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일정이 꽤 남았네?’ 중간중간 추가되는 예상치 못한 일정까지 생각하면, 올해의 끝이 보인다고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재미난학교 학부모가 되어 이곳으로 이사 온 지 8개월 차. 학교와 관련된 크고 작은 행사들은 매월 끊.김.이. 없이 계속됐다. 매년 기본적으로 진행되는 학교 행사와 더불어 올해 개교 20주년을 맞이해 열리는 기념행사들까지. 유독 행사가 많은 한 해라고 했다. 그리고 이 기념행사들은 10월인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한 달 전쯤 인가? 주말 오후 한가롭게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약간 낯설게 느껴졌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만 늘어져 있던 게 얼마 만인가?‘ 핸드폰에 저장된 학교 일정 메모장을 열어봤다. 그동안 적어 놓았던 학교 관련 스케줄 목록은 손가락으로 몇 번을 계속해서 내려볼 정도로 주루룩~ 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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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월 13일(토): 재미난 중등 모꼬지 (신입가정 환영회)
02월 24일(토): 학교 겨울 대청소 (겨울방학 개학 전 대청소)
03월 01일(금): 열음식 (학교 개학 및 입학식. 삼일절 휴일)
03월 10일(일): 책책산중 (재미난과학책 모임)
03월 23일(토): 재미난학교 교육철학의 이해 (학부모 교육)
03월 24일(일): 라바축구 (마을배움터 수유재 행사)
03월 30일(토): 재미난학교 통합교육의 이해 (학부모 교육)
03월 31일(일): 중등1학년 가정모임 (아이와 부모들 친목 모임) *산책모임 발기일
04월 06일(토): 손에 손잡고 (어울림위원회 미션 수행)
04월 10일(수): 수유비어 탐방 (마을협동조합 번개 모임. 총선 임시휴일)
04월 14일(일): 책책산중 (재미난과학책 모임)
04월 20일(토): 학교 소개자료집 회의 (학교 홍보책자 제작)
04월 21일(일): 산책모임 (삼각산재미난학교 책을 쓰는 모임) *산책모임 첫 회의
04월 26일(금): 학부모 자기활동 (학부모 돌봄&일일 수업. 개인 휴가)
04월 27일(토): 대안교육연대 축구한마당 (전국대안학교연합 축구대회)
04월 28일(일): 재미난카페 대청소 (마을공유공간 대청소)
05월 05일~ 06일(일/월): 산책모임 (워크샵 - 책의 방향과 소재, 목차 회의. 대체휴일)
05월 12일(일): 책책산중 (재미난과학책 모임)
05월 15일(수): 산책모임 (첫 원고 제출. 광복절 휴일)
05월 25일(토): 재미난카페 청소 (마을공유 공간 주간 청소 도우미)
05월 26일(일): 산책모임 (원고 취합 후 첫 합평)
06월 01일(토): 상반기 학교설명회 (아이 돌봄 도우미)
06월 16일(일): 책책산중 (재미난과학책 모임)
06월 29일(토): 20주년 기념 포럼 (‘대안교육의 미래, 함께 길을 찾다’ 참관)
07월 14일(일): 재미난푸줏간 (20주년 기념사업 펀딩 모금 활동)
08월 04일(일): 산책모임 (여름 방학 기념 단체 물놀이)
08월 10일(토): 재미난도서관캠프 (미션도우미)
08월 17일(토): 학교 여름 대청소 (여름방학 개학 전 대청소)
08월 24일(토): 학교 소개자료집 회의 (학교 홍보책자 제작)
08월 31일(일): 산책모임 (전체 원고 합평, 투고기획서 준비)
09월 07일(토): 907 기후정의행진 참가 (강남역 일대 기후, 환경 프로그램 참가)
09월 08일(일): 어울림위원회 영화단체 관람 (발달장애 독립영화 ‘그녀에게’)
09월 22일(일): 학교 소개자료집 회의 (학교 홍보책자 제작)
09월 28일(토): 강북 캠퍼스 피크닉 참가 (지역 축제 내 학교 홍보 부스 행사)
09월 29일(일): 늘보반점 (재미난 쿠폰 이벤트)
10월 01일(화): 산책모임 (원고 합평과 출판사 투고 회의 *임시공휴일)
10월 06일(일): 재미난카페 일손 지원 (기증물품 정리정돈 도우미)
10월 12일(토): 재미난한마당 (연례 학교 축제)
10월 13일(일): 책책산중 (재미난과학책 모임)
10월 19일(토): 퍼레이드로 만나는 ‘신비한 멸종위기 동물 사전’ (멸종위기 동물 인형탈 퍼레이드)
10월 20일(일): 대안교육한마당 먹거리 판매 메뉴 회의 (20주년 기념사업 펀딩 모금 활동)
11월 02일(토): 대안교육한마당 부스 행사 (먹거리 판매)
11월 09일(토): 학교 하반기 입학설명회 (아이 돌봄 도우미)
11월 15일(금): 도서관잔치 (먹거리 장터 도우미. 개인 휴가)
11월 17일(일): 책책산중 (재미난과학책 모임)
12월 14일(토): 마무리잔치 + 20주년 행사 (학교 마무리 축제 + 20주년 기념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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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특별히 진행되는 20주년 기념행사들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내년, 내후년까지 이런 패턴들은 엇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건 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산책모임 덕분(?)이다. 학부모 입장에서 학교의 관찰일기를 쓰려면 그만큼 학교의 이런저런 활동들을 몸소 경험해 봐야만 했고, 그 덕에 학교 행사나 소소한 일거리에도 자주 참여하는 부류의 학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내년에도 줄기차게 학교 행사나 일거리들을 쫓아다닐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도 다다르게 됐다. 매년 한 권씩 3부작의 책을 쓰기로 했으므로…
누구를 탓하랴! 아이가 재미난학교를 선택했고, 부모로서 아이의 선택을 지지해 주었고, 산책모임은 심지어 내가 앞장서서(?) 학부모들을 끌어 모으기도 했다. 그 결과 메모장의 목록처럼 나의 주말은 저렇게 꽉 차게 됐다.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주말을 떠올려 보면 지금과는 사뭇 딴판이었다. 소파에 꾸덕하게 눌어붙은 가로본능 나무늘보가 되어, TV를 보다가 낮잠을 자고, 가끔씩 외출하는 게 일상의 풍경이었다. 좋게 표현하면 한가로움이요, 다르게 보면 권태로움이다. 해서 사라진 주말이 아쉽거나 아깝지는 않다. 어차피 TV나 보고 있었을 주말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