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염탐
“참 별거 아닌데, 모두 한바탕 웃었지.”
윤성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나는 가끔 벌러덩 누워서 한쪽 팔은 와이프가 한쪽은 아이가 베고 누워있는 걸 좋아하거덩? 근데 와이프랑 아이가 순순히 안 와, 자꾸 버텨. 결국은 궁시렁 대면서 와서 눕는데, 그게 그렇게 좋더라구.”
“브로는 아주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군요.”
“이런 게 행복인가? 난 잘 모르겠네?”
“작은 일상이 진정한 행복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른가? 근데 쫌 뭐랄까? 재밌는 것과 행복은 좀 다른 거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게임을 하거나 술 마시고 놀아도 재밌긴 하지. 근데 그런 걸 가지고 행복이라고 말하진 안잖아? 행복은 궁극적으로 바라는 삶의 모습? 이런 것에 가깝기도 하고.”
“인간들은 보이지 않는 개념을 어렵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기준도 없으니 어렵긴 하지.”
“한국인들은 특히 더 어렵게 생각하는 합니다.”
“특히 더 그렇다고? 어떤 점에서?”
“이건 한국 사회의 기이한 구조와 연관이 있습니다.”
에로프가 관찰한 한국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경쟁을 가르치는 경쟁친화적 사회였다. 이 경쟁 친화적 사회는 세대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경쟁이라는 행위를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경을 딛고 성공한 감동적인 서사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입했다. 학교에서는 본격적인 경쟁 환경을 조성한다. 성적에 따라 학생들의 줄 세우기가 시작된다. 이 서열화는 초중고를 지나 대학교까지 더욱 공고한 피라미드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시스템은 그대로 사회로 이어진다. 직장, 연봉, 집, 자동차, 모든 것이 비교와 평가의 대상이 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연령별 평균 연봉은 어느새 능력 없는 사람들의 기준이 돼버렸다.
“한국은 서로가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입니다. 경쟁에서 뒤진 사람에게는 서로가 서로에게 혹은 자신 스스로에게 그동안 능력과 노력이 부족하다는 낙인을 찍습니다. 초경쟁사회의 체제를 모두가 집단적으로 수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깨닫게 되는 즐거움의 과정은 생략한 채, 오직 결과와 순위에만 집착하는 사회가 되었다. 학생들의 서열화는 부모에 의해 더 치열한 환경으로 내몰렸다. 한창 성장기의 아이들이 책상이란 좁은 공간에 갇힌 채 꼼짝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런 불행한 아이들의 경험, 성인이 되어도 여전한 초경쟁사회의 모습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극단적 인구감소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초경쟁사회는 사회 곳곳에 여러 갈등과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포용과 존중, 화합보다는 모든 것이 경쟁과 쟁취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세대 간의 갈등, 성별 간의 갈등, 사회 문화적인 갈등. 맘충, 한남충, 틀딱 같은 혐오성 신조어의 난립이 현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경쟁심을 넘어 적개심으로 옮겨가는, 극한의 갈등 사회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일상에서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었다. 때문에 행복은 멀리 있다고 생각하며, 거창한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영원히 잡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경쟁에 길들여진 사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견디며 경쟁에서 이겨야만 하는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미래란 행복보다는 물질적인 보상일 뿐입니다.”
에로프는 한국의 행복지수와 출산율 자료를 띄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행복지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출산율도 가장 낮은 국가입니다.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에 삶을 물려주고 싶지도 않은 것입니다.”
“...”
윤성은 에로프의 분석이 섬뜩했다.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삶을 물려주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는 매우 특이한 현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어떤?”
“다른 나라에서는 사람과 함께 웃고 있을 때, 행복한 순간이라고 공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린 아냐?”
“한국은 ‘집에서 혼자 쉴 때’가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런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윤성은 문득 와이프 생각이 났다. 와이프는 주말 외출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외출할 일이 있어도 둘이 다녀오라며 냥이와 함께 방콕 했다. ‘원래 사람은 집에서 혼자 쉴 때가 제일 행복한 거야.’ 와이프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들었는데, 와이프도 경쟁 사회에 심한 피로감을 느꼈던 것이다.
윤성은 생각했다. ‘왜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됐을까?’ 에로프가 이어서 말했다.
“이 현상은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비롯된 자발적 고립, 경쟁에 대한 스스로의 회피 본능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비교와 경쟁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게 에너지와 감정 낭비가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건 사실이야.”
와이프뿐만이 아니었다. 윤성도 점점 혼자 마시는 혼술의 빈도가 늘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혼자 맘 편하게 마시는 혼술이 어느새 더 편안해진 것이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 한국은 극단적 피로 사회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함께 연대하고, 생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연대감이 부담스럽다면 무언가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윤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에 감정이 소거된 후 인류가 소멸돼 가는 에로프의 행성이 교차됐다. 한국도 스스로 소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우리도 감정이 고장 난 걸지도... 브로네 행성처럼 비슷한 길을 걷는 게 아닐지 모르겠네...”
윤성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 이 소설은 AI와 협업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