예쁜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다음엔 오름 삼거리. 봄엔 이정표 아래 벤치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여기까진 바람이 불지 않는 평탄한 길이었다. 


오른쪽으로 빠지면 말찻오름에 들르고 왼쪽으로 빠지면 제2목교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말찻오름을 올랐다 가느냐 빼고 가느냐의 차이다. 나는 꼭 들르라고 권하고 싶다. 오름엔 세 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다. 가는 길보다 정상의 전망이 근사한 곳, 전망은 그다지 볼 것이 없으나 가는 길이 아름다운 곳, 둘 다 멋진 곳. 말찻오름은 2번에 해당한다.


말찻오름 가는 길로 들어서자 슬슬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풍경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솔길 오른쪽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숲이었다. 간간이 나무들이 쓰러져 있었다. 지난 태풍의 위력이겠지. 아래 숲길보다 지대가 높은 오름 쪽이 피해를 받았나 보다. 드디어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속이 트였다. 


길에는 덜 익은 열매가 가지째 떨어져 뒹굴었다. 죽은 나무에 버섯이 가득했다. 그리고 드디어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없는 오름이란 있을 수 없는 일. 그제야 제대로 걷는 맛이 났다. 아직은 9월 초. 여름의 기운이 완진히 빠져나가지 못했다. 바람을 쐬지 못하는 트레킹은 완벽하지 않은 법. 



그런데 가지 많은 나무 몇 그루가 길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섰다. 태풍에 뽑히고 넘어진 것이었다. 태풍 이후 아직 숲길 정비를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자꾸 얼굴에 달라붙었다. 돌연 겁이 났다. 이대로 계속 가도 괜찮을까? 괜히 오름길로 왔나? 


이제까지 온 게 아까워서 되돌아가긴 싫었다. 나는 조심조심 나무 위로 넘어가거나 몸을 낮춰 굵은 가지 사이로 지나갔다. 태풍 뒤의 숲엔 이런 돌발 상황이 존재하는구나. 유사 야생 탐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생각보다 어렵게 도착한 말찻오름 정상. 


처음 여길 와본 사람은 실망을 할지도 모른다. 정상이란 말이 무색하게 전경은 전혀 안 보이니까. 표지판이 없다면 정상인 줄 모를 것이다. 여태 걸었던 숲길과 다를 바 없었다. 조금 허무한 말찻오름의 정상. 앗 정상 표지판이 엉망이었다. 나뭇잎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지저분했다. 역시 태풍의 여파. 



전망대가 따로 있긴 하다. 보통 오름엔 나무 평상 같은 전망대를 만들어 놓은 곳이 많다. 말찻오름의 전망대는 그저 커다란 바위에 불과하지만. 정상보단 전망대 쪽이 아래를 내려다 보기가 낫다. 그러나 역시 울창한 나무에 가려 전망이 좋진 않았다. 말찻오름은 원래 이런 곳이다.  


바위 옆 오솔길로 오름을 한 바퀴 돌아 내려갔다. 이쪽 길은 올라온 길보다 수월했다. 아직도 나뭇잎의 초록이 생생했다.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나랑 방향이 반대네? "오름을 거꾸로 도시는 거예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들은 아니라고 했다. 


오름 입구로 돌아갔을 때 깨달았다. 오름 정상을 향하는 길엔 순방향과 역방향이 있다는 걸. 하필 역방향 앞에 커다란 세로 지도판이 세워져 있어서 당연히 그 길로 올라갔던 것이다. 이정표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헷갈리게 생겼다. 아무 데로나 가도 상관없다만. 순방향이 걷기가 편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놈의 대충 보는 버릇 때문에 길치가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오름을 내려가서 그다음은 누워서 떡 먹기. 아까 지나왔던 오름 삼거리를 거쳐 쭉 걸어가면 된다. 자연휴양림이라고 쓰인 화살표를 따라간다. 제2목교 발견. 걷기 좋은 야자수 매트 길과 삼나무 숲길이 내내 이어졌다. 모자를 벗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머리에도 바람을 좀 들여보내자고. 


4. 7km 지점에 이르렀다. 남은 거리는 겨우 2km. 12시였다. 출출했다. 사 온 김밥을 어디서 먹을까? 마땅히 앉을 쉼터가 없었다. 나는 밥을 먹고 바로 운전을 하면 소화가 안 되는 부실한 위장을 갖고 있다. 표지판엔 종점까지 1시간이 남았다고 적혀 있었다. 점심을 먹기엔 딱 알맞은 시점이었다. 나는 그냥 서서 먹었다. 식후 1시간을 걸으면 소화가 잘 될 테지. 김밥 냄새를 맡았는지 까마귀가 근처에서 깍깍 울었다.    



또 쓰러진 나무를 지나 초록 초록한 길을 걸었다. 마지막 다리 제3목교가 보였다. 정말 다 온 것이다. 드디어 종점. 실제론 한 시간이 아니라 30분이 걸렸다. 하긴 2km가 남았었으니까 30분 거리가 맞았다. 6.7km의 해맞이 숲길 걷기가 끝났다. 종점에서 조금만 걸으면 아까의 시작점 해맞이 숲길 입구였다. 


오늘도 행복한 혼숲이었어, 나는 웃었다. 9시에서 12시 30분까지 총 3시간 30분을 걸었다. 속도가 너무 느리긴 해. 사진 찍느라 자주 멈추어서 그랬나. 근처 삼나무 숲 평상 쉼터. 두 여인이 자기 집 안방처럼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행과 함께하면 저런 점이 좋지. 


그런데 그 앞 포장도로에서 내 팔뚝의 반만 한 뱀이 지나갔다! 오마나, 하마터면 못 보고 녀석을 밟을 뻔. 사람이 다니는 멀쩡한 도로 위를 뱀이 활보하네. 뱀과 멧돼지를 조심하라던 플래카드는 역시 빈말이 아니었다. 제주도에선 언제나 뱀 조심하세요!  


나는 목재문화 체험장 옆길로 나왔다. 아직도 해는 쨍쨍했다. 햇빛 아래를 걸어가는데도 덥지가 않았다. 오히려 상쾌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기온이 29도, 습도가 25%??? 제주에서 이렇게 습도가 낮은 날이 다 있다니! 표선면의 9월은 때때로 이런 날씨인가요? 갑자기 표선면을 막 사랑하고 싶어졌다.



에고, 피곤했다. 나는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숲길을 걸은 후엔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운전을 하기엔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잠시 카페에 들르는 게 나의 루틴. 아메리카노와 디저트를 먹으면서 몸의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 충전이 완료되면 쌩쌩 집으로 달려 달려.





<해맞이 숲길 입구 찾는 법>

1.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매표소에서 목재문화 체험관으로 직진하시오.

2. 체험관 왼쪽 길로 들어서시오.

3. 해맞이 숲길 시점 표지판 발견. 

4. 동그란 돌이 깔린 오솔길로 들어가시오.


<해맞이 숲길 6. 7km 걷는 순서>

입구 - 상산 삼거리 - 제1목교 - 오름 삼거리 - 말찻오름 입구 - 전망대 - 오름 정상  - 오름 삼거리 - 제2목교 - 소낭 삼거리 - 제3목교 - 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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