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고 난 뒤, 수 없이 고민했고 힘들어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나에게 아기가 생겼다는 것. 육아가 이토록 나의 삶을 변화시킬 거라고 예상 못했던 탓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고 툭하면우울함에 시달렸다. 가장 큰우울함은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하고자 하는 그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왔다. 내가 목표로 했던 것, 꿈, 일 같은 것들에 도무지 손을 쓸 시간이 없었다.
특히 나를 제외한 주변인모두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초조함을 느끼게 됐다. 아기를 낳은 뒤, 나는 점점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기를 낳은 엄마들 모두가 그럴 수밖에 없다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위로해주는 말도 듣기 싫었다. 혹자에게 이기적이고 철없는 엄마처럼 비칠지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이 아기의 탄생 순간부터 엄마로서의 마음가짐을 갖추게 되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너무나 사랑하는 초보 엄마의 열정만은 뜨거워 아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내어 주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지만 한편으로 먼 훗날 내 존재의 이유를 아기에게서만 찾게 되지는 않을까 무서웠다.
그렇게 매일이 지속됐다. 나의 풀리지 않는 불안함을 마음속 깊은 곳에 박아 둔 채 점점 커가는 아기를 살피며, 정성스레 돌보는 날들이 바쁘게 이어졌다. 작은 침대 위에 등 대고 누워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기만 하던 아기는 어느새 방바닥 이곳저곳을 기어 다니더니, 갑자기 꼿꼿이 허리를 편 채 두 다리로 일어나 엄마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기가 그리도 어렵더니 이제 걷는 건지, 뛰는 건지 속도도 제법 빨라졌다.
분유가 아닌 이유식을 먹기 시작했다. 당시 열심히 야채와 고기를 다져대던 나는 칼날에 가운데 손가락을 베였던 적이 있다. 엄청 아팠던 기억이 나는 데 그래도 대충 대일밴드 붙이고 하던 일 마무리한 뒤 아기 밥까지 다 먹였다. 이후 내 기억 속에서 손가락 상처는 금세 사라진 줄 알았는데 며칠 전 우연히 딱지도 아닌 굳은 살도 아닌 흉이 자리하게 된 걸 발견했다. 그냥 내버려 두니 말랑한 살 자리에 딱딱한 살이 차올랐더라.
그 틈에 비로소 나는 인정하게 됐다. 그리고 받아들였다. 아기의 건강하고 예쁜 미소를 지켜주기 위해 잠시 동안 나의 자유는 고이 접어 넣어 둬야 한다.‘포기’ 한 것이 아니라 ‘인정’ 한 것이고, 결국은나의 ‘선택’이다. 육아하는 엄마들의 상황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갈래의 방식이 있겠지만, 지금 나는 아기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아기와 교감하는 행복한 이 순간을 조금 더 즐기고자 한다. 초조할 필요 없이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현재를 살아내는 것이다.
아직도 자는 아기의 손을 가만히 잡고 있을 때면 이게 현실인지 꿈 인지 헛웃음이 날 때가 있다. 다만 나는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엄마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 미소를 늘 바라보고 싶다. 재미있는 놀이를 할 때 눈과 코를 찡그리며 웃는 모습, 신나는 노래를 부르다 차오르는 흥을 못 이기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모습, 산책하러 갈 때면 신나서 발을 동동 구르며 엘리베이터에 뛰어 타는 순간들 속에 함께 하고 싶다. 아마 아빠는 조금 서운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