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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티노 쿠마 May 10. 2023

시코쿠(四國) 오헨로 순례(2부-8화)

오다에서 귀인을 만나다

8. 8일째 오다에서 귀인을 만나, '당산대사당'에서의 하룻밤     

116()   

  

아침부터 비다.

겨울인데 비가 잦다. 게다가 오늘 날씨는 좀 차다.

7:00 후루이와야소 숙소에서 45번 절 이와야지까지 배낭없이 우산을 받쳐든 채로

8:00 '이리로 와봐야지'를 줄여서 절이름이 '이와야지'인가.     

꼭 다시 한번 들러봐야지.

바위에 송송 뚫린 굴에서 수행한 흔적을 보고,

위로 솟구친 절벽 군데군데 삐져나온 나무 뿌리,

거기에 이끼까지 덧입혀져 천년의 세월을 이어왔네.


기원을 담은 작은 소망 돌부처엔 이끼가 더부룩, 등딱지에도 조개껍데기가 붙은 양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다. 수염처럼 자란 모습이 인상적. 소망을 담아올린 그들은 이승에선 볼 수가 없으니 영생을 소원함이 가장 큰 소원이리라.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다른 코스다.

계곡을 옆에 끼고 있어 길이 마음에 든다. 비에 젖은 낙엽을 밟는데 정말 푹신하다.

꿈길을 걷듯, 빗소리,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숲길을 걷는 내가 누구던가.

산안개가 세상과 나 사이를 단절시켜주는구나.

    

9:00 숙소로 돌아온 뒤, 체크아웃.

9:30 출발, 숙소주변의 경관을 사진에 담고 있는데, 숙소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손에 노란 주머니를 들고 내게로 뛰어오신다. 베낭커버다. 사진을 찍지 않고 바로 가버렸으면 어쩔거나.

고맙다.             

이곳 지형의 특성인가? 이와야지에서 본 굴을 숙소앞에서도 본다.

후루이와야소 산장



단풍계곡길을 따라 산길을 오른다.

1시간 올라가 도착한 곳. 45번 이와야지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곳이다.    

이정표에는 없지만 가리키지 않는 쪽(우측)으로 길을 간다.


오늘 가는 길은 이렇다.   

44번 절을 거치지 않으려고 접어든 길이 헨로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인지 이정표도 눈에 띄지 않아 바짝 긴장된다. 그리고 날이 어제보다 추워서 비가 눈이 되어 내린다.
























안개까지 자욱해서 걱정되기도 한다. 안개 자욱한 절에서 느끼는 것과 또다른 산길의 분위기다.        

손이 시려 털장갑도 끼고(1차 순례 때, 고치시에서 잃어버린 장갑 대신 구입한 수제품)    

싸락눈까지 내리고...


길을 찾아서 다니느라 엄청 긴장했다. 비를 맞는 거보다 차라리 눈이 더 낫다. 눈은 옷과 운동화를 적시지도 않고, 거기다 싸락눈은 옷에 닿다마자 떨어진다.

중간중간 보여주는 따뜻한 햇살, 그 햇살받는 마을이 오늘따라 더없이 평온해 보인다.



어젯밤 열심히 지도를 펼쳐놓고 보았던 것도 이곳 지형이 높기도 높았지만 깊은 삼림이 분포된 지역이 가장 넓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3개도에 걸쳐 분포한 지리산처럼. 88개소 절이 위치한 지형 중, 이곳이 가장 넓고 높게 산이 위치해 있다.

헨로도 보존협회에서 제공한 높낮이 지도(박스 부분이 현 위치의 산)



첩첩산중을 걸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오헨로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도심 한 복판의 길을 걷기도 하고, 농로 사이를 걷기도 하며, 주택가 골목골목을 지나기도 한다. 때로는 차들이 달리는 도로 터널, 기찻길 옆 도로, 바다를 옆에 낀 길을 걸어가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이곳과 같은 그야말로 인적 없고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산속을 그것도 헨로고로가시라는 힘든 코스를 땀까지 뒤범벅이 되면서 걸을 때면 행복한 감정은 배가 된다.

    

14:17 드디어 마주한 오늘의 마지막 고갯길을 넘으며  

       

그리고 42번 도로로 내려선 뒤 남은 흔적    



이제부턴 380번 도로만 따라가면 되니 문제없다.

신진궁터널까지 오르막길이지만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마코겐초를 뒤로 하고 이제부턴 우치코초에 들어선다.

그런데 내리막길이 장난이 아닐 정도로 길고 험준한 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뒤돌아보면서 내려오는데 이건 사가우치보다 더 힘든 코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지루할 정도로 길게 내려온다. 그러고 보면 44,45번 절이 있는 지형이 좀 높은 데 있는 듯하다. 그래서 쿠마코인가 싶다.


오다까지 무난히 가겠거니 했는데 시간이 벌써 6시가 다 되어 어젯밤처럼 산길도로가 금세 어두워졌고,

후레쉬에 새 전지를 갈아끼고 갈 길을 재촉했다.

오다까지 2키로 남짓. 오다에 있는 숙소(후지야)에 전화해보니 이미 만석인지, 이유를 잘 못 알아들었지만 어쨋든 방이 없다고 하니 낭패다. 일찍 예약을 잡아야 했는데, 오늘 걸었던 곳이 통신이 잘 안 되는 곳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무료 숙소가 있는 곳까지는 20여키로라 밤길에 거기까지 가기엔 무리.(거리를 잘못 계산하여 계획을 잡음)

하는 수 없이 어떻게 되겠거니 하고 무작정 내려가는데, 그때, 띄엄띄엄 차가 다니는 이 도로에 자동차 한 대가 서더니 도움을 주시려고 하는 게 아닌가. 젊은 여인이었는데 도와주려고 말을 또박또박 해주셨는데 많이는 못 알아듣겠다. 그래도 숙소를 못 잡았다는 것과 내가 가려고 하는 무료 숙소에 대한 설명에 대해 의사 소통이 되었고, 이에 그녀는 여기저기 전화를 넣더니 최종적으로 오다에 있는 '당산대사당'으로 안내를 해주신다는 거다.

키가 보관되어 있는 음식점에 내려 키를 받고(동행이인 카페 어디선가 읽은 것 같았는데, 이때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대사당 있는 곳까지 차로 태워 주셨다.

게다가 식사를 못했겠거니 생각하고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주먹밥 5개와 튀김 한 봉지를 오셋다이로 주셨다. 마실 것까지 챙겨주시는데, 근처 상점을 찾다가 안 되니 미치노에끼에 있는 자판기로 안내해주셨다.

드실 걸 하나 더 추가하려고 하니 사양하신다.

대사당 키를 들고 앞장서서 안내해 주셨는데, 이분도 대사당엔 처음 와본 듯하다.

자물쇠 채운 곳을 찾아 사당 한 바퀴를 도는데  한밤중인데다가 사당 주변이 캄캄해서 내실로 들어가는 문의 자물쇠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를 못해 헤매다가 겨우 한쪽 구석에 달린 자물쇠를 발견하여 당실 안으로 입실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분은 내가 사당 안쪽 방에 들어가 전등스위치를 찾아 켜기까지 밖에서 지켜봐주셨는데, 그게 얼마나 안심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키를 받고 나 혼자 캄캄한 이곳을 찾아 들어섰으면 어쩔 뻔했을까?

되돌아가시는 젊은 여인에게 감사의 큰절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오늘 귀인을 만났는데, 이 여인과 대사가 동일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비쳤더니 겸손하게 손사래를 친다.  

























대사당 안실


시코쿠 순례를 하다보면 꼭 한번쯤은 만난다는 귀인을 오늘 만나는 행운을 얻어 너무도 감사하다.

성함은 우에노상

(몇 달 뒤 이분의 결혼 소식을 접했다. 행복한 삶을 누리시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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