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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Jan 17. 2019

수준 높은 대중과 언론인

핀란드의 '1등급' 언론의 자유를 만드는 세 가지 축

꽤 오랫동안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언론이 자유로운 나라였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선정하는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핀란드는 5년간 1위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유하 시필래 총리의 2016년 Yle 스캔들 등으로 노르웨이에 밀려나고 순위도 조금 떨어져서 지난해에는 세계 4위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언론의 자유가 그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나라 중 하나다. 180개국 중 우리나라는 43위, 북한은 180위를 차지했다. 


1766년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언론자유법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핀란드는 언론의 자유 분야에서 대표적인 본보기로 여겨진다. 보통은 '모든 정보가 공개된 투명한 사회'라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스웨덴 왕국 통치 하에 있던 1766년 세계 최초의 언론 자유법이 제정되면서 출판의 자유와 함께 투명한 정보 공개의 전통이 만들어졌고, (중략) 언론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공 문서와 기록에 대한 접근권을 가진다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르면 모든 공식 문서는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공개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만약 정부기관이 정보 공개를 거부할 경우 기자나 시민들은 고소를 할 수 있고, 그런 경우 대부분 정부가 패소한다. 이처럼 투명한 정보 공개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신뢰로 이어진다.   

-언론자유 1위 핀란드의 비결 ‘표현의 자유와 정보접근권’(2018년 8월 17일 한국기자협회)


이 내용은 사실이고,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핀란드의 언론의 자유는 세 가지 축으로 이뤄져 있다고 본다. 정보 공개 외의 두 가지의 축은 '미디어 리터러시'와 '언론의 자율규제'다.




'미디어를 이해하는' 대중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핀란드뿐이고, 다른 국가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어 사용자 수가 많지 않은 작은 나라들의 언론이 이만큼 탄탄하다는 것은, 그만큼 적극적이고 똑똑한 독자들이 뒷받침된다는 의미다. 


높은 미디어 리터러시는 핀란드의 자랑 중 하나다. 이 능력이야말로 핀란드의 튼튼한 시민사회를 만들어낸 토대라고 여긴다. Media Audit Finland에 따르면 핀란드 성인 93%가 주기적으로 신문을 읽는다. 종이든, 디지털뉴스든 말이다. 인쇄매체 시장도 꽤 크다. 인구는 550만 명밖에 되지 않는데 발행되는 일간지는 200종류가 넘고 잡지는 4000여 종류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단순히 글을 읽을 줄 아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어떤 미디어 콘텐츠를 어떻게 찾아 읽어야 하는지 아는 데에서 시작해서, 기사를 분석하고 균형 있게 읽고 더 나아가 자신에게 필요한 방향으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까지 뜻한다. 잘못된 뉴스는 거를 줄 아는 시각도 있어야 한다. 제목만 읽고 내용은 지나쳐 버리거나, 한 편의 주장만 듣고 한 편은 배제하거나, 가짜 뉴스를 의심 없이 믿는 독자는 '미디어 문맹'이라고 할 수 있다. 

KAVI에서 만든 미디어교육 설명자료 

핀란드에서는 정부 (KAVI-The National Audiovisual Institute)가 정책적으로 미디어와 정보 리터러시 교육을 실시한다. 미디어를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만 스스로도 발전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교육은 초등학교에 진학하기 전인 아주 어린아이들에게 일찌감치 시작한다. 자세한 내용과 사례는 다음 자료를 참고하면 좋다. https://kavi.fi/sites/default/files/documents/mil_in_finland.pdf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훌륭한 독자를 만든다. 이는 훌륭한 언론인을 키워내기 위한 필수적인 토양이 된다. 모든 언론인은 기사를 쓰는 사람이기 전에 기사를 읽는 사람이었고, 현재도 독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자체가 생소한 개념이다. 이 말은 곧 자질 있는 언론인을 키워낼 토양이 아주 얕거나 척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보의 홍수'라는 표현은 20년 넘게 써오고 있으면서, 그 정보의 홍수에서 '잘 살아남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한' 자율 가이드라인

CMM의 엘리나 그룬드스트룀Elina Grundström 의장

핀란드 대중매체 협의회 The Council for Mass Media (CMM, 핀란드어로는 JSN)는 1968년 대중 매체 분야의 발행인들과 언론인들이 만든 자율규제위원회다. 이곳에서 만든 '기자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은 모든 언론인들이 반드시 읽어볼 만하다. 한국기자협회 보도준칙(윤리강령)과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내용이다. 결국은 이 준칙을 구성원들이 얼마나 신뢰하고, 인지하고, 준수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가이드라인은 총 35개 항과 부수 조항으로 이뤄졌다. 서문에서는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반이다"라며 "대중이 사실과 의견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초점이 언론인의 '취재할 권리'보다는 독자의 '정확한 뉴스를 읽을 권리'에 맞춰졌다는 점과, 거의 절반은 '취재원'에 대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권리
    17. 인터뷰이는 자신의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쓰일지 미리 알 권리가 있다. 인터뷰이는 기자와의 대화가 보도될 것인지, 아니면 단지 배경 설명 차원으로만 쓰일 것인지를 반드시 미리 알 수 있어야 한다.
    18. 인터뷰이가 보도 전에 자신의 발언 내용을 읽고 싶어 한다면 마감시간이 남아있다는 전제 하에 인터뷰의 해당 부분에만 한해서 들어주는 것이 좋다. 최종 결정은 편집국 밖의 누구에게도 침해당해서는 안된다.
    19. 만약 인터뷰이가 자신의 발언이 보도되는 것을 거부한다면, 인터뷰 이후의 상황이 매우 급격하게 변해서 보도가 공정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상황에 한해서만 받아들여져야 한다.


또한 눈에 띄는 점은 뉴스의 콘텍스트, 즉 맥락을 이들이 얼마나 중요시하는지였다. '가짜 뉴스'가 언론위기의 최대 화두인 상황이다. 가장 교묘한 가짜 뉴스는 아예 틀린 팩트로 만든 엉성한 뉴스가 아니라, 적절한 팩트를 부적절한 맥락에 악의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맥락을 강조한 다음 내용들은 가짜 뉴스 방지 매뉴얼에 반드시 반영해야 할 항목들이기도 하다. 

    6. 언론인이 자신의 미디어나 미디어 소유자와 관련된 이슈를 다룰 때엔 맥락을 명확하게 전해야 한다. 
    10. 얻은 정보는 설령 이미 과거에 보도된 내용이라도 가능한 철저하게 체크해야 한다.
    12. 논쟁적인 이슈일수록 정보의 출처에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사적으로 이득을 얻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3. 새로운 아이템일 경우 정보가 제한돼있더라도 그에 기반해 보도될 수 있다.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면 보완되어야 한다.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마지막, '오보'는 언론의 자유 문제를 다룰 때 가장 논쟁적이고 첨예한 부분이다. 다소간의 오류가 있더라도 언론의 자유와 알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 그리고 하나의 잘못된 보도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칠 수 있다는 우려 사이에서 우리는 늘 헤매고 만다. 다만 확실한 것은, 틀릴 가능성을 감수하고 보도를 할 경우에, 그 오류가 오류인 것으로 최종 판결을 받는다면 절대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다는 것.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서는 결코 '더 나은 다음 세대의 언론'으로 한 발짝도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20. 잘못된 정보는 지체 없이 수정돼야 한다. 또한 잘못된 정보를 이미 본 사람들이 최대한 많이 볼 수 있어야 한다. 당초 오보를 냈던 해당 미디어의 웹사이트에 정정사항을 게시해야 한다. 문제가 심각할수록 더 눈에 띄게 써야 한다. 팩트 오류가 여러 개  있었거나, 잘못된 정보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 에디터는 정정보도를 해야 한다. 단지 온라인에서 해당 내용을 지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독자들은 어떤 부분이 잘못됐으며, 언제 어떻게 오보가 쓰였는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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