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티노 쿠마 May 11. 2023

시코쿠(四國)오헨로 순례
(2부-16화)

엷은 미소 띤 부처

916. 17일째(81,82,84,84번 절) 엷은 미소 띤 부처     

125()

     

5시 숙소를 나와 다카마츠역으로 가는 길의 깨어나지 않은 시장 모습.

    

가와라마치역에 갔더니 아직 운행 전이라 할 수 없이 다카마츠역까지 걸어서 갔다.

6:00 가모가와역 도착               


81번 절 시로미네지를 향하여. 산의 윤곽이 약간 보인다.

이 길은 헨로미치가 아니어서 낯설긴 해도 구글맵의 도움을 받아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손이 좀 시리고, 날이 좀 어둡다는 것 빼고는.

7시가 가까이 되면서 사물의 윤곽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

저 멀리 세토대교가 보이고 반대쪽으로 산을 올려다 보면 산너머로 해가 오르기 시작한다.

          

길은 점점 소로로 바뀌고, 다시 큰 길을 만나서 82번절 시로미네지에 도착했다.

직전 전망대에서 바라 본 세토대교, 그 왼쪽으로 우타즈에 있는 빌딩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숨어 들지 못한 반달도 눈에 들어온다. 시코쿠에 온 날, 초승달이었던 것이 보름으로, 그리고 어느 새 반달로 모양이 바뀌었다.    

몽글몽글한 돌로 쌓은 3층탑들.

염원을 그러 모아 한층 한층 쌓아 올린 사람들의 마음은 지역을 달리하지 않는다.  

      


81번 시로미네지는 백봉, 82번 절 네로코지는 청봉이다.


납경을 받는 젊은이의 붓글씨가 유난히 빠르고 먹물이 희미해지기까지 해서 약간은 마음이 상했다.

그래서 그에게 참 빨리 쓴다고 말하면서 시린 손을 느껴보라고 300엔을 그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이 친구도 미안했던지 오셋다이라며 만쥬를 건네준다. 괜히 나도 머쓱해진다.


        

그리고 공양하기 위해 역량을 다한 내 몸의 찌끼를 몸밖으로 배출하려고 해우소로. 멋진 곳이다.  


            

청봉에 있는 82번 절을 향해 난 옛길을 걷는다.

산책 코스같은 느낌이 든다.

사색하기 좋은 산길이다.    


헨로의 로(路)와 미치(道)는 어떤 관계일까? 그리고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삶의 길은 끝이 없는 것, 길 위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거기서 도를 깨우치는 거겠지. 

관계 속에서 미움과 원망이 싹트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한테 기인한 것.

직장 동료나 아내, 그리고 여타의 사람들에 대해 가진 생각들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게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아내는 내게 어떤 존재인가? 하늘이 준 오셋다이다.     

작은 불상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는 건 인간과 신의 공존이라고나 할까?

납골묘가 가까이 있는 것도 이승과 저승의 세계가 함께 하나라는 것. 등등.


어느 새 82번 절 네로코지에 도착. 1,400년의 수령을 지닌 고목에 금줄이 쳐져 있어 더욱 신령스럽다.         

다카마츠 시와 그 너머에 오늘 갈 84번 절 야시마지가 있는 야시마산과 그 뒤에 85번 절 야쿠리지가 있는 고켄산의 봉우리가 보인다.


   

네로코지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본 다카마츠와 바다, 그리고 역시 오늘 올라가야 할 두 산들이 우측에 보인다. 내려가는 도로가 내가 원하던 기나시 역쪽이 아니라 더 좌측으로 틀어졌다.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히치하이킹을 할 작정했는데 2~3차량이 그냥 지나친다. 한 차량은 그냥 길을 물어보는 줄 알고는 섰다가 매정하게 그냥 간다.      

'아래까지 태워줄 수 있나요?'를 파파고 앱에서 확인 후 입에 달고 있다가 내려오는 차를 세웠다.

내리막길이라 저만치 앞서서 차가 멈추었다.

젊은 아가씨였다.

좀전에 외워뒀던 말을 천천히 말하니 태워주겠다고 한다.

차 안이 지저분하다며 손수 물건을 치우고, 차 밖으로 나와 내가 앉을 자리를 차지한 물건까지 치워주셨다. 

바닥의 귤박스는 그냥 놔두시라고 하고는 감시함을 연발하며 차에 올랐다.

그런데 이 아가씨가 보통내기가 아닌 듯했다. 운전 솜씨도 그렇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귤농장을 운영하는 영농인인 것을 알았다.

나이도 내 딸 정도인 26살 정도로 봤는데 31살이란다.

보기보다 젊다고 했는데, 일본어가 서툰데도 알아듣고 좋아하신다.

한국엔 아직 가본 적이 없고, 귤로 유명한 제주도에 대해서도 모르길래 구글맵으로 위도가 비슷한 제주도를 보여주었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버스를 탈 수 있는 곳까지만 태워 달라고 했는데, 다카마츠를 한 정거장 앞둔 고자이 역까지 바래다 주셨다. 자기 집과는 훨씬 먼, 다른 곳인데도 네비를 보면서 꾸역꾸역 역을 찾아주셨다. 라인 친구 맺기를 하면서 제주도 오실 때 연락주시면 서울에서 비행기 타고 마중 가겠다고 말했더니 웃는다. 참 고마운 분을 만났다.

덕분에 오늘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아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다카마츠 텐투센 게하에서 짐을 찾아 가라라마치역에서 다음 숙소(타이야)가 있는 시도지 역으로 기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타이야 숙소

타이야에 짐을 맡기고 다시 84번 절 야시마지를 가기 위해 가타모토 역으로 되돌아 갔다.

한참을 걸렸는데 오후 일정으로 가타모토 역에서 84,85번 절을 거쳐 시도지까지 걸어서 돌아가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다.              

84번 절 야시마지가 있는 산에 오르는 길에 넓적한 돌들이 깔끔하게 깔려있다. 주변을 보니 암석들이 그렇게 층층으로 쌓여 있는 게 많이 보여 이걸 이용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꽤 많다. 내려가는 중국관광객들만 해도 2,30명은 됨직했다.

절과 산 주변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한국인도 단체로 관광을 하러 온 게 금방 눈에 띄였다.

이곳은 아닌게 아니라 전망이 끝내주게 좋은 유명한 관광지임을  알았다.

근처 소학교 학생들도 선생님을 따라 봉사활동과 함께 체험활동을 하러 이곳을 찾았는데, 단 2명의 교사가 그 많은 학생들을 인솔 지도하는 데도 아이들은 꽤 잘 따르는 것 같았다.

                  











다카마츠 시내 그 너머로 오전에 올라가서 이곳을 찍었던 산이 보인다.    

야시마지에서 내려오는 길에 산길 계단에 깔려 있는 낙엽을 빗자루로 쓰는 봉사자를 만났다.

시코쿠 헨로미치를 보전하려는 지역봉사자이시다.


             

85번 절 야쿠리지에 도착 30분 전, 야마다 우동집에 들렀다.

유명한 음식점인 듯 역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우동집이다.

포장해서 사 갖고 나오는 분들도 꽤 많다.

부카케우동 320엔, 카마아게우동 520엔. 날계란 60엔. 나는 카마아게를 시켰다. 날계란과 함께.

양념, 소스 따로 우동 따로. 국물맛은 맹물 같다. 소스를 넣고 양념(생강, 깨소금 등)을 넣으면 비로소 국물맛이 나온다. 우동 그릇도 크고 국물도 하나 가득인데 국수는 얼마 되지 않는 게 아쉽다. 젠츠지 근처의 우동집은 서민적인 냄새가 나는데 여긴 이미 상품화가 된 듯 인간미는 부족하다. 질적으로는 어떨까. 면발은 졸깃, 그래서 조금 씹고 삼켜 장으로 내려보내기엔 아깝다. 눈앞에서 면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마니 섭섭. 남은 건 국물뿐인데 85번 절을 가기 위해선 서둘러야 해서 아쉽지만 국물을 그대로 두고 가야 한다. 한 모금만 더 들이키고 일어선다.         

아직도 국물이 많이 남았는데...

다시 돌이켜 연거푸 세 번을 들이켰다. 그러고보니 국물맛이 일품이네.


85번을 향해 산을 오르내리는 케이블기차가 있어 약간 구미가 댕겼지만 그냥 오르기로 했다.

조금 올라가니 '진안'이라는 헨로상들을 위한 휴게소가 있다. 이곳을 운영하시는 어르신이 손짓으로 불러서 들어가 앉아 있으니까 손수 마련한 다과를 오셋다이로 내오셨다.

                                     






절까지 20분 거리라며 조심해 가라고 하시면서 손을 흔들어 주셨다.

야쿠리지 케이블기차를 탔으면 이런 고마운 대접도 못 받았을 거라는 생각에 감사의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85번 절에 도착하니 절 뒤에 우뚝 솟은 고켄산이 마치 우리나라 진안에 있는 마이산 혹은 주왕산을 닮은 듯해서 친숙한 느낌이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가?                  

엷은 미소 띤 부처의 마음이다.



일락의 서녘 하늘이 오늘은 그렇게 서럽지가 않구나.         

7시 타이야 숙소에 도착.     

저녁식사로는 낮에 다카마츠 시내에서 장이 섰던 곳에서 산 산채밥.

찰밥이라 쫀득한 질감에 각종 내용물들이 섞여 있는 일종의 영양밥이다.      

오늘 수고한 몸에 공양을 드리듯 정성껏 맛나게 먹었습니다.     


이전 15화 시코쿠(四國)오헨로 순례 (2부-15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