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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Oct 13. 2018

"핀란드에서 뭐 먹었어?"

호밀빵, 감자, 연어, 순록 고기, 그리고 그 밖의 것들

"핀란드에서 뭐 먹었어?"라고 물어보면 대답이 즉시 튀어나오지 않는다. 지역에서 난 품질 좋은 재료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맛은 좋지만, 독일의 소시지, 일본의 우동, 이탈리아의 파스타처럼 딱 떠오르는 조합을 들기는 어렵다. 가정식을 기준으로 키워드를 정리해보자면 호밀빵과 감자, 연어, 흰 살 생선과 순록 고기 정도가 될 것이다.




호밀빵과 감자

어디에서나 빵집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이 나라에서는 전문 베이커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대신 마트에 가면 비닐봉지에 포장되어 있거나 바구니에 종류별로 진열된 빵을 구매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에 '밥 전문점'을 찾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 나라에는 '파리바게뜨'에서는 절대 팔지 않을, 거칠고 담백한 각종의 식사빵들이 가득하다.


왼쪽은 통밀빵, 오른쪽은 카리알란피라카

전복처럼 희한하게 생긴 오른쪽 빵은 카리알란 피라카(karjalanpiirakka, 카렐리안 파이Karelian pie). 핀란드 카렐리아(Karelia) 지역의 전통 파이다. 탄수화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푸근하고 말랑한 맛을 필시 좋아할 수밖에 없다. 겉은 바삭한 호밀 크러스트, 안은 쌀이나 감자, 보리나 메밀 같은 씹는 맛있는 알갱이로 채워진다. 단 맛은 거의 없는 대신 고소하다. 버터와 으깬 계란, 사워크림 등을 섞어 만든 것을 얹으면 잘 어울린다.

빵에 버터를 바른 뒤 치즈와 오이, 토마토를 얹은 샌드위치

일말의 촉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딱딱하고 신 호밀빵도 흔하다. 사진에서 접시 위에 있는 검은 빵(Ruispalat)이다. 납작하고 잘 베어져 오픈 샌드위치용으로는 최적이다. 반면 위 쟁반의 납작한 흰색 빵은 보리나 감자로 만들어 부드럽고 쫀득한 Rieska다. 팬에 데워먹거나, 따뜻한 볶음요리 같은 것을 넣으면 잘 어울린다. 납작하고 건조해 크래커에 가까운 Crispbread도 많이 먹는다. 버터나 후무스를 잔뜩 얹어먹으면 굉장히 조합이 좋다. 가장 유명한 제품 브랜드는 FinnCrisp. 


이런 빵들은 핀란드의 사실상 '모든 식사에' 함께 나온다. 집에서는 각자 음식을 자기 앞접시에 덜어먹은 뒤, 접시에 소스가 남으면 그걸 빵으로 싹싹 '설거지하듯' 닦아먹기도 한다. 홈스테이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뒤, 내 접시만 음식 흔적으로 흥건한 것을 보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감자의 향연

우리나라의 '밥'에 가까운 것으로는 감자를 뺄 수 없다. 이미 이 글에 있는 음식 사진의 70%에는 감자가 어떤 형태로든 들어있다. 하지만 굽거나 찐 통감자를 잔뜩 쌓아놓고 먹는 게 정석이다. 중년 이상일수록, 빵이나 파스타보다 감자가 비타민C가 많고 건강에도 더 좋다고 생각한다. 왼쪽은 레미의 유명한 양고기 구이 särä를 구운 감자에  얹은 것. 가운데는 연어 바비큐와 곁들이려 삶은 감자. 오른쪽은 헬싱키의 론나섬에 있는 레스토랑 런치 코스에서 테이블마다 놓인 감자 그릇이다. 




연어


마트에 가면 수산 코너에 거대한 연어가 누워있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연어는 손바닥만 한 조각으로 보일 정도로 이 연어들은 거대하다. 구이나 훈제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연어를 조리해먹는다. 역시 감자와 크림을 이용하는 레시피들이 많다. 


포르보의 피자가게에서 우리는 피자 대신 salmon soup for the soul을 맛봤다(왼쪽) 오른쪽은... 때깔부터 다른, 연어수프의 잘못된 예.

우선 연어 수프. 난 국물은 깔끔하고 담백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어서 기름 뜬 서더리탕도, 그 비싸다는 민어탕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편이다. 하지만 포르보 올드타운의 Brasserie L'amour Pizzeria에서 파는 연어 수프는 일품이었다. 뜨끈한 연어와 감자가 가득해서 '찌개'에 가까울 만큼 걸쭉하고 부드럽다. 반면 에스포의 나름 유명한 선상 레스토랑 Paven의 연어 수프는 맑은 국물에 건더기가 동동 떠있는, 일종의 생선국 같았다. 진한 연어 수프를 먹고 싶다면 포르보에 가시길!


왼쪽은  초점이 나간 카페 레가타의 훈제연어 오픈샌드위치. 오른쪽은 모 카페에서 팔았던 보급형 연어샌드위치

샌드위치에도 많이 먹는다. 헬싱키 최고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인 해안 카페 레가타Regatta. 여기에서 유명한 세 가지 메뉴는 시나몬롤과 불에 구워 먹는 소시지, 그리고 바로 이 연어 샌드위치다. 여기에서는 훈제 연어를 바로 샌드위치 위에 올렸지만, 이 외에도 푹 익힌 연어를 살짝 양념해서 채운 샌드위치도 많이 판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참치김밥 수준으로 찾기 쉬운 게 바로 그런 스타일의 연어 샌드위치인 것 같기도 하다.

 

왼쪽은 친구의 홈스테이 가정에 초대받아서 먹었던 연어 바베큐. 오른쪽은 크림소스에 요리한 연어오븐구이

가정식 재료로도 흔히 쓰인다. 호일에 싸서 구운 연어 바비큐는 속까지 아주 부드럽게 익어서 먹기가 좋았다. 보라색으로 물들인 콜리플라워와 브로콜리, 삶은 감자와 크림소스에 볶은 버섯을 사이드로 곁들였다. 브로콜리, 당근, 연어를 넣고 크림소스를 부어 구운 오른쪽은 촉촉하고 따뜻해 겨울에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듯한 부드러운 요리였다. 




흰 살 생선과 순록 고기


핀란드는 바다에 접해있고 호수가 많은 만큼 수산물이 풍부하다. 동시에 북쪽 지방의 사슴, 순록, 무스 같은 독특한 고기들도 음식재료로 쓰인다. 


생선을 구울 땐 크림소스나 구운 야채와 곁들여 스테이크처럼 먹는다. 맨 오른쪽은 타르타르

왼쪽 것은 핀란드 외교부에 초청받았을 때 먹었던 점심, 오른쪽은 Lonna island에 있었던 음식점에서 먹었던 점심. 겉은 바삭, 속은 담백하게 바짝 구운 생선에 크림소스와 데치거나 볶은 야채를 곁들였다. 메뉴판에 영어 표기가 없다면 Siika 또는 Lavaret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고르면 된다. 날생선을 작게 썰어 레몬즙과 허브 오일로 양념한 타르타르도 산뜻한 맛이 입맛을 돋우는 데 좋다. 전채요리나 와인 안주로 제격이다.


왼쪽은 무스, 오른쪽은 순록 스테이크

사슴고기를 맛봤던 것도 독특한 경험이었다. 왼쪽은 감자 소스를 곁들인 무스Moose, 오른쪽은 블루베리를 얹은 순록Reindeer 고기였다. 엘크라고도 부르는 무스는 추운 지방에서 사는, 현존하는 가장 큰 사슴 종이라고 한다. 아주 거칠고 질기거나 지방이 잔뜩 끼어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는 아주 부드럽고 섬세한 살코기였다. 순록도 지방이 3% 정도로 매우 적고 단백질은  많다. 하지만 맛 자체가 부드럽고 풍부하다는 점이 무엇보다 훌륭했다. 순록과 무스 모두 와인소스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그 외의 것들


#1. 위트 있는 패스트푸드

초점이 너무 많이 나가서 유감스러운... 맥도날드의 김치 베지 버거.

2019년 11월 방문 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음식 중 하나는 맥도날드에서 판매하는 김치버거 시리즈였다. 한국에도 없는 김치버거가, 한식집 찾기가 가뭄에 콩나기보다 드문 핀란드의 맥도날드에, 심지어 한정판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김치 비프, 김치 치킨, 김치 베지 세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별 기대 없이 먹었던 김치 베지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배추김치가 씹히지는 않지만, 신김치 맛을 잘 재현한 김치 마요 소스가 의외로 잘 어울렸다. 한국 맥도날드는 즉시 이 버거를 한국 매장에서도 판매할 것!


핀란드의 대표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인 '헤스 버거'에서 샐러드를 주문하면 샐러드에도 오이가, 소스에도 오이가 들어있다.

맥도날드보다 훨씬 흔한 패스트푸드 체인점은 '헤스 버거 Hesburger'. 샐러드를 주문하면 오이 마요네즈를 준다. 핀란드에서 오이는 그만큼, 상상도 못 할 만큼 일상적인 재료다. 의외로 상큼한 맛과 의외로 높은 칼로리, 의외로 잘 어울리는 조합에 놀랄 것이다. 



#2. 채식주의자 메뉴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굉장히 많은 음식점에서 비건 메뉴를 판다. 고기나 해산물 전문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비건 레스토랑 로스터Roaster의  비건 리조또. 밥까지 초록색일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오른쪽은 티데쿨마 샐러드바. 가운데는 홈스테이 가정에서 먹은 모짜렐라토스트샐러드

헬싱키에 있는 비건 레스토랑 로스터에서는 훌륭한 맥주와 와인은 물론, 훌륭한 비건 코스를 판매한다. 빵이 정말 맛있다. 헬싱키대에서 운영하는 티데쿨마(Tiedekulma, 씽크코너Thinkcorner) 샐러드바에서는 든든하기로는 최고인 뿌리채소 샐러드를 판다. 식감이 찰지고 색깔도 화려할뿐더러, 든든함까지 갖춘 비트는, 핀란드에서 아주 흔하게 쓰이는 식재료다. 핀란드는 마트에서 적어도 두 개 벽면 전체가 유제품일 정도로 유제품이 많은데, 여기에서는 오트, 코코넛, 두유로 만든 비건 요구르트도 매우 쉽게 찾을 수 있다.  



#3. 각종 샐러드바

다양한 메뉴를 구비해놓고 샐러드바처럼 파는 런치뷔페가 아주 흔하다. 학교나 기업의 구내식당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음식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추천할만한 곳을 두 가지 고르자면 마리메꼬 아울렛과 칼 파제르 카페.

왼쪽은 마리메코 본사 1층 카페테리아의 점심 샐러드바. 오른쪽은 칼파제르 카페.

마리메코 아울렛은 메뉴가 생각보다 다양하고, 무엇보다 모든 식기와 냅킨이 마리메코 제품이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헬싱키 도심의 칼 파제르 카페Karl Fazer Cafe는 명성에 걸맞게 마실 것과 디저트가 환상적이어서, 호텔 조식보다 가성비가 좋다. 치아씨드가 가득 담긴 요구르트와 걸쭉함과 진한 맛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베리스무디는 꼭 맛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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