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 공약을 왜 하는 건가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각오를 밝히는 것입니다!"
학생회 대표인단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와 학생들 사이의 질의응답은 꽤나 진지한 것처럼 보였다. 학교 카페에 올라온 후기 글은 그날의 달아오른 선거 열기를 생생하게 담고 있었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하반기 재미난학교의 학생회를 이끌어갈 대표인단 선거가 열렸다. 후보자 공약이 담긴 선거공보물이 학교에 붙고, 선거관리위원회가 꾸려졌다. 후보자들은 학생회의 시간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공약 발표를 하고, 질의응답을 받는 토론회 시간을 가졌다.
학생회 대표인단은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학교 생활 규칙을 논의하는 자리인 학생회의를 주관하는 대표자들이다. 또 매년 학생회 예산으로 어떤 활동과 무엇을 집행할 것인지에 대한 자체적인 예산 편성과 승인 등을 전교생과 함께 논의하고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올해 재미난학교의 하반기 학생회를 책임지게 될 대표인단 4인의 선거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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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자와 공약>
#1번 후보자
o 출마 이유: 학생들을 도와주고 싶고, 학생회를 유익하게 만들고 싶어서
o 대표 공약: 우리 모둠 회식비를 3천원으로 늘리겠습니다.
#2번 후보자
o 출마 이유: 할거 없어서, 진행해보고 싶어서
o 대표 공약: 진행을 잘하겠습니다.
#3번 후보자
o 출마 이유: 초등생활 마지막으로 대표단을 하고 싶어서
o 대표 공약: 삼각산재미난학교 브이로그 제작과 당선 시 삭발
#4번 후보자
o 출마 이유: 1학기 학생대표단이었지만 좋은 모습을 많이 못 보여준 거 같아서 2학기때는 더 좋은 대표단 모습을 보여주고 초등생활 마지막으로 학생회를 이끌고 싶어서
o 대표 공약: 한 달에 한 번 최고의 급식(베스트 급식) 메뉴 선정
#5번 후보자
o 출마 이유: 한 번도 안 해봤고 학생회 하는 모습이 멋있으니까
o 대표 공약: 비 오는 날 학생들이 우산을 잘 접는지 감시하겠습니다. 연필, 지우개, 책을 기부하겠습니다.
#6번 후보자
o 출마 이유: 1학년때 해봐서 2학년때도 하고 싶다.
o 대표 공약: 건의함을 매일매일 확인하겠습니다.
#7번 후보자
o 출마 이유: 3학년 때도 대표단을 해서 학생회를 진행하고 싶어서
o 대표 공약: 학생회 때 떠드는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하라고 하겠습니다.
<후보자 토론회>
● 유권자 질문: (기호 1번) 우리 모둠 회식비를 3천원으로 늘릴 건데 학생들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 아닌가요?
○ 후보자 답변: 학생회 논의를 통해서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교사회에 전달하고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 유권자 질문: (기호 2번) 당선되었는데 우리 모둠이 중등에 개설이 안되면 어떻게 되나요? 공약이 진행을 잘하겠습니다 밖에 없는데 계획을 한 건지 아무 생각 없이 쓴 건가요?
○ 후보자 답변: 우리 모둠 수업이 중등에 개설이 안되면 중등 수업을 빠지겠습니다. 공약은 아무 생각 없이 쓴 겁니다. (놀랍게도 당선되었다. 가식 없는 솔직함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나 보다)
● 유권자 질문: (기호 3번) 혹시 당선이 되었는데 삭발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실 건가요?
○ 후보자 답변: 부모님이 이미 허락해 주셔서 괜찮습니다. (당선되어 실제 삭발을 했다. 홍보영상도 만들어 학교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 유권자 질문: (기호 4번) 한 달에 한 번 최고의 급식 메뉴 선정 칸나에게 허락받았나요? 최고의 급식 메뉴를 선정한다고 했는데 선정해서 뭘 할 건가요?
○ 후보자 답변: 지난 학기에 허락을 받았습니다. 칸나와 이야기해서 급식 메뉴로 넣을 겁니다. (당선되어 최고의 급식 메뉴는 매달 제공되고 있다)
● 유권자 질문: (기호 5번) 연필, 지우개, 책을 기부하겠다고 했는데 안 할 수도 있나요?
○ 후보자 답변: 안 하면 안 되죠! 해야죠! 공약이니 당선이 되면 꼭 하겠습니다. (당선되어 연필, 지우개, 책을 학교에 기부했다!)
● 유권자 질문: (기호 6번) 건의함을 까먹지 않고 확인하겠습니다 라는 공약이 있는데 2각산에 있는데 매일매일 4각산에 와서도 확인하나요?
○ 후보자 답변: 4각산은 매일 오지 못해서 오는 날만 확인하겠습니다.
● 유권자 질문: (기호 7번) 학생회 때 떠드는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시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 후보자 답변: 좀 더 열심히 조용히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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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세상의 선거는 어른들 세상의 피로감 가득한 선거와는 달랐다. 장난스러움과 해맑음 그 어느 사이에 가볍지만은 않은 모습도 있었다. 바로 공약 실천이다. 아이들은 후보자들이 공약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또 지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계속해서 묻고 확인했다. 약속은 중요한 것이라고 학교와 어른 그리고 책에서도 배웠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겠다. 오히려 이 당연한 것이 어른 세상에서는 좀처럼 지켜지지 못할 뿐이고, 익숙한 듯 핑곗거리부터 찾을 뿐이다.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 점이다.
최근 학생회의에서 학생들 간 조금 큰 갈등이 있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학생회의는 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고, 교사는 1명만 그것도 발언권 없이 참관자로만 참여하도록 처음부터 운영돼 왔다. 해서 갈등이 빚어졌을 때 교사라 하더라도 함부로 개입하지 못하고, 즉각적인 대처가 어렵다고 했다. 초등 1학년부터 중등까지 함께 회의를 하니, 이해의 폭과 연령차도 크고 그렇기 때문에 교사회와 학생회에서도 학생회의의 운영방식을 고민 중이라 했다.
어디에나 갈등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갈등은 또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학생회 대표인단 선거 후기를 떠올려보며, 이 갈등도 아이들이 스스로 대안을 찾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대표인단 선거처럼 학생회의 토론 문화도 어른들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미 결론을 지어놓고 상대방과 싸우듯 흠을 찾는 어른들 세상의 막힌 토론 방식과는 다르게, 서로 다른 생각들을 주고받으며 활짝 열린 자세로 슬기로운 대안을 찾아가는 아이들 세상의 학생회의가 가능할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