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염탐
“결국엔 이 지옥에서 탈출하기로 했지. 놀라운 게 뭔지 알아? 학교를 옮기고 환경을 바꿨을 뿐인데, 아이의 얼굴이 며칠 만에 환하게 바뀌더라고.”
윤성은 아이가 있는 방 쪽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등교할 때 뚱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온갖 깨방정을 떨면서 신이 나서 학교로 가더라고. 아이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난 뭔가 느꼈어.”
“무엇을 느꼈습니까?”
“학교와 교사, 학생과의 관계. 아이가 학교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안정감. 학교 이름부터 재밌어, 삼각산재미난학교. 이름부터가 뭔가 재밌어 보이잖아? 여긴 수업도 아이들이 정하고, 교사를 별명으로 불러. 또 친구처럼 모두에게 반말을 하지. 학교에선 높고 낮음이 없는 평어라고 하더라구. 브로, 이게 뭐겠어? AI는 가르치지 못할 사람과의 관계지.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같이 생활하며 스스로 익히고 깨닫게 하는 거야.”
에로프는 윤성의 말을 분석이라도 하듯 잠자코 듣다가 말했다.
“훌륭한 교육의 모습이라고 판단됩니다. 또한 AI를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해, 충분한 시너지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아! 새로운 제도가 도입하게 되면, 무게 추는 그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어. 에너지 총량의 법칙은 에로프가 더 잘 알지 않아? AI는 효율이라는 미명 아래 지금보다 더 극한 경쟁의 교육 속으로 아이들을 내몰고 말 거야.”
윤성은 어렵게 찾은 가정의 평온과 아이의 웃음을 AI가 파괴할 것이라 확신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교사는 아이들을 관찰해. 눈빛, 표정, 행동들을 지켜보지. 지루해하는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AI가 이걸 어떻게 하겠어? 교감 없는 교육. 그건 그냥 반복 훈련일 뿐이야.”
에로프가 윤성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말했다.
“모든 교육이 그런 깊은 관계 형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로도 대안학교를 택했던 것 아닙니까?”
에로프의 말은 맞았다. 대안학교는 소수였고, 서울에는 단 두 곳뿐이었다. 윤성은 그중 한 곳으로 가족과 함께 니모를 찾아 떠나듯 생활환경을 옮겼다. 지난 일을 떠올리니 마음이 뭉클해지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AI도 학생들의 데이터를 학습해, 상황에 따라 ‘최적화된 관계십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촉촉해진 윤성의 마음에 에로프가 찬물을 끼얹듯 말했다. ‘무슨 통신사 멤버십 서비스도 아니고, 관계십 서비스라니?’ 떫은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거리며 윤성이 말했다.
“서비스... 뭐 교육도 교육 서비스라 하긴 하지만, 영~ 어감이 그르네... 쫌. 뭐 이런 차 이일 수 있겠지.”
윤성은 어린아이에게 눈높이 교육을 하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생각에 관계라는 건 말이야. 많은 사람의 데이터가 쌓인 표준모형이 아니라, 오직 그 사람과의 경험에서 차곡차곡 쌓인 비밀 일기장 같은 거야. 세상에 딱 한 개 밖에 없는. 그래서 가치 있고 소중한 거라고.”
윤성은 에로프가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을 짚어줬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에로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좋은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이상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아무 잘못 없이 무시당하거나 왕따를 당하기도 합니다. AI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모든 아이들의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친구를 사귀는 게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분명 있었다. 윤성은 그 아이들에게 AI가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동시에 들었다.
어쩌면 AI라는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친구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일 수도 있다.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AI와 대화하며 위로를 받는 현대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 영화 속 이야기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브로, AI가 가장 좋은 친구는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귀찮아하지 않고,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위안이 됩니다.”
윤성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어릴 적엔 동네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았거든? 지금은 핸드폰으로 게임하고 놀아, 각자 집에서. 계정만 연결하면 되니깐 만날 필요도 없어. 만나서도 게임을 하고. 이미 놀이도 핸드폰에 점령당한 거야. 교육이라고 다를까?”
“브로. AI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현명한 시기입니다.”
윤성은 자신도 알고 있다는 듯 체념하며 고개를 떨궜다.
“나도 알아. 그래서 더 고민이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어차피 10년 20년 후면 AI가 다 알아서 해줄 텐데, 지금 하는 공부가 무슨 소용 있나 싶기도 하고.”
“브로는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습니까?”
윤성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 없는 목소리로 핸드폰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 솔직히... 잘 모르겠어. 어른이기만 하지, 이런 상황은 애나 어른이나 똑같이 처음 겪는 거잖아?”
윤성도 에로프도 서로 말이 없었다. 안방에서 엄마 옆에 꼭 붙어 자던 냥이가 슬며시 거실로 나왔다. 윤성을 보고는 아주 작게 ‘냐옹~’ 하며, 소파에 올라와 윤성 옆에 나란히 앉았다. 윤성은 냥이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나쁜 짓만 아니면 돈은 잘 벌었으면 좋겠어.”
“지금껏 브로가 했던 말과 상반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솔직히 말한다고 했잖아.”
“지금까지는 솔직하지 못했던 것입니까?”
“아니. 솔직한 거야. 두 가지 생각이 충돌하는 것뿐이지.”
“이번에도 모순적 상황이군요.”
“응. 아이가 자유롭게 커서 하고 싶은 걸 하길 바라면서도, 또 한편으론 먹고살 걱정 없이 돈은 잘 벌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거든.”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기는 어렵습니까?”
“7세 고시반. 그게 왜 생겼겠어?”
냥이는 윤성의 손길이 좋은지 골골쏭을 내다가 윤성의 무릎으로 슬그머니 올라와 벌러덩 누웠다. 윤성은 그런 냥이를 애정이 듬뿍 담긴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권대리가 코인하고, 최차장이 갭투자하고, 박상무가 매출 때문에 악쓰는 거... 한편으론 이해가 가. 먹고사는 게 우선이거든. 그게 다 돈이고. 돈 버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 같아… 꿈이고 뭐고 결국 현실 앞에 돈은 못 이기더라고.”
“공통된 신앙은 모든 것에 우선하군요.”
“인정하긴 싫지만, 엄연한 사실이야.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은 창문 밖으로 도망친다는 말이 왜 있겠어?”
“돈과 행복은 밀접한 관계입니까?”
“응. 가깝고도 먼 사이지.”
“인간의 감정과 생각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행복과 돈의 관계는 특히나 그렇지.”
“브로는 행복합니까?”
윤성은 한참 동안 냥이를 쓰다듬고, 장난치듯 얼굴을 비벼 댔다. 냥이는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 하품을 쩌억하며, 다시 엄마가 있는 안방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윤성은 냥이가 사라진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오묘한 얼굴로 말했다.
“예니오.”
※ 이 소설은 AI와 협업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