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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티노 쿠마 May 10. 2023

시코쿠(四國) 오헨로 순례(2부-7화)

후루이와야소 숙소

7. 7일째(48~ 44번 절) - 후루이와야소     

115()     


비가 약하게 내린다. 맞을 만할 정도.

숙소를 나서면서 우산을 얻었다.

7:30 숙소 출발, 고마치 역~다카노코 역

8:20 49번 절 근처 다카노코 역에서 걷기 시작

10:40 (48, 47, 46번 절까지 도착)

비도 그치고 흐린 날씨가 걷기에 쾌적하다.

하지만 44번 절 다이호지를 가기 위해선 마의 미사카고개를 넘어야 한다.


무겁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역시나 힘들다.

12:00  힘든 길을 걸어 오르는 헨로상을 위해 마련한 사카모토야에서 잠시 쉬며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다.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데, 그래도 화장실은 깨끗이 해 놓은 상태이고, 전깃불도 잘 들어온다.

북적였을 때를 생각하면서...

지금은 이곳을 지키고 있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만 요란하다.

먹던 과자부스러기를 마당에 널어둔다.

내 간 뒤에 내려와서 먹겠지.  

       

미사카고개까지 남은 길 2.5키로.

1시간 여를 오르는데 한 분의 헨로상을 만나며 힘을 얻고, 휴게소에 텐트 치고 쉬는 사람이 있어 인기척을 지만 별 반응이 없어 그냥 오른다.

땀이 뻘뻘 흐르고 다리는 천근, 그래도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응원의 메시지가 많은 힘을 준다.

사진을 찍을 생각을 미쳐 못해 다시 아쉬웠지만 또다시 나오겠지 했는데 고개정상이다.

내려가서 찍고 오기엔 무리, 다른 헨로고로가시에서 또 만나면 그때 찍어두기로 하고 여기엔 빈 공간을 남겨둔다.

  '결원까지 최선을 다해! 일희일비 ~, 힘내!'

이런 응원의 메시지가 한 군데에 서너 개 붙어 있다.

그런데 이런 메시지는 시내에서나 일반 길에서는 만나기 어렵다. 12번, 60번 절 오를 때에나 볼 수 있다. 살면서 힘들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때마다 주위의 응원과 격려 지원을 받은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응원과 격려의 한 마디를 잊지 않고 해주어야겠다.


고개에 다 오르면 느끼는 성취감. 내가 왔던 길이 저 앞에 보인다. 사가우치의 혹독함을 제대로 느껴보았다. 대사를 만나기 위해 거꾸로 돈 에몬 사부로. 많이 힘들었던 만큼 마음은 편해졌으리라.

나도 생각과 마음으로 지은 죄를 생각하면 절반의 사가우치로도 부족할 것이다.


춥다. 바람도 많이 불고.

고개를 넘어가자, 아래로 44번 절까지 9키로.

한없이 내려간다. 지루할 정도로.

이럴 땐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사는 게 또 그런 거려니.

마침 카페가 있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져본다.

몸이 풀린다. 커피 맛에 취하고 따뜻해서 더 이곳에 머물고 싶은데 길을 재촉하니 하는 수 없이 몸을 추스려 다시 길을 나선다.              

커피 값은 400엔, 오셋다이로 초콜릿을 받았다.

(이 초콜릿 맛을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숙소인 후루이와야소 못 미쳐 너무 지치고 허기졌는데 막판 스퍼트를 낼 수 있게 해 준 선물이다)


16:20 44번 절 착.

절 앞의 나무들이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44번 절 다이호지 입구





























숙소인 후루이와야소까지 남은 거리 8.9키로.

터널 통과할 땐 야광띠를 두르고 건너는 데도 겁난다.

18:30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길이 엄청 어두웠다.

일부러 12번 국도를 택했는데도  

주변이 산들이라 해 떨어진지 이미 오래.

후레쉬를 켜들고 오고 가는 길에 내가

있음을 확인시켜줘야 했다.     

몸은 힘들지만 어느 정도 걸으면 감각이 없어지니 힘든 걸 모르겠다.

그저 걷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누구와도 비교할 사람이 없다.

신경 쓸 일이 없다.

골치 아픈 일도 없다.

맨 나무고 숲이니 읽어들일 글자도 없다.

캄캄하니 더욱 혼자만의 행복을 느낀다.

오늘 하루 걷는 동안은 피안의 경지에 들어선 것이 아닐까 싶다.

바닥에 사진촬영장소라고 그려진 곳에서 앞을 보니 좀 특별나다는 경치가 있긴 한데 어두워 잘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드디어 만나는 숙소, 후루이와야소.

후루이와야소 산장


오늘도 수고한 나에게 마련해준 음식.(석식,조식 포함 7,500엔. 약간 비싸긴 해도 내일 일정을 감안해서 45번 절 최대한 가깝게 잡으려다보니 여기가 최적이다.)


사진 전시해 놓은 걸 보니 가을 단풍철에 친구나 가족들하고 잠깐 들렀가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술은 물맛 좋을 것같은 이시테지 근처 술전문점에서 구입했던 건데 오늘도 혼자 홀짝거린다.

겨울순례객은 찾아보기 어렵다.     

내일 일정은 오늘보다 좀더 어려운 코스를  것 같다.

졸린 눈을 부비며 겨우 지도와 구글지도를 맞춰 보니 10시가 넘었다.

사가우치로 걷자니 방향마저 헤매는구나.

...     


잠시 잠들었다가 엉겹결에 깨서 시간을 보니 11시.

여기가 어딘지,

내가 왜 이 곳에 있는지

순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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