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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원 Dec 15. 2021

심미안 수업

남편이 회사 독서회 멤버가 되니까 좋은 일이 있다. 2달에 한번 정도 독서회에서 주는 것이라고 새 책을 가지고 온다. 그런데 가지고 오는 책들을 보면 나름 괜찮다. 내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내 취향대로 골랐다면 아마 선뜻 고르지 않았을 책들 같은데도 옆에 있어 읽어 보면 상당히 좋다. 그중에 하나가 심미안 수업이라는 책이었다. 어떻게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보는가라는 부제가 달린 책인데, 고호풍의 소용돌이 그림 표지가 산뜻한 책이다.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 등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데, 내 경험들과 같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숨은 의도를 발견하는 기쁨, 미술


부자들이 마지막에 하는 일이 그림 수집이라고 한다.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 중에서 그림만큼 강렬한 쾌감을 주는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재벌들은 대부분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거나 그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다.


부자가 아닌 나는 그림을 수집하지는 않지만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외국 여행을 가서 유명한 미술관에 가는 것도 좋지만, 국내 여행을 갈 때도 그 지역의 작은 미술관이라도 가 보려고 한다. 그림은 미술관에서 원본을 보는 것과 작은 복사본을 책에서 보는 것과는 분명히 큰 차이가 있다. 종이가 주는 질감도 다르고, 특히 크기가 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또 미술관은 그림에 대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좀 더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같은 영화라도 영화관에서 보는 것과 집에서 TV로 보는 것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차이인 것 같다. 내용이 달라지지는 않지만 매체 크기와 주변 환경에 따라 몰입감은 분명히 달라질 수 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


명작의 아우라만큼 사람들을 설득하는 강력한 아우라는 없다. 사람들이 예술을 선망하는 건, 아름다움만큼 강한 힘이 없기 때문이다. - 심미안 수업 중에서


지금 이 순간만 사는 행복, 음악


얼마 전에 아는 분이 플루트 연주회를 한다고 해서 음악회를 갔다 왔다. 그런데 음악회 구성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초반부에는 전문 음악가들로 구성된 악기 연주가 있었고, 중간에 초등 1학년부터 중학생까지 구성된 주니어 연주가 있고, 내가 아는 지인이 참여한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여성들로 구성된 시니어 연주가 있었다.


지휘자가 음악회를 왜 이렇게 구성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학생들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악기 연주를 가르쳐 주는 바우처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3월에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악기 소리도 제대로 못 내어 계속할 수 있을까 우려가 많았는데, 8개월 만에 무대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전문 연주가에 비하면 소리도 제대로 못 내지만 연습해서 무대에 서는 것 자체만으로도 교육적 효과와 성취감이 크다는 이야기를 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의 경우에는 이렇게 본인들이 노력해서 무대에 서 본 경험들이 앞으로 다른 일을 할 때에도 자신감을 부여해 주어, 어려운 일도 도전해 볼 용기를 준다고 했다. 시니어 연주자의 경우에는 어린 학생들보다도 박자도 제대로 못 맞추었지만, 다들 눈이 부시게 멋진 옷을 차려입고 인생의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영화 같은 내 인생이라는 부제가 붙은 연주회답게 귀에 익은 영화 OST로 구성된 플루트 연주는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클래식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고 온 연주회였다. 연주 수준은 정말 엄청난 차이가 있었지만, 현장에서 보고 듣기에는 나름 다 괜찮았다.


에꼴드 플루트앙상블 정기연주회 포스터
에꼴드플로라앙상블


음악의 각별한 현장성을 알게 된 이들은 실황 중계, 녹음본을 일부러 찾아 듣는다. 까다롭게 음을 고르는 오디오 마니아들도 실제 공연장에서는 소리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데 훨씬 너그럽다. 그만큼 음악은 '지금 이 순간'이 본질인 예술이다.- 심미안 수업 중에서


나를 둘러싼 공간이 확충되는 마술, 건축


대학원 다닐 때 다니던 학교 건물에 불만이 좀 있었다. 획일화된 아파트 보다도 더 획일하게 네모난 벽돌로 지어진 건물은 아무런 특색도 없었고, 공간적 아름다움도 없었다. 환경 쪽 대학원이다 보니 돈이 없어 법대 건물에 세 들어 살았다. 옆에 법대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돈이 많은 졸업생들이 많아 건물도 몇 채씩 기부받고 해서 여유가 있었는데, 내가 다니던 대학원은 돈 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많아서 자체 건물도 빨리 못 짓고, 내가 졸업할 무렵에야 겨우 독립적인 대학원 건물을 완공하여 이사를 가게 되었다.


정말 비놀리아 공법(그 당시 유행어로 "아직도 그대로네!"라는 유명한 비누 광고에서 따온 말이다)으로 오래오래 지어진 대학원 건물은 외관은 아주 멋있어 보였다. 건물 중간에 대나무가 심어진 중정도 있고,  건물 안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는 공간으로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도 있었다. 그런데 유명 건축상도 받았다는 건물은 외관만 멋있었지, 실제 공간의 쓰임새는 실용적이지 못했다. 일단 중정이 있어 외관의 크기에 비해 쓸 수 있는 공간이 적었다. 나선형 계단은 영화 속에서는 아름다워 보일지는 모르지만, 난간도 제대로 없어 잘못하다가는 추락해서 다치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좋은 건축은 외부 환경과 내부가 적절히 조화되어 그 안에 사는 사람이 편안해서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있는 사무실 공간은 바깥에서 보았을 때는 주변의 건물 동들이 비슷비슷하게 보여 별 특징이 없는 네모난 건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무실 안에서 보면 확 트인 전망이 눈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특히 저녁에 해가 불그스름하게 대지를 물들며 찬란히 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사무실에서 찍은 저녁 노을 사진


특별한 공간에 누군가와 함께 들어간다면, 그 누군가도 특별하게 여겨질 게 분명하다. 아름다운 공간으로 나를 끌고 가는 사람은 나를 아름답게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한 관심,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일이 바로 건축이다.-심미안 수업 중에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에 주목하는 힘, 사진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다. 요즘은 기억력이 젊을 때만큼 좋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몇 년 전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누구와 어떤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는지를 알려 주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이 아니라 휴대폰에 남은 사진뿐인 것 같다.


사진과 그림을 각각 배워 본 적이 있었다. 두 예술의 차이와 공통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림은 과거에는 전문성을 요구했다. 실물과 똑 같이 그리기 위해서는 타고난 천재성도 필요하지만, 수많은 연습을 해야만 했다. 사진이 대중화되고 나서는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그림은 더 이상 인기가 없어졌다. 그림은 추상화로 해체되고 모호해졌다. 사진은 그림보다 일반인이 접근하기가 쉬워 보인다. 그냥 카메라의 버튼만 누르면 된다고 착각하기 쉽다. 접근이 쉽기 때문에 역으로 차별화가 쉽지 않다.  똑같은 사물을 얼마나 다른 시각으로 보여 줄 수 있느냐에 따라 예술성이 달라질 수 있다. 사진은 궁극적으로는 찰나의 시간을 가두는 예술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 결정적 순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풍경 사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러 방법이 있고, 각자의 방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게 예술의 힘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은 오늘날 가장 손에 쉽게 잡을 수 있는 행복의 기술이다.-심미안 수업 중에서


일상의 욕망을 다독이는 지혜, 디자인


디자인에 대해서는 옛날에는 '본질이 아니라 외형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요즘 많이 깨닫고 있다. 좋은 디자인은 사물의 본질을 더 잘 드러나게 해 준다. 똑같은 재질로 만들어도 디자인이 나쁘면 눈길이 가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 사용하기에도 불편하고 질도 떨어진다.


심미안 수업의 저자는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외형'이 아니라 '사물의 질'에 관심을 가지는 일이다라고 이야기한다.


회사에 디자이너가 새로 오고 나서 디자인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새삼 깨닫고 있다. 똑같은 내용인데도 디자인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에 따라서 주목도가 달라지고, 고객에게 전달력이 달라진다. 깔끔한 디자인은 사물의 가치를 높여준다.


재활용품에 디자인을 더해 그 가치를 높이는 업사이클링 사업을 해 보려고 준비 중에 있다. 기존에 아나바다 운동 같은 것들도 있었지만 중고물품 특유의 허름하고 낡은 느낌들이 좋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업사이클링은 좋은 재질로 만든 옷이나 가구들을 가지고 나만의 느낌으로 업그레이드하여 세상에 하나뿐인 내 명품을 만들어 오래오래 사용하는 것이다. 일상의 물건들이 아름다워지면 삶도 더 아름다워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일 먹는 끼니의 그릇을 더 아름다운 것으로 놓고, 들리는 음악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채우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좋으나, 그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선별의 기준을 갖게 되면, 그것이 곧 심미안이다. -심미안 수업 중에서


글 : 이계원(공유경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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