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염탐
윤성은 100분 토론에 임하는 토론자처럼 자세를 고쳐 앉고, 사뭇 진지한 자세로 핸드폰을 보고 말했다.
“AI 교과서를 도입하면, 책과 연필이 아니라 컴퓨터와 플랫폼이 교실 책상을 차지하게 될 거야.”
“AI 교과서는 미국, 이스라엘, 일본, 중국 이미 여러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진도와 복습, 시각화된 설명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상대측 토론자는 막강한 논리와 데이터로 무장한 에로프였다. 윤성은 에로프가 또 거스를 수 없는 세계화의 흐름 운운하며, 각종 통계들을 들이밀 것이라 예상했다. 초반부터 기선제압을 위해 강한 한방을 날리기로 했다.
“AI의 환각 문제는 어떻게 생각해? AI가 가짜 정보를 교육하면? 학생들은 그걸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텐데, 확신을 가진 가짜 정보만큼 위험한 것도 없어!”
“교사들 또한 정보의 오류를 범합니다. AI는 인간보다 수정이 빠르고, 수천수만 명에게 동시에 업데이트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한방이 맥없이 무너졌다. 윤성은 재빨리 다음 카드를 꺼냈다.
“오케이, 근데 AI는 몇 초 만에 답을 다 알려줘.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이렇게 어릴 때부터 AI에 의존하다 보면,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결국 AI를 맹신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그건 AI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누가 정보를 제공하느냐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어떻게 사고하는 교육을 하느냐입니다.”
“그 사고 훈련도 AI가 하면?”
“7세 고시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토론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빌드업 중이던 윤성은 에로프의 예상외의 질문에 뻥친 표정을 지었다.
“뭐? 무슨 고시?”
“초등학생이 의대 입시를 준비하며, 특정 입시 코드를 주입하는 지금 교육은 사고 형성을 위한 교육입니까?”
윤성은 적잖이 당황했다. 말문이 막혔다. 페이스가 한 번에 말린 것 같았다. 에로프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경쟁 교육의 중심부를 정확하게 겨눠 말했다. 서열화된 경쟁 교육과 이를 뒷받침하는 선행학습은 고등-중등-초등학생으로 점차 낮아져, 급기야 ‘7세 고시반’과 또 여기서도 이를 준비하는 ‘4살 고시생’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입시 컨설팅을 통해 초등학생이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건 강남, 대치동에서나 하는 일이잖아...”
윤성은 얼버무리며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봤지만 에로프는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강남, 대치동의 교육은 당연한 것입니까?”
‘잔인한 놈, 적당히가 없어’ 윤성은 생각했다. 점점 목소리는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건 그들만의 리그라고.. 일반적인 내가 사는 세상과는 딴 세상 이야기야.”
“그곳은 한국의 교육 방식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강남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다시 전국으로, 그곳의 교육 방식은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모두가 그 방식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에로프의 지적은 정확했다. 대치동에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하면 서울-수도권-전국으로 일사불란하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여건이 되면, 무리를 해서라도 더 나은 교육 환경, 아니 입시 환경을 위해 상급지 갈아타기가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강남을 잡겠다고 AI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거?”
“AI는 교육의 변화입니다. AI는 강남이든 지방이든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아니, AI가 교육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결국에는 교사보다 데이터 분석가가 더 인정받는 날이 오고 말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학생들의 학습 정보가 고스란히 데이터로 쌓일 테니까. 그러면 그 데이터를 가만 놔두겠어? 누군가는 통계화해서 분석하려 들 테고, 그럼 자연스럽게 빅데이터 분석으로 연결되겠지. 이럼 뻔하잖아. 데이터 분석도 입시 컨설팅처럼 또 다른 분야가 만들어지게 되는 거야. 근데 공교육에서 이런 환경을 제공한다고?”
“브로는 지나치게 부정적 측면만 부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제도는 허점이 있고,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야. 특히나 교육은 더 해! 어떤 제도가 나오든 바늘구멍만큼 틈만 있어도 교묘하게 그걸 악용해 왔어. 그게 지금 교육의 실상이고.”
윤성이 부정적인 이유는 또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생 시절, 공부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던 아이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교육은 지식 전달만이 전부가 아니야. 친구와 교사와의 관계, 단체생활에서 배우는 경험, 이런 것이 모두 교육의 일부분이라고.”
윤성은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에로프에게 이야기했다.
“몇 반이었지?”
보통 아빠들처럼 윤성은 아이의 학교생활에 무관심했다. 아이 성적의 3가지 법칙. 외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와이프가 누누이 강조했던 3가지 법칙을 충실히 따랐다.
그런 윤성도 아이가 이런저런 학원 뺑뺑이를 평균적으로 했던 탓에, 하교 후에도 밤늦게까지 빽빽한 스케줄을 보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쩌다 윤성이 휴가를 내더라도 아이가 학원을 빠질 수 없어, 혼자 집에서 방콕 했던 적도 흔한 일이었다.
윤성이 기억하는 어이없었던 일은 코로나19가 한참 절정일 때, 학교는 못 가더라도 학원은 계속 다녔다는 것이다. 집은 밤마다 소란스러웠다. 공부가 싫은 아이와 기대가 큰 엄마의 신경전이 매일 밤마다 끊이질 않았다. 그때마다 윤성은 아이 성적의 3가지 법칙을 떠올리며,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선행 학습과 학원 문제는 참 어려운 고차원 방정식이다. 지금의 경쟁 교육은 바꿔야만 한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는 학원으로 보내게 되는 현실을 마주한다. 다들 하는데, 혼자 경쟁에서 뒤처질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학원가는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있고,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교과목을 줄줄 외 우고 있는 땅 위에 우리는 살고 있다.
교육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데는 찬성하지만, 대학 입시에 목을 매며, 결코 학원과는 결별할 수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윤성은 앞으로 7년의 시간을 더 이렇게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했다. 아이에게도 와이프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이건 너무 가혹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평온한 저녁을 맞이하는 가족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 이 소설은 AI와 협업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