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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동생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아무렴, 왜 아니겠어.

by 둥리지

둘째는 빨리 나온다던 육아계의 전설은 나를 비껴갔다.


오늘이 마지막 진료일까 하며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검진대에 오른 것이 벌써 세 번째. 여전히 아이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던 날은 예정일 하루 전날. 첫째 아이도 예정일보다 사흘을 넘겨 태어났기에 한 번 경험해 본 기다림이었지만 이번에는 유독 조바심이 났다.


출산하러 가는 날 첫째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곧 산모의 보호자가 될 사람과 첫째 아이의 보호자가 될 사람이 모두 내 남편인 상황이라는 것. 틈날 때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거듭했다. 첫째가 잠든 새벽에 신호가 오면 어떡하지, 저녁 시간이어도 큰일인데.


답답한 상황 탓에 기분이 유독 가라앉는 날이면 처지 비관으로 시뮬레이션이 종료되기 일쑤였지만, 어떤 날은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시나리오를 건져 올리기도 했다. 이른 새벽이나 아침에 신호가 오면 나는 병원으로 가고 남편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남편이 병원에 돌아오는 대로 얼른 힘주어 아이를 낳고(!) 보호자의 임무를 다한 남편은 첫째를 데리러 가는 것.


배불뚝이 엄마가 머리 굴리느라 고생하는 모습이 조금 안 되어 보였을까. 뱃속 아가의 작은 손은 최선의 시나리오를 들어 올려 주었다. 이른 새벽에 신호를 보낸 뱃속 아가는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곤히 낮잠을 자고 있는 시간에 딱 맞춰 태어나주었다. 6월 20일 오후 12시 52분. 여름 새잎 위로 떨어진 햇살이 눈부신 계절이었고, 태양이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간이었다.


여기까지가 전지적 엄마 관점. 첫째 아이 관찰자 시점으로는 다음과 같지 않았을까. “엄마는 오늘 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갔다. 이제 엄마는 열세 밤이 지나야 집에 온다. 오늘 어린이집에 갔다 와도 엄마가 없을 거라고 했다. 진짜 싫은데. 엄마는 언제 올까.”




갓 태어난 아이에게 수유를 하면서도 정신은 온통 첫째 아이에게 가 있었다. 어떻게 해야 첫째 아이 마음이 덜 다칠까. 책과 선배 엄마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우리 집에 녹여낼 팁들을 쏙쏙 골라 실천에 옮길 준비를 했다. 첫째, 동생과 집에 가는 날 형아 된 걸 축하한다며 선물 건네기. (선물은 동생이 아가별에서 가져온 거라며 동화적 요소 한 스푼 더해줄 것!) 둘째, 첫째 아이 앞에서는 모유 수유하는 모습 되도록 보이지 않기. 어쩔 수 없을 때는 첫째 아이 간식도 함께 챙겨 주기. 셋째, 첫째 아이에게도 아가 돌보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역할 주기. 이를테면 기저귀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거나 딸랑이를 흔들어달라고 부탁하기.

이번에는 첫째 아이가 최선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여주었다. 기저귀와 손수건을 착착 배달해 주고, 동생이 앙앙 울 때면 오르르 까꿍 하며 그림책으로 배운 재롱을 부렸다. 몸을 젖혀가며 울던 둘째는 형아 얼굴만 보이면 울음을 뚝 그쳤다.


둘째는 이때나 지금이나 장난감을 잘 가지고 놀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장난감보다 형아가 더 좋아서.


동생은 형을 좋아했고, 형은 그 사랑에 화답하듯 더욱 바쁘게 동생을 위해 움직였다. 너도 더 크면 맛있는 과일 먹을 수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며, 내 품에 안겨 꼴딱꼴딱 젖 먹던 아기를 달래주던 첫째 아이. 아휴, 누가 누구를 달래야 하는 상황인지도 모르고. 덕분에 내가 둘째 아이를 따로 재우러 들어가는 시간도, 모유 수유도 순탄했다.

아니, 순탄한 줄로만 알았다.


점과 점이 모여 선이 되고 그것이 모이면 더 큰 그림이 된다. 큰일이 있기 전에는 늘 작은 징후가 있다. 첫째 아이가 찰나 같은 순간에 느꼈을 서운함과 외로움도 처음에는 하나의 점이었을 것이다. 네 살짜리 작은 심장에 콕콕 박힌 점. 유독 짙고 푸른 점이 찍히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작은 점 하나가 배어 나온 눈물에 얼룩지는 날도, 서운함과 속상함이 모여 더 큰 슬픔이 되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은 심장에 하나의 점이 더해졌을 어느 날, 아이는 말했다.


엄마, 동생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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