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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걷다 Mar 13. 2019

제주를 걷다 - 1

제주 올레길 1코스

2018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16개 코스 220km 정도를 걸었는데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내가 걷고 싶은 올레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 더 행복함을 느낀다. 어느 때고 난 이 길을 걷기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군입대 후에 얼마가 지났을까 대학 여자 동기에게 그림엽서 한 장을 받았다. 다른 내용은 없이 최성원의 '제주도 푸른밤' 노래 가사가 적혀 있는 엽서였다. 그림엽서의 그림에 제주도 풍경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왜 이런 내용의 가사를 보냈을까? 혹시 날 좋아하나?' 이런 생각과 함께, 그때부터 제주도의 푸른 밤, 성산포의 앞바다는 언제나 늘 가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 되었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수많은 세월(무려 26년)이 지난 작년 2018년 2월 중순 올레길을 걷기 위해서 제주를 찾았다. 그간 제주는 회사에서 워크숍으로, 가족 여행으로, 친구들과 여행으로 수십 번을 왔었던 곳이었지만 대부분 유명 관광지를 다니거나 낚시를 했던 것이 전부였다. 수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 제주이긴 했지만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제주도이기도 했고, 오랜 기간 여유를 가지고 제주를 온전히 느꼈던 적은 없었다.


당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계획하고 있던 때였는데, 제주도 올레길을 미리 연습처럼 걸어 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제주도 올레길을 하루, 이틀 걸으면서 누구나 그렇겠지만 제주도 올레길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고, 그렇게 1코스부터 올레길 걷기는 시작되었다.


제주 올레 패스포트에 있는 지도 (출처 : 제주 올레 패스포트)

제주 올레길은 총 26개의 코스가 있다. 이중 3개 코스는 우도(1-1), 가파도(10-1), 추자도(18-1) 섬을 걷는 코스고, 7-1, 14-1 두 코스가 기본 7, 14 코스 외에 더 있다. 총길이는 400km에 이른다. 3, 15코스의 경우 A, B코스로 구분되어 선택할 수 있다. 가장 긴 코스인 3-A 코스 20.9km에서 가장 짧은 코스인 10-1 가파도 코스는 4.3km이다. 평균 15-20km, 4-6시간 정도를 기본으로 거리가 짧은 코스가 인접해 있는 경우 하루에 두 개 코스를 걷기도 한다. 걷기에 자신이 있거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는 사람인 경우 하루 30-40km를 걷기도 한다.


올레길은 제주도의 수많은 관광지가 있는 지역을 지나가지만 직접적으로 해당 관광지를 들리거나, 바로 가로질러 지나가지 않는다. 성산포처럼 이미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라면 올레길을 걸으며 지나쳐도 되지만, 근처에 가보지 못한 곳이 있다면 올레길 걷기 계획에 포함시키는 것이 좋다.


1코스 : 제주도 동쪽 시흥초등학교-광치기 해변, 15.1km (4-5시간 소요)


1코스에는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한 곳인 성산포가 있는 곳이고, 우도가 있다. 1코스를 시작해서 걷다 보면 바로 말미오름, 알오름이 나오고 오름에 올라 성산포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약간 흐린 날. 멀리 보이는 성산포는 언제든 시간을 보내고 싶은 그런 곳이다.


멀리 우도가 보인다. 우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많이 변하고 있는  곳 중 하나인 듯하다. 오래전 회사 워크숍에서 방문했을 때 바이크를 타고 섬을 돌았었던 추억이 있다.


우도를 걷는 1-1 코스는 다음을 위해서 아껴 두기로 했다.


알오름에서 내려오면 해안도로를 따라 꽤 걷는데, 점점 다가오는 성산포를 볼 수 있다.


성산포에 가까이 오면 성산포의 아름다운 전경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진다.


성산포는 언제든 머물고 싶어 지는 그런 곳이다.


대학시절 친구가 좋아하는 시인이 있었다. 이생진 시인. 1929년 태어나셨고 작년에 아흔이 되셨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집이 1980년에 출간되었으니, 당시 시인의 나이 50이셨다.


오랜만에 시집을 꺼내 들었다.. 디지털 시대에도 온라인이 아닌 실제 책이 가지는 가치는 영원하지 않을까 싶다. 


성산포에 거의 도착할 즈음, 시(詩)가 있는 작은 공원 같은 곳을 거쳐 간다. 친구가 가장 좋아했던 이생진 시인의 시는 '술에 취한 바다'란 제목을 가진 시였다. 난 공원에서 두리번거리면서 그 시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지금도 여행을 가서 바다를 바라보며 술을 마실 때면 이 시가 생각난다. 친구가 이 시를 나보다 더 좋아했는지, 내가 더 좋아했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그 좋은 바다를 보며 술을 마시는데 애꿎은 바다한테 왜 술이 취하느냐고 시비를 거는 것이다. 바다는 '아니라고 취한 건 너라고' 철썩, 철썩 내 뺨을 때리는데도 난 '역시 바다가 술이 약하다'라고 억지를 부린다.


이 시가 없었으면 아주 많이 서운할 뻔했다.


1코스의 마지막인 광치기 해변에 도착할 즈음 유채꽃이 반긴다. 봄의 꽃은 늘 반갑다.



p.s 나에게 '제주도 푸른밤' 가사를 보냈던 과 동기는 '무려' 23년째 함께 살고 있는 아내다.  "그때 왜 그런 엽서를 보냈어?"라고 물어보면 기억을 못 할 듯싶다.  아마도 나 말고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같은 내용의 엽서를 보냈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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