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가끔은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엄마도 좀 씻자!
가끔은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하루 종일 꼼짝없이 아기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놀아주고 달래주느라 나를 위한 시간이 전혀 없다. 기본적인 씻는 일, 먹는 일도 녹록지가 않다. 이제 그만 쉬고 싶다며 어디에라도 소리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아무 의미 없을뿐더러 아기의 정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밤 8시 샤워를 하러 잠시 들어 간 사이 아기가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울며 욕실 문을 두드린다. 남편이 아기를 달래고 있지만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샤워를 하면서 숨이 막히는 듯하다. 얼른 나가 우는 아기를 재우는 게 마음이 편할 듯싶어 손과 마음이 바빠진다. 그러나 한편으론 답답함에 울화가 치민다. 왜 우리 남편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아기를 울게 만드는 걸까. 아기는 왜 그 짧은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울고 있는 걸까. 아무리 내가 아기 엄마라지만 육아는 오롯이 나의 몫인 가. 누군가 목을 확 졸라 매버리는 듯한 숨 막힘이 나를 짜증 나게 만든다.
샤워를 서둘러 마치고 신경질적으로 나와 로션을 바르는 사이 남편은 싸한 공기를 느끼고 조심히 눈치를 본다. 그런 남편을 보면 마음 한편에 안타까운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는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을 하느라 아기와 교감할 시간이 당연히 부족하겠지. 매 순간을 아기와 함께 하는 나와는 절대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는 우는 아기를 달래 보려 최선을 다했겠지만 쉽지 않았을 거다.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는데 자꾸만 마음이 병든다. 그토록 원했던 아기를 내 손으로 키우며 자꾸 다른 누군가를 원망하게 된다. 따져보면 퇴사와 임신 어느 것 하나 스스로 결정하지 않은 것이 없다. 다만 지금처럼 몸과 마음이 지칠 땐 심성마저 비뚤어진다. 육아의 고단함은 누군가에 대한 원망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지?
뻔해.
뒤에선 나에 대해 뭐라고 하겠어"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은 점점 커져 나 자신까지 미워하게 만들었다. 가까운 사람들마저 의심스럽고, 나를 위한다는 모든 말들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자꾸만 외로워졌다. 눈물 대신 누군가에 대한 원망만이 가슴속에 뿌리내리는 듯했다. 머릿속으로 불필요한 미움을 걷어내려 애쓰는데, 그 사람은 왜 그럴까?라는 답 없는 질문만이 가슴을 답답하게 메웠다.
이토록 힘든 날에는 아기를 처음 품에 안은 날을 다시 찾아본다. 아기를 품에 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안녕. 엄마야"라고 인사하는 핸드폰 속 녹화 장면은 보고 또 봐도 감동적이다. 나와 남편은 우리의 의지로 험한 세상에 소환한 아기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책임과 의무가 분명히 있다. 그러니 나를 갉아먹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제발 그만 털어버리고 싶다.
내일 아침에는 씻지 못하게 매달리는 아기에게 엄마의 힘든 점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려고 한다. 조금만 기다려준다면 좋겠다는 얘기를 덧붙여 진심으로 호소할 생각이다. 뭐 당장은 아니더라도 좋아지는 날이 언젠가 오겠지. 더불어 상대방의 말속 의중을 파악하려는 습관도 되도록 버리려 한다. 안 그래도 바쁜데 마음 편한 대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