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염탐
“삶과 죽음이 그 짧은 순간에 교차한다는 걸 그때 실감했어.”
“어땠습니까?”
“그냥 멈춘, 정지된 기분이었어. 멍한 것과는 다른, 슬프고 두렵기보다는 외로움? 공허함? 까맣고 공활한 우주에 먼지 하나 떠있는 느낌?”
핸드폰이 다시 이전보다 더욱 심하게 ‘치지직’ 거리며 노이즈를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한참 동안 지속됐다. 전파방해가 점점 더 강하게 발생되고 있었다.
“감정 학습이... 계속 오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측정할 수 없다는 에러 메시지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에로프의 말은 노이즈가 섞여 중간중간이 끊기게 들리기도 했다. 이미 몇 번 겪었던 터라 윤성은 별로 개의치 않고 계속 이야기했다.
“어렵겠지. 그럴 만도 해. 브로는 죽음을 ‘정지’라고 판단하지만, 인간은 ‘영원한 이별’로 받아들이거든. 다시 볼 수 없다는 아픔, 인생 참 별것 없다는 허망한 감정도.”
“죽음 그 자체보다 상실의 감정이 앞서는 것입니까?”
“따로 분리가 안 되는 거겠지.”
“자신의 죽음도 상상해 본 적 있습니까?”
“막연하게 정도만, 아직은 먼 이야기 같아서.”
“브로의 마지막은 어땠으면 합니까?”
윤성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코로 내쉬었다.
“최악은 뉴스에 나오는 고독사 같은 것은 아니었으면 해. 요즘은 원체 많아져서.”
“브로에게는 가족이 있지 않습니까?”
“모두가 가족은 있었지. 각자의 사정이 추가돼서 그렇게 된 것뿐이지.”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습니까?”
“모두가 그렇지, 아마. 멋있게 마무리하는 것도 행운이라 생각해. 또 오래 아프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인간다운 모습으로 가는 것도.”
“존엄사를 말하는 것입니까?”
“존엄사? 거기까지 안 가더라도 생각해 볼 필요는 있지.”
“인간다운 죽음에 대해서 말입니까?”
“치료를 해서 회복이 된다면야 다른 얘기겠지만, 더 이상 가망 없는 사람들에게 고통의 시간만 연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고.”
“그 상황에 직면하면 브로의 생각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놉. 그건 정신이 온전할 때나 가능한 소리지. 의식 없이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사람에게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을 수나 있을까?”
고독사와 존엄사. 사람의 마지막에 관한 이야기다. 내용은 매우 달랐다. 고독사는 바싹 말라비틀어진 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반대로 존엄사는 죽음 앞에서 두려움과 고통을 스스로 해방하기 위해, 인간이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의 모습이었다. 고독사든 존엄사든 죽음 앞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했고, 사회적으로 여러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미리 유서를 남겨볼 생각이야. 장기기증도 포함해서.”
“장기기증은 왜 하려고 합니까?”
“어차피 죽으면 썩어서 없어질 몸. 그 몸의 일부가 필요한 사람에게 옮겨가 새 삶을 준다면, 죽어서도 의미 있는 거 아니겠어?”
“희생입니까?”
“노노. 어차피 죽은 몸인데, 무슨 희생? 썩으나 기증되나 매한가지지. 그렇게 거창할 것도 없어.”
“한국은 장기기증이 낮은 국가에 속합니다.”
“싫은가 부지, 유교사상 때문인가? 꼰대 마인드인가 부지.”
“타인의 일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무겁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죽고 나면 아무것도 모를 텐데. 타인의 일이랑 다를 게 뭐가 있남?”
“죽음 이후는 완전한 끝이라 믿고 있군요.”
“난 사후세계 그런 거 몰라. 죽으면 그걸로 완전한 끝이라고 생각해.”
“완전한 끝의 무엇이 두려운 것입니까?”
“그거야, 내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도 없고, 나도 완전히 끝나게 되니까...”
“잊히는 게 두려운 겁니까? 모든 정보가 끊어진다는 게 두려운 겁니까?”
“음... 나는 후자 같아. 궁금하잖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살고 있을지...”
“호기심의 일종이군요.”
윤성은 어이없다는 듯이 황당할 때 나오지는 웃음을 지었다.
“웃긴다 브로, 진짜. 호기심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론 오천 퍼센트 부족한데? 오만가지가 전부 응축된 필사의 호기심 정도로 해두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 브로는 하고 싶은 게 있습니까?”
“왜 자꾸 죽는 이야기를 꺼내고 그러삼? 분위기 무겁게.”
“죽음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윤성은 에로프가 설명을 하려 하자 가로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케이. 오케이! 알았어. 알았어! 잠깐만, 음. 이거 생각 좀... 내가 병원에 누워있고, 의식이 있긴 한데 살 날은 이미 정해져 있고, 곧 고리 달고 하늘 간다라...”
윤성은 한참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아이를 생각해 보기도 와이프와 있었던 일들도 떠올려보고, 평소에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것들도 하나씩 더듬어 갔다. 별로 없었다,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어떤 의미를 남기는 것도 가식 같다는 생각이 들고, 정말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무언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의외의 대답을 꺼냈다.
“고마웠던 사람들에게는 고맙다는 인사를, 미안했던 사람들에게는 미안하다는 인사를 진심으로 할 것 같아.”
“왜 그렇습니까?”
“모르겠어. 그냥 그렇게 해야, 맘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건 지금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 지금은 안돼.”
“왜 그렇습니까?”
윤성은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웃었다.
“아직 죽으려면 한참 남았거든.”
“인사하는 것과 살아있다는 것이 어떤 연관성이 있습니까?”
“없지, 하나도. 이런 게 인간이야.”
핸드폰에서 다시 노이즈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면 어김없이 에로프는 오류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그 빈도가 점점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윤성은 무언가 생각하다 에로프에게 묻기 시작했다.
“브로, 점점 오류가 심각해지는 데? 이러다 뭐 문제 생기는 거 아냐?”
에로프는 아무 말도 없었다. 여진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론 왠지 감정 학습이 성공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 왜 그렇게 ... 생각합니까?”
“감정이 사라진 후 인류가 소멸 직전이다. 그래서 인류의 소멸을 막기 위해 인간의 감정을 학습한다. 근데 정작 존재 이유는 문명의 존속이고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뭔가 알맹이가 빠진 오류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 그 오류를 ... 설명해 주십시오.”
“봐, 감정 학습에 성공한다 해도, 존재 이유는 바뀌지 않을 거잖아? 설계가 그렇게 돼있기 때문에. 근데, 그 설계가 오히려 문제가 아닌가 싶은 거야. 문명의 존속과 상관없이 인류 개개인이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있는 게 즐겁고 행복할 때 인류가 번성하고 존속할 것 같은데, 브로는 반대로 접근하는 것 아닌가 싶어?”
“우리는 확률적으로 ... 더 존속률이 높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 확률에 핵심이 ... 감정이라는 판단입니다.”
노이즈가 이번에는 잠깐 왔다 사라지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계속해서 발생되고 있었다.
“브로, 이런 방식으로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감정을 확률적으로 계산해서 학습하려 할수록 모순에 빠지게 될걸?”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불완전함 속에서 살아가거든. 실수하고, 후회하고, 변덕 부리고, 울다가 웃고... 그게 감정이고 그게 인간인데.”
더욱 심하게 ‘치지직’ 거리는 노이즈가 커졌다. 전파방해로 방송 수신이 아예 안 되는 것 같은 상황에 이르렀다. 갑자기 에로프에게서 이상 소리가 뒤섞여 함께 들려왔다.
“연산 지연 ... 데이터 왜곡 ... 처리 오류 ... 위험 수준 도달 ...”
의문의 소리에 윤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알 수 없는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최종 단계 진입 ... 실패 확률 91.4% ... 리셋 ... 시스템 재부팅 ...”
“브로, 왜 이래? 이거 괜찮은 거야? 무슨 문제 생긴 거 아냐?”
영문을 몰라 당황하는 윤성에게 심하게 ‘치지직’ 거리는 소음을 뚫고, 에로프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 오래전 ... 침묵의 행성은 ... 모든 인류가 소멸했습니다.”
※ 이 소설은 AI와 협업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