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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티노 쿠마 May 11. 2023

시코쿠(四國)오헨로 순례
(2부-17화)

순례 마침표!

17. 18일째(86~88번 절– 순례 마침표!     

1월 26()   

  

날씨 뉴스에 대설 특보 경계령이 내려졌다. 

일본 전체 동서로 길게 북부쪽에 대부분 폭설이 내린다고 한다. 

시코쿠 북부에도 10센티 정도의 적설량을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 산을 넘어가야 하는 88번 절은 776미터 높이라 갈 길이 걱정된다.

무사히 숙소까지 도착하기를 빌며 숙소를 나선다.

숙소를 나서면서 우산도 챙겨 받고.

타이야 숙소는 다시 한번 사용하고 싶은 숙소다. 근처에 음식점도 있어서 좋다.  

   

86번 절 시도지 가는 길, 바닷가. 

어제 갔었던 야시마 섬과 여쿠리지가 있는 코켄산이 또렷이 보이는데,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데다 바람도 차서 손이 시리다.         

시도지, 납경소 뒤쪽에 있는 정원을 둘러 보았다.

바다와 섬을 축약시켜 꾸민 정원이다.

    

87번 절을 향해 가는데 눈길은 저끝에 있는 산들에 자꾸만 눈이 간다. 넘어야 할 산이 저 산이 아니길 빌며. 

  

분명 숙소를 나올 때 물을 빼고 나왔는데 긴장한 탓인지 화장실이 급하다. 

확실히 불안감을 느끼는 날 인정한다. 

잊어보려고 반대쪽 농로를 보거나 예쁜 가정집의 외곽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꾸밀 집도 상상해 본다.

하지만 예상은 적중했는지 눈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산쪽은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눈발이 자욱하다.          

   

순례자들이 쉬어 갈 수 있는 교류살롱에 들르기 직전까지 산에 눈이 하얗게 쌓인다.

살롱에 들러 헨로대사임명서를 받고, 다과를 곁들여 간단히 점심도 해결하면서 충분히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시코쿠 모형도


살롱에서 근무하시는 분의 걱정스런 눈빛을 뒤로 하고 출발.             

산길 초입의 눈. 

   

편한 운동 복장으로 내려오신 분으로부터 위험한 길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우회길로 안내 받았다. 감사.

             










눈이 있어서 미끄러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썩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점점 쌓인 눈이 높아가는 길이다.

정보를 준 분이 말했던 위험구간을 통과중이다. 그분의 발자국이 용기를 더해줬다. 올라간 발자국은 있는데 내려간 게 없는 걸 보니 아까 그분은 우회해서 내려간 듯하다. 어쨋든 지도에 나온 대로, 발자국 찍힌 대로 나도 밟고 올라선다.         

드디어 정상에 서다. 어느새 파아란 하늘이다.        

와우!

가만히 들여다보자. 고켄산도 보이고 야시마산도, 그리고 다카마츠와 세토내해도 한 눈에 들어온다. 

정말 여기선 온 천하를 다 얻은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해발 766미터의 뇨타이산(女體山).

왜 여체산이란 이름이 붙었을까를 산을 오르면서 줄곧 생각해 봤다. 산을 내려서자마자 그 느낌이 확 왔다. 남향에, 바람도 없는 따뜻한 햇볕이 드는 길. 이쪽 길엔 눈이 거의 녹았다. 올라왔던 길과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마치 엄마 품에 안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상에 나오기 전 열 달을 편히 쉬었던 곳, 엄마의 자궁 속에 머문 듯한 느낌이다.  



처음 시코쿠 순례를 왔던 동기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3년 지나 어머니마저 병고로 돌아가셔서 너무도 죄송스럽고 안타까워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1차 순례 마지막 날, 비를 억수로 맞으며 걸었을 땐 어머니께서 해주신 된장국이 참 많이도 생각났었는데 오늘은 그 엄마의 품안에 꼬옥 안긴 느낌이 든다. 

 '엄마, 하늘에서는 아프지 말고 아버지와 편안히 지내세요. 시코쿠 순례를 잘 마무리 지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88번 절 오쿠보지는 바로 엄마와 같은 대자연의 품속에 안긴 절이다.

홍법대사의 삿갓에도, 나뭇가지에도 눈이 내린 사찰 내 풍경을 편안한 마음으로 즐긴다. 


눈 속에 빨간 열매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88개소에 해당하는 순례를 마치는 기분이 그야말로 홀가분하다.                       

내 마음에도 눈꽃이 피었다.

달의 미소,

불상의 미소와 더불어

눈꽃이 피었다.     

오늘 오헨로 결원을 축복해 주는 듯하다.



39번 절 엔코지 납경 후, 밤.

히라다 역 대합실에서 노숙할 때 바라본 달이 미소를 띠다.

85번 절 야쿠리지 경내에 있는 불상이 미소를 짓다.

88번 절 여체산에서 만난 눈꽃 .

    

※ 결원증을 88번 절에서 받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납경소에서 별다른 말 없었다. 묵서를 써 주고, 결원도장만 찍어줬다. 

다음날 6시에 밥먹고 1번 절로 가기로 다른 오헨로 상과 약속했는데 좀 늦게 출발해야 할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숙소가 절 바로 앞이라

다음날 아침 7시 납경소에 들러 결원증을 받았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이 시각에 받는 기분

매화꽃마냥 활짝 핀다.                                          

시코쿠 순례 18일째 되는 날(도합 38일째) 

2019년(평성 31년) 1월 26일, 토요일.

결원(結願).     


어제, 88번 절 오쿠보지까지 순례함으로 1번 절에서 88번 절까지에 이르는 순례의 도장을 찍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맛있는 음식과 사케, 단잠을 자긴 했으나 일을 마친 뒤라선가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아마도 끝마침표를 찍었고 이젠 세상 속 일상으로 돌아가야 해서 마음속에서 걱정거리들이 일어나서 그런 듯하다. 내게 일상이 따로 어딨나, 길 위의 일상이 순례요 행복이요, 도를 깨닫는 기쁨이라고 깨우쳤거늘 잠시 약한 마음을 먹었구나. 아마도 내 일상 중에 마음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짐이 있어서 그런 듯하다. 

삶의 일터를 강원도의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 그건 보통일이 아닌 듯하다. 형제와 친척 간의 관계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점 또한 내 어깨를 심하게 짓누르는 요소다.     

시코쿠 순례를 하면서 하루하루 삶의 터가 바뀌고 낯선 날들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까지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일상들 속에서 매일이 축복의 연속이라기보다 일희일비하는 나날이었다고 본다. 

이것을 생각하면 세상 일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평온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상이 곧 순례라.     

그리고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짓는다. 

누가 보지도 않으니 목놓아 울어도 좋으리.

1차 순례(2016.1월 1~38번 절) 때는 본당과 대사당 앞에서 부모님을 회상하고 추모하며 기도하였는데,

3년이 사이에 아내의 권유로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된 뒤에 온 이번 순례는 또다른 동행이인과 함께여서 더욱 든든했다. 

이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홍법대사의 사람들을 향한 지극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종교가 다른 이들도 이곳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을 기뻐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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