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만지에서 만난 무몽(無門)
7. 7일째(죠만지), 무몽(無門), 잊혀지지 않을 무몽이여!
1월 19일(화)
아침 일찍 서둘러 나와 야쿠오지에 들어선다. 아직 날이 채 밝기 전이라 사위가 어둑어둑. 히와사 일대의 모습과 일출을 곁들여 볼 수 있어 행복한 아침이다.
오늘 찾아갈 사찰은 88개의 순례길에 있는 절에 속해 있지 않은, 번외 사찰에도 속해 있지 않은, 다른 종파의 절이다.
죠만지(城滿寺)
26.5키로를 걸어 아아카이난역에 도착한 후, 길에서 빠져 4키로 정도를 더 걸어가야 만날 수 있는 절인데, 지도상에도 나타나 있지 않아 과연 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 어제부터 고민고민 했는데, 히와사 민숙에서 친절하게도 혹시나 택시를 타게 될 경우를 대비해 메모지를 한 장 써 주셨다.
택시 기사님
죠만지까지 부탁합니다.
어젯밤 예약했습니다만
답장이 없어 예약이 됐는지 ...
죠만지에서 머물 숙소를 가르쳐 주십시오.
죠만지 전화...부탁...
(해석이 영 그렇지만, 내용인즉 저를 걱정해서 택시기사님께 잘 숙소까지 챙겨달라는 것이다.)
이 메모지를 잘 챙겨 놓고, 아와카이난 역까지 잘 갖고 가야한다. 오늘 머무는 것에 대해 불안할 뿐이다.
하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그게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다. 잘 해결될 것을 믿고 간다.
'히와사 민숙의 주인아주머니,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 고마운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56번 국도를 따라 히와사 터널도 걷고, 그렇게 해서 15키로 즈음 걸으니 무기(牟岐) 마을이 나타나고, 이어 나까무라도 지나가니 어느 새 배도 출출해질 무렵 우치쯔마(內妻)의 해변에서 서핑을 즐기는 청춘의 모습이 눈에 띄어 활기를 얻는다. 방금 서핑을 마친 젊은이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말을 건네며 사진을 함께 찍을 수 있겠냐며 부탁을 했더니 흔쾌히 포즈를 취해준다.
차에 실린 서핑보드를 귀찮은 기색도 없이 꺼내 함께 사진을 찍는다. 두 개의 보드를 꺼내려하기에 괜찮다고, 커버를 벗기려기에 괜찮다고 하고는 가볍게 한 컷 완성한다. 약간 추운 날씨였는데도, 즐거운 표정에, 아가씨의 'V' 사인도 멋지게 해주신다. 이들의 페북 아이디를 못 받은게 아쉬웠다. 이들이 떠난 한 켠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 점심을 먹는다.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드넓은 바다를 보면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행복한 점심을 먹는다.
'올 여름엔 나도 동해에 가서 서핑을 배워야지.'
길은 해변으로 이어져 걷는 길이 즐겁다. 정말 날씨도 죽여주고, 바닷바람도 선선하니 걷기 딱 좋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와카이난 역에 도착. 역전에 택시 한 대가 있다. 유혹이 생긴다. 4키로에 1,200엔 정도이면 타도 되지 않을까? 오헨로 길도 아닌데. 택시 아저씨도 친절하게 다 가르쳐주시는데. 히와사에서 건네준 메모지를 만지작만지작.
'그래, 그냥 걷자. 어차피 시간도 많은데.'
조금 걸으니 오른쪽으로 193번 도로가 나타난다. 죠만지 가는 방법을 따라 이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다리가 나오고 그 너머에 절이 있다고 했지. 그래도 가는 길이 오헨로 길이 아니다보니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어져서
지나가는 차를 불러 세우려고 몇번을 시도해 보았는데, 여기선 태워줄 기색 없이 차들이 내달린다. 국내 도보 여행 중, 몇 번 차를 얻어 탄 기억이 마냥 새롭다.
예전의 감회가 잔잔히 떠오른다.
영월에서 법흥사 가는 10여 키로미터의 거리를 태워주셨던 영월군청 소속 공무원(정년이 8개월 남으신 분). 부석사 입구에서 선달산 가는 길목까지 태워주셨던 귀농 5년차의 젊은 농부.
선달산에서 내려와 김삿간 유적지까지 태워주셨던 약초꾼 고물 트럭의 아저씨가 왜 그렇게 그리운지 모르겠다. 그런 인정을 여기서도 기대했던 게 잘못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럭저럭 4키로 정도를 걸으니 다리가 나오고 다리 위에서 반기는 건, 매과 종류의 새떼와 그 너머 반달. 그리고 마을 뒤에 위치한 죠만지. 그런데 뜻밖에도 나를 맞이한 스님은 미국인(美國人). 원래는 한국말을 잘 하신다는 스님이 계신다기에 편하게 생각했는데, 그 분은 내일 온단다. 대략 난감. 한 분의 일본인 스님이 있었지만 해야할 과제가 많다며 미국스님, 무몽(無門)이 직접 나를 챙긴다. 뉴욕에 있을 때 뮤지션 활동을 했다고 하는데(자신의 숙소에 기타가 놓여져 있다), 여기는 어떻게 해서 오게 됐는지 궁금하다. 보니까 일본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면서 여기 온지는 채 1년이 안 되는데, 궂은 일은 혼자 도맡아 하고 있다. 참선할 때 종지기 역할, 공양할 때 식사 당번, 예불 올릴 때 종지기와 공양물 올리기 등 발바닥이 닳을 정도로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무몽이 오늘 밤 내가 잘 방부터 챙긴다. 일본인 스님이 머물러 공부하는 숙소는 아주 깔끔하고, 그리고 따뜻해
서 손님에게도 이런 방을 주겠지 기대했는데, 왠걸,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문 창호지가 몇 군데 송송 뚫려있는 그런 방으로 안내하는 게 아닌가. 방이라기보다는 예전에 신도들의 기도하는 넓은 방이 아닌가 싶은 그런 방이다. 난방은 우리가 예전에 썼던 석유곤로가 대신해 주는데, 성냥불로 불을 댕기는 그런 난방장치다.
'야, 이거 오늘밤은 상당히 추운데, 제대로 견딜 수 있을까? 입김도 허옇게 나오네'
다행히, 이불은 여러 채를 가져와 두껍게두껍게 겹겹이 포갠다.
삼존불 아래에서 자니 이보다 편안하게 잘 데가 어디 있겠는가? 당집에서 자는 것과는 사뭇 다르지. 저녁 공양 할 때가 됐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다. 무몽이 들어오더니,
"우리 종파(소도슈,曹洞宗)에서는 아침과 점심만 공양을 하고, 저녁은 먹지 않습니다."
띠옹~.
'그래서 우리 무몽의 얼굴이 이렇게 말랐구나.'
그렇다면, 이참에 나도 오늘 수행하는 마음으로 참가해야겠지 싶었는데, 배가 고파 영 참지를 못하겠다. 그래서 간식거리를 몇 개 꺼내 먹고 있는데, 무몽이 와서 반가운 소식을 알린다.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두 스님은 내 덕분에 식사를 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주지 스님도 출타 중이신데, 괜찮겠지 하면서 말이다.(주지 스님이 멀리서 전화해서 식사를 먹도록 배려해 준 것같다.) 식사의 질은 민박집의 수준에 비해 훨씬 떨어지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어 맛있게 주워 섬긴다.
"박 상, 내일 아침 참선에 참가하시렵니까?"
"네, 하겠습니다."
"5시 20분에 시작하니까 그때 참선당으로 오시면 됩니다."
불자는 아니어도 여기 오기 전에 몇 개의 사찰을 돌며, 아침 예불을 3시 반에 올렸던 적도 있어서 5시 20분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여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내 숙소로 돌아가는데, 벌써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별들도 바람에 흔들린다.
23.야쿠오지(藥王寺) – 죠만지(城滿寺) / 도보거리 30.5km
23.야쿠오지 - (26.5k) 아와카이난역 - (4k) - 죠만지
숙소 : 죠만지(0884-73-2093)
노쿄비 300엔
기부 1,000엔
소계 : 1,300엔
삼존불의 가피를 입고 이 밤을 편안하게 보내고, 다음날 아침 5시에 기상하여 참선을 하는 곳으로 이동하여 한 30분간 참선을 한다. 내 취향에도 딱 맞는 게 좋다.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지금도 여기서 참선한 것을 떠올리며, 가끔씩 아침 5시 20분 경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앉아 명상에 잠긴다. 그리고 무몽을 떠올린다.)
이른 새벽 참선당에 들어서면 불상이 놓인 양쪽으로 방석들이 놓여져 있는데, 여러 명이 참선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여기서 참선 후 공양도 한다.
자리에 앉는 방법, 참선 자세를 가르쳐 주어 그대로 따라 한다. 방석이 참선 자세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서 나처럼 다리가 아픈 사람도 앉는 자세를 편하게 해준다. 이어, 공양의식은 우리의 발우공양과 흡사하다. 아침공양은 죽을 주는데, 두 그릇을 먹을 수 있어 그나마 배를 채울 수 있다. 이 모든 수발은 우리의 무몽이 발바닥이 닳게 뛰어 나니며 해 주어 눈물겹다.(이곳을 떠나기 전, 무몽에게 가벼운 선물- 샴푸와 로션이 담긴 케이스-을 드렸는데, 지금도 잘 쓰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출타 중이셨던 주지 스님이 오셨단다. 갈 길이 바쁘지만 공양도 했으니 예불을 드리고 가야겠다 싶어 참석. 우리의 예불 의식과 달리 중간에 절을 수십 번 드리는 절차가 없고, 책에 쓰여진 불경을 일본어로 따라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스님이 우리말로 안내해주셔서 그다지 따라 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날씨가 쌀쌀한 가운데, 본당의 문을 다 열어 놓고 의식을 진행하니까 바깥 찬 바람이 들어와 발이 시릴텐데도 젊은 주지스님은 맨발로 성큼성큼 본당 내를 거닌다. 대단한 내공을 지니신 분같다. 예불을 지내다보니 시간이 약간 지체된 감이 있는데 그래도 다행히 주지 스님이 아와카이난 역까지 바래다주신단다. 무몽께 아쉬운 작별 인사를 드리고, 일본인 스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송영해 주시는 주지 스님과 차안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이분이 주로 한국에 오는 절은 '해인사'란다. 오셔서 강의도 하고 친분있는 한국 스님도 계신다고 한다. 나도 해인사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하면서 해인사 백련암에 가서 3천배를 드릴 예정이라고 하니까 반기는 표정이다. 스님과도 아쉬운 작별을 나누며 아와카이난 역에서 새로운 아침길을 나선다. 오헨로 길의 절들과는 사뭇 다른 상업화가 덜 된, 한국의 절 같은 분위기에 더하여 더욱 고루한 분위기를 고집하고 있는 죠만지에서의 하룻밤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아와카이난 역에서 출발한 지 1시간 반 지난 휴게소에 남긴 방명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