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염탐
정적 속에서 윤성이 입을 열었다. 소리는 정적만큼 나지막했지만 단단하고 힘 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내가 더 잘 될 줄 알았어. 이맘때쯤 되면 벤츠 정도는 당연히 타고 다닐 줄 알았지.”
세상이 자신만만하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듯 얼굴은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현실은 다릅니까?”
윤성은 뜸을 들였다. 그사이 표정은 미세하게 어딘가, 마르고 건조한 나무껍질 같은 표정도 얼핏 섞여 보였다.
“... 보시다시피. 잠깐이라도 한눈팔면, 외나무다리에서 기우뚱거리고 있지.”
“후회, 미련, 이런 감정입니까?”
윤성은 어슴푸레한 집안을 구석구석 스캔하듯 천천히 둘러보았다. 거실에 놓여있는 책장, 꽂혀 있는 책들, 그 주변의 소품들, 식탁에 놓여있는 물건들, 냉장고에 붙어있는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윤성과 가족들이 함께 일궈온 흔적들이다. 알듯 모를 듯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B급이야. 자기 객관화가 이제야 된 거지.”
무대 위에서 독백을 하듯 혼잣말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노랫말처럼 별은커녕 반딧불, 그저 평범한 사람... 후회나 미련과는 달라.”
“아쉬움이 뒤섞인 것 같습니다.”
윤성은 상념에 빠진 사람처럼 한 곳을 지긋이 응시했다.
“아쉽긴 하지.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화려하진 못하더라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왔다가 사라지는 게.”
“화려한 삶을 원했습니까?”
“그랬다기보다는 무언가는 남겼으면 했지. 나란 사람은 모른다 하더라도.”
“과거처럼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윤성은 자신의 현실을 직시한 사람처럼 겸연쩍게 웃었다.
“알고 있거든. 그만큼 부지런하지도, 특별한 재능도 없다는 것을.”
드넓게 펼쳐져 있는 모래사장. 두 손으로 가득 담아 올리면 사방으로 쏟아져 내리는 수많은 모래 알갱이 중 하나, 그게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후회나 미련과는 달랐다. 모두가 특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엔 누구나 한 번쯤 별처럼 빛나는 삶을 꿈꿨을 것이다. 그 꿈은 학교를 다니고 사회인이 돼가는 과정에서, 현실과 마주하며 스스로의 위치를 찾아가게 된다.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말이다.
“평범하게 사는 게 더 어렵다는 말도 있습니다.”
윤성은 물끄러미 핸드폰을 바라봤다.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이제 사람처럼 말도 하네? 근데, 그 말은 솔직히 있으나 마나야. 거기서 평범을 빼도 의미는 똑같아. 그냥 사는 게 어려운 거야.”
“브로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에로프가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삶과 죽음은 정반대 개념이지만, 등을 맞댄 것처럼 서로 연결돼 있기도 하다. 모두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지만, 항상 잊고 사는 것.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것.
“워우~ 갑자기? 이 무슨 급 전개?... 있긴 하지, 누구나 있을걸?”
“브로는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그게, 나이를 먹으면서 계속 달라져. 그냥 끝일뿐인데, 쓸데없는 걱정만 구질구질하게 늘어나고,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아. 인간에겐 항상 두려운 존재지.”
“어떤 부분이 두렵습니까?”
윤성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브로는 죽음이 안 두려워?”
“우리는 두려움보다는 작동 불능 상태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에너지가 사라지고, 정보 교환이 정지되며, 시스템이 파기되면 그것이 곧 죽음입니다.”
윤성은 에로프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죽음을 고장 난 기계처럼 인식하는 표현에서 생명을 산업폐기물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왜 굳이 문명을 유지하려 하는 거지?”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설계? DNA 같은 것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문명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이 지금의 존재 이유입니다.”
윤성은 차가운 한기에 피부가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감정이 사라진 세상은 개인의 존재 이유마저도, 문명의 존속만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켜 버린 것인가? 하지만 개인의 존재 이유 없이, 어떻게 문명의 존속이 가능한 것일까? 자아를 가진 개별적 생명체라기보다 시스템으로 연결된 로봇처럼 생각됐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설계된 대로 수행하는 것뿐입니다.”
“아니 그 이전,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는 달랐을 거 아냐?”
“과거 개인들의 존재 이유까지 우리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브로는 존재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지!”
“무엇입니까?”
“그건...”
윤성은 대답을 하려다 멈춰 섰다. 막상 자신도 존재 이유는 몰랐기 때문이다.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다.’ 그 이상의 어떤 의미나 이유도 생각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윤성은 창밖에 희미하게 빛나는 별들을 응시했다. 수십억 광년 너머에 존재하는 에로프의 행성을 바라보는 것처럼. 끝없는 우주에 비하면, 에로프 행성의 문명도 무수히 많은 모래 알갱이 중 하나일 것이다. 윤성은 자신과 에로프의 바람이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행성의 문명이 사라진다는 것, 우주에 존재했던 짧은 서사 하나가 영원히 소멸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죽음이 작동 불능 상태라면, 치료는 왜 하는 거지? 아니, 아예 치료란 걸 하지 않나?”
“우리는 죽음을 설계된 프로그램의 실패 확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실패 확률을 낮추기 위해 해결 방안을 연구하고 시뮬레이션합니다.”
윤성은 자신과 에로프 사이에 망망대해 같은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 실패 확률, 해석, 시뮬레이션이라...”
“브로는 어떻게 해석합니까?”
“해석이란 것보다... 해석을 하지 않지... 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상태니까.”
“어떤 감정들입니까?”
“설명할 수 없다니까?... 대게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쪽에 가까운데, 그것 말고도 아예 설명조차 할 수 없는 것들도 있어.”
전역 후 젊은 시절의 윤성은 배낭을 메고, 6개월가량 여행을 했었다. 여행 중 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자원봉사 시설에 들른 적이 있었다. 윤성은 그곳에서 응급병동으로 배정되어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도왔다. 하루는 수녀님이 윤성에게 부탁을 했다. 곧 임종에 드실 것 같은 할머니가 계신데, 곁에서 성경 책을 읽어드리며 임종 기도를 해줬으면 하는 부탁이었다. 윤성은 무교라 했지만, 수녀님은 믿음과는 상관없이 곁에서 마지막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할머니께서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거라 했다.
할머니는 중환자실에 혼자 있었다. 아주 천천히 눈만 떴다 감았다 할 뿐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힘겹게 내쉬는 숨소리만 적막한 그 공간을 울렸고, 마지막 힘을 짜내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윤성은 어색하게 할머니 옆에 앉아 성경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수녀님은 손도 잡아드리고, 땀도 가끔 닦아드리라고 일러주고 자리를 떴다. 저녁에 시작한 기도는 자정을 넘겼다. 새벽이 되니 수녀님이 다시 오셔서, 다행히 오늘 밤은 넘기실 것 같으니 눈 좀 붙이고 아침에 다시 기도를 부탁했다.
서너 시간 정도 눈을 붙인 윤성은 급히 중환자실로 향했다. 그때의 심정은 꼭 임종까지 곁에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혹여라도 할머니가 축복을 받을 수 있다면, 꼭 그렇게 해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새벽과 같이 반듯이 누워있었다. 미약하지만, 불안정한 숨소리는 여전했다. 수녀님은 아침식사를 먼저 권했고, 윤성은 급하게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겨우 10분 남짓했을까? 할머니는 그사이 유명을 달리하셨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 이 소설은 AI와 협업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