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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Dec 24. 2018

커피향이 흘러넘치는 이곳은 Coffinland

따뜻한 커피와 달콤한 케이크

Finland, Coffeeland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커피를 마시는 나라다. 원두 생산지도 아니고, 스타벅스의 고향도 아니고, 밤샘노동이 가장 많은 나라도 아닌 핀란드는 (대부분의 통계에서) 세계에서 1인당 커피 소비량이 가장 많다. 

헬싱키 항구 근처의 크고 작은 카페와 음식점, 바들이 있는 낡은 공장부지.




1년에 커피 12kg를?

국제커피기구(ICO)를 인용한 텔레그래프지의 기사를 살펴보면, 핀란드인들은 한 사람당 1년에 커피 12kg를 소비하는, 세계 최대의 커피 소비국이다. 2~6위인 노르웨이(9.9kg) 아이슬란드(9kg), 덴마크(8.7kg), 네덜란드(8.4kg), 스웨덴(8.2kg)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양이다. 이탈리아의 두 배가 넘는다. 


어느 미팅에 가나 커피와 차로 가득한 보온병이 있고, 조금 더 친절한 경우 스낵도 제공했다.

모든 방문 장소에서 우리는 차와 커피가 가득 든 보온병, 우유, 가득 쌓인 머그잔, 그리고 간단한 간식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회의장에 보통 종이컵과 녹차/둥굴레차 티백, 봉지과자나 사탕 얼마가 놓이는 것과 사뭇 달랐다. 회의할 때 마시고, 수다 떨 때 마시고, 그냥 이유 없이 마신다. 노르딕 국가들은 커피를 대체로 약간 약하게 볶는다.(관련한 커피 칼럼 '노르딕 커피에선 풀냄새가 나더라') 아무리 그래도 한 사람이 12kg를 마신다는 건 커피가 결코 '그냥 카페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 커피를 잔뜩 소비하는 이유는 해가 일찍 지고 몹시도 혹독한 겨울이 길기 때문일 터. 밤 같은 낮에도 정신을 차리려면 카페인의 힘이 필요할 듯도 하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은 핀란드인들의 '샤이'한 성격이다. 그냥 회의를 하고, 그냥 대화를 하면 되는데 그게 쑥스러워서 무조건 마실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농담처럼 "핀란드인은 만나면 커피를 마시거나, 사우나를 하거나, 아니면 커피를 마셔야 한다"고도 한다.   

출처:  Paulig Group 홈페이지. 커피 수입 재개 순간의 드라마틱한 모습을 담은 사진

핀란드에서 커피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39년 발생한 겨울전쟁(소련-핀란드 전쟁) 당시 국가 식료품 배급제 등으로 거의 명맥이 끊길 뻔했다. 이 북국의 커피 중독자들은 각종 곡물 줄기와 뿌리, 감자 껍질 등등을 볶아서 더럽게 맛없는 커피 대용품을 만들어서 버텼다. 전쟁 후 투르쿠(Turku)의 항구로 커피 수입이 재개된 것이 역대급 빅 이벤트였을 법도 하다. 원두를 잔뜩 실은 배 '헤라클레스'가 도착하는 걸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항구가 꽉 찼을 정도로. 핀란드의 대형 커피 업체인 Paulig Group의 홈페이지에 가면 역사적 사진들을 꽤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커피(핀란드어 Kahvi) 관련 표현도 많다. 

- siivouskahvit(clean up coffee) = 대청소를 하는 날 커피 브레이크로 마시는 한 잔.

- vaalikahvit(election coffee) = 투표를 마치고 마시는 축하 커피

- santsikuppi (free second fill) = 처음 한 잔을 마신 뒤 무료로 혹은 저렴한 값에 리필해주는 것.

- kakkukahvi (coffee and cake)= 떨어질 수 없는 친구인 커피와 케이크. 





핀란드에는 스타벅스가 없다

핀란드에는 올해 기준으로 스타벅스 지점이 총 9개 있다. 우리나라에는 1000개가 넘는다. 핀란드에는 스타벅스 외에도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거의 없다. 이미 크고 작은 카페로 가득 찬 이 나라를 스타벅스가 공략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핀란드에서 구경한 카페 몇 군데를 아주 간략하게 소개한다. 


1. 레무스 로스터리(Lehmus Roastery)

마스터 로스터(?)라는 Visa Tuovinen

레무스 로스터리는 매년 4월 열리는, 북유럽 최대 규모의 커피 축제 Helsinki Coffee Festival에서 1위를 차지했다. 라펜란타에 간다면 아름다운 사이마 호수만 볼 것이 아니라 이곳의 힙한 분위기와 자유로운 인테리어, 원두부터 로스팅과 추출까지 완벽을 기하는 이들의 커피도 같이 느끼고 와볼 만하다. 


2. 에스프레소 하우스(Espresso House)와 로버츠 커피(Robert's Coffee)

스톡홀름에서 시작된 에스프레소 하우스

1996년 스웨덴에서 시작된 에스프레소 하우스는 핀란드뿐 아니라 북유럽 전체에서 가장 '흥한' 커피 프랜차이즈 중 하나다. 노르딕 국가 전체에 400여 개 지점이 있다. 로버츠 커피(Robert's coffee)는 핀란드 브랜드로, 역시 헬싱키에 굉장히 지점이 많다. 둘 다 가성비 좋은 카페로, 들어가서 일하기에도 부담 없이 괜찮은 곳.


3. Johan & Nyström과 Andante Coffeeshop

왼쪽은 요하뉘스트룀의 쇼케이스, 오른쪽은  안단테커피숍의 오트라떼.

두 군데 모두 헬싱키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다. 요하뉘스트룀 오래된 공장 건물에 있지만, 복층으로 되어있어 가장 아늑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날씨가 좋은 한여름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테라스 자리도 좋을 것이다. 헬싱키 디자인 디스트릭트에 있는 안단테 커피숍은 이보다 좀 더 모던한 분위기다. 규모는 작지만 인테리어가 산뜻하고, 무엇보다 굽지 않은 로케익(raw cakes)을 포함해 예쁜 먹을거리들을 판매한다.





새콤달콤함의 천국

커피와 함께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 다양한 디저트류와 핀란드에서 흔한 간식거리를 아주 조금 소개한다. 


#1. 시나몬롤

카페 레가타에서 만난 인생 시나몬롤. 이보다 흡족할 수는 없다. 다만 밖에서 먹을 경우 참새 도둑들을 조심해야한다.

바다를 바로 옆에 둔 멋진 오두막 Cafe Regatta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풍미 있고 묵직하고 촉촉한 시나몬롤을 판다. 퍽퍽한 페스추리에 맛없는 계핏가루만 목 막히도록 뿌려놓은 우리나라 빵집의 시나몬 번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핀란드를 포함해 발트해 주변의 나라들에서는 시나몬롤을 포함, 풀라(pulla)라고 부르는 다양한 종류의 번이 아주 대중적이다. 바닐라 아이싱이나 크림을 얹어먹기도 한다. 이 마약 같은 빵과 커피의 조합을 한 번 맛보고 나면 다시는 헤어 나올 수 없으니, 가능하면 애초에 맛보지 않는 편이 좋을 듯. 


#2. 케이크와 페스추리(페이스트리)

왼쪽은 포르보의 아주 오래된 카페 Helmi에서 먹은 기가 막힌 Runebergintorttu. 오른쪽은 홈메이드 블루베리 파이

포르보의 명물, 루네베리 토르테(Runebergintorttu)는 안에 라즈베리 잼이 가득 들어있고, 위에는 눈처럼 흰 설탕 크림이 얹혔다. 작아 보여도 꽉 차서 아주 묵직하며, 먹고 나면 달콤하고 새콤하고 고소한 맛에 정신이 번쩍 들 정도. 전설에 따르면 핀란드의 국민시인 Johan Ludvig Runeberg께서 아침마다 아내가 만든 이 케이크를 즐겼다고 한다. 사워크림 약간과 블루베리로 속을 가득 채운 블루베리 파이Mustikkapiirakka도 여름에 먹을 수 있는 가장 환상적인 핀란드 스타일 파이로 꼽힌다. 


#3. 베리

숲에서 입이 떫어지도록 따먹었던 레드커런트. 그냥 먹어도,  캐러멜소스와 먹어도 환상적이다.

소위 말하는 '베리 피킹(berry picking)'에 더불어 버섯 채집은 북유럽 국가들의 여름철 전통문화라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핀란드 공식 관광정보 사이트에서까지 딸기와 양송이 채집 가이드를 올려놓았을 정도다. 스페인에서 주로 수입해오는 평범한 딸기(strawberry) 외에 모든 다른 베리류들은 정말 '지천에' 널렸다. 숲에서 배부르도록 따먹을 수 있는 베리들의 정보는 여기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가장 흔한 건 레드커런트와 링건베리, 비교적 드문 것은 클라우드 베리다. 크림에 찍거나 디저트를 만들면 더욱 맛있다. 


#4. 초콜릿과 리코리스

파제르의 게이샤초콜릿. 이렇게 맛있고 맛있고 가성비 좋은 헤이즐넛 초콜릿을 먹어본 적이 없다. 출처: 파제르 공식 홈페이지

초콜릿이 커피와 잘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이 곳 사람들은 검은 커피에 검은 초콜릿을 곁들여먹는다. 개인적으로는 Fazer(파제르)라는 국민 초콜릿 브랜드의 밀크 초콜릿과 게이샤가 최고였다. 비건 초콜릿 중에서는Chocoat(초코오트)가 괜찮다. 


리코리스로 만든 살미아끼(salmiakki, 감초 사탕)는 새까맣다는 점에서 초콜릿과 비슷하지만, 오로지 핀란드 사람들만 먹을 수 있는 매우 이상한(?) 음식이다. 핀란드인들조차도 "친구들을 놀리고 싶으면 뭐든지 리코리스 맛으로 사가라"라고 했다. 짜고, 떫고, 다소 역할 수 있는 당황스러운 맛. 핀란드에서는 아기들도 저 살미아끼를 질겅질겅 잘만 씹어 먹는다. 직접 맛보기보단 간접체험을 해보는 게 낫다. https://www.youtube.com/watch?v=E_uJZ6hhX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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