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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꼬는 말, 아이들의 살점을 물어뜯는 말

<교사의 말> 2장: 비꼬는 말을 읽고

by 둥리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상상해 보자.


당신은 열다섯 살, 교복 입은 중학생. 급식을 배불리 먹고 나른한 기분으로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지금은 5교시. 내려오는 눈꺼풀과 싸우고 있는 당신을 발견한 선생님께 들을 꾸중 한 마디를 고를 수 있다면, 다음 중 어떤 말을 듣고 싶은가.


후보 1. "어유, 대-단히 훌륭한 학생 한 분이 여기 계셨네!"

후보 2. "○○아, 수업에 집중해야지."


후보 1번의 대사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웃음기가, 아이를 향한 장난스러움이 아이들과 나를 친밀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던 날이 있었다. 아이를 다그치지 않으면서도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내가 제법 친구 같은 선생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딘가 불편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을 하나둘 만나기 전까지는.


나의 장난에 웃지 못하는 아이의 눈빛이 말했다. '하려는 말을 그냥 하세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시고요.'


내가 실수한 건가 싶다가도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숨을 곳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던 학생의 ‘객관적 잘못’ 뒤로 나의 비꼼은, 내 말에 들어 있던 비교육적 요소는 재빨리 몸을 숨겼다. 그러고도 불편한 마음이 들면 그 학생을 슬쩍 칭찬하는 식으로 내 불편한 마음을 달랬다. 아이는 바란 적 없는 공허한 칭찬으로 이미 다친 아이의 마음을, 아이의 자존심을 급하게 동여맸다.




웃지 못하는 아이 앞에서 내 마음이 덜컥 구겨지던 이유를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책 <교사의 말>은 교사의 비꼬는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장난스러운 놀림이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다지고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때도 있었지만,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야단치거나 수업을 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려고 할 때 놀리는 투로 말하면 늘 문제가 생겼다. 이미 기분 나쁜 상태에 있는 아이들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 <교사의 말> 32쪽


누군가는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고학년 아이들은 비꼬는 말을 써도 잘 이해하고, 심지어 아이들 스스로도 비꼬는 말을 많이 쓴다고. 하지만 그 주장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교실에서 비꼬는 말을 쓰는 게 정당화될 순 없다. 어쨌거나 비꼼의 숨은 의도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비꼼을 '상대방에게 상처나 고통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쓰는, 날카롭고 때로는 풍자적인, 혹은 반어적인 말'이라고 정의한다. 비꼬는 말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sarcasm’의 그리스 어원은 ‘sarkazein’인데, 그 뜻은 '개처럼 살점을 물어뜯는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 <교사의 말> 33쪽


비꼬는 것은 개처럼 살점을 물어뜯는 것이다. 내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학생을 비꼬는 말을 한다는 것은, 학생의 언행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어뜯는 것이었다. 학생의 속살을, 실은 잘해보고 싶었던 학생의 마음을.


그게 권위인 줄 알았다고, 나름대로 친밀감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고 항변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모르는 것도 잘못일 때가 있으니까. 지난날이 부끄러워 숨고 싶어지는 마음과 함께, 어서 바른 답을 알려달라는 마음이 차오를 때쯤 작가는 잘 정리된 답지를 내민다. 비꼬는 말이라는 것이 본디 교묘한 구석이 있기에 바른 언어습관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리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작가는 다양한 예를 활용해 우리를 바른 길로 천천히 인도한다. 다음은 작가가 제안한 바른 언어습관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상황 1.

코리가 글쓰기에 집중하지 않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교사는 그 모습을 보고 긍정적이고 밝은 어조로 “코리, 열심히 하니까 참 좋네!” 하고 말했다. ☞ 학생은 교사가 빈정대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게 되고, 이것은 학생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게 된다. 따라서 “코리,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야지.”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상황 2.

학생이 잘못된 답을 말했을 때 “오, 그런 깊이 있는 대답을 하다니, 대-단히 고맙다.”라고 말했다. ☞ 이는 명백히 비꼬는 말이 되고, 수치심을 줄 수 있다.


상황 3.

“‘자리에 앉아서 들어’라는 말에서 도대체 어떤 부분을 이해 못 하는 거지?”라는 말은 비꼬는 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가벼운 톤으로 말하면 빈정대는 것처럼 들리고, 날카롭게 말하면 일부러 상처주기 위해 하는 말로 들린다. ☞ “명심해, 지금은 자리에 앉아서 들어야 하는 시간이야.”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상황 4.

“너희는 열두 살이야! 책상에 낙서하는 건 어린애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하고 말하면 비꼬는 말은 아니지만 수치심을 줄 수 있다. ☞ 이럴 때는 말없이 낙서를 지울 지우개를 건네주는 편이 좋다.


상황 5.

“이 반에 너 혼자만 있니? 너만 챙겨줘야 해?”라는 말 대신 "다른 친구들 봐주고 금방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선생님이 따라다니면서 치워줘야 되니?"라는 말 대신 "각자 자리는 스스로 치우자."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다짐하는 마음으로 책의 내용을 눈에 담는다. 습관에 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익숙한 언어습관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몇 번이고 꾹꾹 눌러 담아본다. 나에게는 아이들의 약한 구석을, 여린 마음을 물어뜯을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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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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