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를 머리에 동여맨 코가 빨간 주정뱅이 학부모. 쪼르르 아이들을 줄 세워놓고 노래를 한곡 뽑아라, 춤을 춰봐라, 큰소리로 갑질과 명령질을 한다. 아이들은 웃기다는 듯 또 고학년 아이들은 유치하다는 듯 콧방귀를 뀐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요상스럽게 보기도, 재밌게 지켜보기도 한다. 올해 8월. 30도를 가뿐히 넘기는 무더위는 모두를 지치게 만들었지만, 재미난학교는 무더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더 땀방울을 흠뻑 쏟아냈다. 그리고 나는 무더위에 점점 얼굴이 빨개져 찐 술주정뱅이에 점점 가까워졌다. 메소드 연기가 아닌 레알 상황이다.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
재미난도서관은 학교 부설기관이자 마을 도서관으로 매년 재미난 일들을 꾸린다. 여름 방학은 여름 캠프를 연다. 테마를 가지고 아이들이 이런저런 미션들을 진행하고, 학교에서 1박을 한다. 올해 캠프 테마는 ‘어린 왕자’. 나는 술주정뱅이 행성을 맡았다. 그래서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에게 맘껏 술주정(?)과 갑질을 했다. 합법적으로. 이런저런 미션을 끝낸 아이들은 흥이 한껏 올라있었고, 결코 꺼지지 않는 활화산이 되어 새벽이 되어도 잠들지 않았다. 아이들의 체력은 강했고, 어른들의 체력은 받쳐주질 못했다.
새벽 1시가 되어도 시끌벅적함은 학교를 회오리치듯 감싸고 있었다. 소음에 둔한 편인 나조차도 뇌가 두둥실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한밤중에 주변의 민원이 걱정되는 다른 학부모는 연신 아이들에게 조용히 좀 해달라고 부탁하고, 소리치고, 애원하기도 했다. 허나 그건 불가능이라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렇게나 완벽에 가까운 환경과 분위기를 마련해 놓고, 조용히 잠을 청하라 하는 건 이율배반적이다.
야생마들을 넓디넓은 평야에 풀어놓고, 천천히 산책을 하라 하면 정말 사뿐사뿐 걸음마나 하고 있을 야생마가 있을까? 흥이 한껏 오른 아이들 무리는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과 동시에 이쪽저쪽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학교를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렇지! 얌전히 다소곳이 앉아서 속삭이면 그게 어디 아이들이랴? 혼날 때 혼나더라도 웃고 떠들고 한바탕 신나게 놀아야지!
시간이 새벽 4시를 향하고, 시끌벅적한 소란도 한풀 꺾일 때쯤 나도 쪽잠을 정했다. 이제 학교는 물 반 고기 반처럼, 침낭 속에서 잠든 아이들 반, 졸림의 경계선 그 어딘가쯤에서 아직도 정신의 끈을 부여잡고 속닥이는 아이들 반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다. 가지런히 벽을 향해 일렬횡대로 잠을 자는 것은 애초부터 미션임파서블이었다. 에너자이저도 울고 갈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이라고나 할까?
쪽잠을 청하며, 문득 유년 시절의 보이스카우트 기억이 떠올랐다. 국민학교 시절 학교 강당에서 옹기종기 모여 미션을 하고 수다를 떨고, 밥도 해 먹고,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갑자기 비가 억수로 쏟아져 학교 강당에서 다닥다닥 들러붙어 잠들었던 기억이. 이 아이들도 나처럼 훗날 어른이 되어 지금의 추억을 되새기는 날이 오겠지. 그리고 이 추억과 경험들은 또다시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흐뭇한 기억과 함께 얄궂은 상상도 함께 해본다. 훗날 너희들이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서 밤을 지새우게 된다면, ‘어디 한번 맛 좀 봐봐라! 이게 얼마나 극한 체험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