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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Aug 31. 2018

마리메꼬와 이딸라, 디자인헬싱키

아름다움과 실용성으로 대표되는 핀란드 디자인

핀란드 수도 헬싱키는 '디자인 도시'를 자임하고 있다. 2012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되기도 했다. 헬싱키 도심의 '디자인 디스트릭트'는 작고 예쁜 샵과 갤러리, 박물관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실제로 핀란드에 도착하면, 나라 전체가 우리가 상상하는 소위 '북유럽풍 디자인'으로 꽉 차 있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아주 크거나(이를테면 건축) 아니면 아주 작은(이를테면 키친웨어) 것들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까지 잘 알려진 브랜드나 디자이너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에도 우리의 '디자인 핀란드'에 대한 환상을 아낌없이 충족시켜주는 기업들이 있다면, 그건 바로 핀란드의 국민 브랜드로 유명세를 떨치는 마리메꼬와 피스카스 그룹의 이딸라, 아라비아다.




과감한 컬러와 패턴의 향연, 마리메꼬

마리메꼬 본사. 디자이너 사무실과 신제품 전시장이 있는 2층은 일반인에게 비공개였다.


마리메꼬는 1951년 핀란드의 전설적인 여성 디자이너 마르미 라띠아(Armi Ratia)가 설립한 기업이다. 주로 원단과 패션, 인테리어 제품을 만든다. 2차 대전 이후 집단 우울감에 빠져있던 유럽인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주었던 과감한 패턴은 마리메꼬의 상징과도 같다. 특유의 다채로운 색감과 실용성은 설립 초기부터 이미 핀란드 뿐 아니라 전 세계를 타깃으로 한 것이었다.


1990년대 재정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1991년 새 오너 키르스티 파까넨(Kirsti Paakkanen)이 마리메꼬를 사들인 뒤 재기에 성공했다. 마리메꼬의 Mari는 흔한 여성의 이름, Mekko는 옷(dress)을 뜻한다. 설립 초기에는 여성복 브랜드였지만, 이후 새로운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패션분야 사업을 과감하게 확장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마리메꼬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젊은 프리랜서들이다. 이들이 회사에 발 묶인 '피고용인'이라고 느끼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모든 경계를 부숴 창의적인 디자인을 추구한다. 디자인은 핀란드에서 하되, 상품 제작은 해외에서도 많이 한다. 다만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키는 데에는 아주 엄격하다고 자부한다. 


마리메꼬의 가장 상징적인 꽃무늬 패턴


마리메꼬는 '국민 브랜드'치고는 사실 상당히 비싸다. 가볍고 심플한 가방인데도 10만 원대, 긴 기장의 가을재킷이 20만 원대 등등.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가격을 더 내릴 수는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싸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상류층만 살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 사람들의 취향과 행동은 계속해서 바뀌지만 "2주마다 새로운 상품이 나오는 것에 질려한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프린팅 공장에서 패턴을 인쇄한 원단이 평평하게 다려져 나오는 모습!

브랜드 설명을 들은 뒤에는 프린팅 공장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거대한 기계에서 내년 S/S 시즌 패턴을 담은 원단들이 가득 인쇄되어 나왔다. 2층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이 만든 패턴을 당장 1층에서 인쇄해서 실물로 확인해볼 수 있다. 내년 신제품들은 정말 예쁜 게 많았는데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눈에만 담아왔다. 1층에 있는 매장은 아울렛이라 헬싱키 시내의 매장들보다 규모가 크고 종류도 많다. 관심 있으면 이쪽으로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https://goo.gl/maps/VecaMt4mLAtLj6DH9




이딸라와 아라비아, 피스카스 그룹


유리 제품을 만드는 이딸라(Iittala), 도자기 제품을 만드는 아라비아(Arabia)는 공구를 만드는 피스카스(Fiscars) 등과 함께 피스카스 그룹의 계열사다. 모두 핀란드의 대표적인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기업으로 손꼽힌다. 1649년에 세워진 피스카스는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지만 "단 한 번도 가치를 잃은 적이 없다"라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지금도 지역에 대규모 숲을 소유하고 있으며, 탄소배출량을 저감 하는 것이 큰 목표 중 하나라고. 피스카스 그룹의 브랜드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이딸라와 아라비아다. 


왼쪽은 아라비아, 오른쪽은 피스카스 제품을 활용해 로비에서 전시중인 작품들. 자연광을 적절히 활용해 아름답다.


이딸라는 핀란드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알바르 알토의 1936년 디자인 컬렉션이 잘 알려져 있다. 물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디자인이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모두 잡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라비아 역시 140년이 넘은 기업이지만 여전히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기업이나 기관, 일반 가정을 방문했을 때에도 실제로 아라비아 제품을 상당히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디자인센터라는 이름답게,  매장과 카페, 디자이너들의 작업실뿐 아니라 9층에도 널찍한 전시공간이 있다.


1964년 티모 사르파네바(Timo Sarpaneva) 디자이너의 핀란디아 시리즈. 나무를 이용해서 겉의 거친 질감을 만들어냈다.

같은 층에 있는 '디자인 뮤지엄 아라비아'에서는 연도별 대표작들을 상세한 설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폭포 또는 빙하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디자인이 많이 차용됐다.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특별전시를 포함해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헬싱키 디자인 뮤지엄


핀란드의 실용적 디자인에 관심이 크다면, 이곳도 아마 좋아할 것이다. 사람에 따라 입장료 12유로가 조금은 아까울 수도, 반대로 몹시 기꺼울 수도 있다. 1층에서 열리는 상설전시 '유토피아 나우(Utopia now)'는 핀란드 디자인의 역사를 정말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 


왼쪽, 어쩐지 눈에 익은 이 오렌지 손잡이의 가위 역시 위에서 언급한 피스카스의 제품이다.


유토피아 나우의 첫 전시실에는 핀란드의 대표작들만 모아놨다. 마리메꼬와 피스카스부터 특수장비차, 앵그리버드까지. 벽면에는 '우리에게 유토피아란 무언가를 창조하는 실용적인 방식을 뜻한다'라는 설명이 우리를 압도한다.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용적이기도 '해야만 한다'는 핀란드 디자인의 강력한 주문을 전시 내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굉장히 어린이들에게도 친화적이다. 6개의 테마를 지닌 전시실마다 오른쪽 사진과 같은 안내문을 몇 개씩 붙여놓고, 관람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친절하게 던져준다. 


2층에서 진행 중인 특별전시 'collotors and collections' 일부
계단참에서 바라본 디자인 뮤지엄 1층의 모습. 저 동그란 의자도 사실은 그냥 의자가 아니다.


2층에서는 특별전시가 열린다. 모든 전시물은 촬영 가능하다. 박물관에서는 아예 해시태그를 붙여 공유해달라고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으니, 갈까 말까 고민된다면 먼저 구글링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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