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남편이 집에 손님을 초대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남편은 회사에서 급한 보고서를 만든다고 주말 내내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 중이었다. 서울에서 컨설턴트까지 불러서 팀원들이랑 같이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외부 식당 음식만 계속 먹이기 그렇다고, 집에서 밥 한 끼 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약간 번거로운 감이 있긴 했지만, 장 봐야 하니까 출발하기 2~3시간 전에만 알려 주면 가능하다고, 집에 데려 오라고 흔쾌히 이야기했다. 토요일 저녁에 올 줄 알았는데, 결국 일요일 점심에 오기로 했다. 토요일에 고기랑 기본적인 장을 봐 놓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디저트가 부족한 것 같았다. 식후에 내놓을 과일을 사러 일요일 오전에 집 근처 마트에 잠깐 갔다 왔다. 처음에는 멜론을 살 생각이었는데, 멜론 꼭지가 너무 싱싱해서 당도가 안 나올 것 같았다.(멜론은 후숙 과일이라서 꼭지가 말라 가는 것이 달고 맛있다.) 옆에 있던 샤인 머스캣 한송이와 잘 익은 홍시를 한 박스 사 가지고 왔다. 점심 식후에 손님들과 샤인 머스캣을 먹으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절에서 샤인 머스캣을 얻어먹은 이야기
손님들에게 이번 추석에 내가 절에서 샤인 머스캣을 얻어먹게 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추석에 코로나 때문에 결혼해서 처음으로 시댁에 안 가게 되었다. 그래서 추석 당일에 남편이랑 둘이서 광주 무등산에 등산을 하러 갔다. 내비게이션에 무등산 주차장을 찍고 갔는데, 엉뚱한 등산로 입구로 안내해 주었다. 한 30분쯤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다 보니 아무래도 이 등산길이 아닌 것 같았다. 남편에게 그만 내려가자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자기는 이왕 산에 왔으니 올라가겠다고 했다. 신혼 때 같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같이 올라가든지, 같이 내려가든지 했을 것이다.(결혼하기 전에 둘이 처음으로 관악산 등산 갔을 때는 4시간 코스를 8시간 걸려서 해질 때 내려온 적이 있었다.) 나이 들고 결혼한지 오래되니까 설득하기도 싫고 싸우기는 더 싫었다. 그래서 나는 내려갈 테니까, 당신 혼자 올라갔다 오라고 했다.
혼자서 차 세워 놓은 곳으로 내려와서 보니 산 밑에 조그만 절이 하나 있었다. 절 앞에 감나무 두 그루가 양 옆에서 평화롭게 그늘을 지워 주고 있는 평상이 하나 보였다. 평상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나이 드신 스님 한분이 나오셨다. 나에게 포도랑 송편이 담긴 쟁반을 하나 주셨다. 처음에는 사양하다가 스님이 주신 성의를 생각해서 감사히 먹겠다고 인사를 드리고, 청포도처럼 보이는 포도를 한알 입에 넣았다. 그런데 좀 시들긴 했지만 포도가 너무 달고 맛있는 거였다. 자세히 보니 요즘 유행하는 샤인 머스캣이었다. 아마 절에 시주로 들어온 것을 주신 것 같았다. 절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송편도 맛있었다. 스님이 주신 송편과 포도를 먹으면서 이어폰으로 음악도 듣고 혼자서 편안히 쉬고 있었다. 2시간쯤 지나니 산에 올라갔던 남편이 먼길을 돌아서 내려왔다. 스님이 명절에 혼자 집 나와 보이는 아줌마 중생을 불쌍히 여겨 먹을 것을 주신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서, 남편이랑 같이 하하호호 웃었다. 스님께 작은 정성이라고 말씀드리고, 작게나마 시주를 하고 왔다.(참고로 난 종교가 없다.)
샤인 머스캣과 송편
엥겔 지수가 높아지는 이유
손님 중에 한 분이 아기가 샤인 머스캣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포도랑 같이 놔두면 샤인 머스캣만 먹는다고 했다. 내가 엥겔 지수가 높아지겠다고 이야기했다. 샤인 머스캣은 맛있긴 한데 가격이 좀 사악하다. 한 송이 가격이 일반 다른 포도 한 박스 가격에 육박한다. 처음 샤인 머스캣이 나왔을 때는 한 송이에 2~3만 원이 넘어서 이 비싼 것을 누가 먹나 했다. 손님이 안 왔으면, 우리 가족 먹자고는 안 샀을 것이다.
그런데, 포도를 좋아하는 큰 아들이 '맛없는 포도 한 박스 보다는, 맛있는 것 한송이 먹는 게 낫다'라고 말했다. 평상시에 먹는데 가성비를 엄청 따지는 녀석이 점점 고급진 입맛으로 변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온 가족이 재택근무와 온라인 교육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점점 식비가 늘어나고 있다. 거의 매일 먹을 것을 온오프라인으로 박스채 사들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맛있는 것은 금방 소비가 되지만, 맛이 없으면 계속 남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집의 엥겔 지수가 높아진 이유는 음식의 양도 있었지만 질도 있었다.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이번 주에 읽은 책 중에 신예희 작가의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재미있는 책이 있다. 돈으로 사는 구체적인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읽으면서 다 찬성은 아니지만 분명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대용량의 지옥' 이야기가 있다. 보통 싸다고 1+1이나 대용량 제품을 박스채 사들이는데, 이게 생각보다 만족감을 가져 오지는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그 한 에피소드로 본인이 사들인 질 나쁜 대용량 휴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싸다고 휴지 30개를 샀더니, 덤이라고 30개가 더 왔다고 한다. 그런데 질이 안 좋아 사용할 때마다 먼지가 날리고 심지어 똥 닦을 때 얇아서 찢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혼자 살다 보니까 이 휴지 재고가 잘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말 오랫동안 이 질 나쁜 휴지를 쓰야만 했고, 사용할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았다고 했다. 드디어 그 휴지가 바닥나서 가장 비싸고 질 좋은 휴지로 바꾸었는데, 쓸데마다 두께감도 좋고 감촉도 좋고 향기도 좋고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비슷한 이야기로 본인의 엄마가 홈쇼핑에서 사들인 대용량 한방샴푸 이야기를 했다. 집에 가면 꼭 한의원에 온 것 같은 냄새가 났다고 했다. 문제는 대용량이라서 아무리 쓰도 쉽게 안 줄어들어 정말 몇년 동안 그 냄새를 맡아야만 했다고 한다. 그 대용량 샴푸 대신 작은 용량의 좋은 향을 가진 비싼 샴푸를 쓰기 시작했을 때는 너무 기분이 좋아졌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일상생활에 자주 사용하는 것들을 싼 것이 아니라, 본인 취향에 맞는 질 좋은 것들로 구매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소소하지만 사용할 때마다 확실히 행복해지는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이야기는 '시간을 아끼고 돈을 쓴다'이다. 이 이야기는 나도 참 공감이 갔다. 신예희 작가는 오랫동안 장을 봐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해보니 시간만 많이 들고 지쳐서, 지금은 외식도 하고, 비싸도 마켓컬리도 이용한다고 한다. 나도 시간보다는 돈을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의 시어머님은 참 근검절약하시는 분이신데, 생각보다 노동생산성이 안 나오시는 분이다. 예를 들어 콩나물을 다듬으면 시어머님은 1시간이 걸리고, 나는 1분이면 끝난다. 이유는 시어머님은 시장에서 정돈이 안 된 제일 싼 콩나물을 사 오시기 때문에 다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신다. 나는 마트에서 정리된 콩나물을 사 오기 때문에 단칼에 한 번이면 끝난다. 시어머님보다 천 원 더 쓰면 한 시간의 노동력을 줄일 수 있다.
시어머님은 음식 솜씨가 좋으신데, 웬만하면 손님 초대는 잘 안 하신다. 손님용 음식 만드는데 2~3일은 걸리기 때문에 힘들어서 하실 수가 없다고 하신다. 나는 사실 음식 솜씨가 그다지 좋지 않다. 그렇지만 손님 초대를 겁내지 않는다. 2~3시간이면 10명 정도의 손님상은 거뜬히 차려낸다. 비결은 장보기다. 시어머님은 본인의 시간과 노동력을 갈아 넣고, 나는 나의 돈을 갈아 넣는다.
신예희 작가의 글은 재치 있으면서도 묘하게 공감이 간다. 더 궁금하신 분들은 신예희 작가의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을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