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차올라 고갤숙여. 생활교사가 나눠 준 아이의 생활 기록지를 읽어 내려가다 갑자기 핑~ 눈물이 고였다. 참으려고 하는데, 이내 또르륵 눈물이 흘렀다. 쯧. 상반기 가정상담에서도 눈물을 보인 것 같은데, 별칭을 울보로 바꿔야 할 판이다. 개발새발처럼 잘 알아보지도 못하게 쓴 아이의 글. 1학년을 보낸 아이 스스로의 평가가 몹시도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리고 아이는 생활교사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너무너무 좋았던 인생(?) 최고의 학기였다는 말과 함께.
재미난학교의 가정상담시간. 학기말 각 가정의 부모와 생활교사 간 면담. 한 학기 동안에 있었던 학교와 가정에서의 아이 생활상을 서로 주고받는 시간이다. 생활교사는 아이가 수학 숙제를 하는데 2시간이 꼬박 걸린다는 이야기에 새삼 놀랐다. 한 페이지를 푸는데 어떻게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궁금해했다. 짧게 설명하자면 한 페이지를 푸는데 1시간, 엄마와 함께 검사하는데 30분, 다시 틀린 문제를 고치는데 30분. 도합 이렇게 2시간이 꼬박 걸린다. 아이는 수학 문제 푸는 걸 매우 지겨워한다. 멍 때리고 몸을 비비 꼬면서 1시간을 걸쳐 한 페이지를 끝 마친다. 이후 엄마와 함께 검사하는 30분 내내 상호 날이 선 목소리가 오간다. 그 후 다시 틀린 문제를 고치는 시간에 '에휴... 에휴…'를 쏟아내며, 아이는 터벅터벅 방으로 들어간다. 고개를 떨구며.
생활교사는 초 현명한 답을 주었다. 학교에서 숙제 검사를 하고 틀린 문제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있는데, 굳이 가정에서 미리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엄마의 변. 문제집을 보면 틀린 답을 지우고 다시 쓴 흔적이 있는데, 모두 동그라미가 쳐져 있어서 검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생활 교사는 숙제 검사를 하면, 대부분 틀린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그걸 학교에서 다시 확인해 가며,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 하나씩 다시 풀어보고 제대로 풀었으면 동그라미를 준다고 했다. 학교에서 하는 과정을 집에서 엄마가 미리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집에서는 숙제를 하면 그걸로 끝. 아이의 숙제를 더 이상 들여다보지 말라고 권유했다. 와이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지난 몇 달 동안 지지고 볶고 했던 통곡의 저녁 숙제 검사 시간들. 이젠 안녕이다.
또 다른 고충의 시간, 글씨 검사. 이건 엄마, 아빠 연합의 변. 글씨를 도무지 알아볼 수 없다. 와이프도 나도 함께 잔소리를 했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더 심했다. 글자를 쓴다는 것은 그 목적이 기록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인데, 그 기록의 정보를 인식할 수가 없다. 이런 이해되지도 않을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대며, 글자를 바르게 쓰라고 했다. 아이가 쓴 글을 아이도 잘 읽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이쁘게 쓰는 건 바라지도 않고, 알아볼 수만 있게 또박또박 쓰라고 글씨를 볼 때마다 이야기했다. ‘이게 어려운 일인가?’ 다른 건 몰라도 글자는 물러설 수 없었다. 생활교사는 짧게 말했다.
“어려운 일이에요.”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이내 수긍을 했다. 다른 학생들도 글자 쓰기가 참 어렵단다. 와이프와 나는 아이가 초등학생 저학년 시절, 글씨를 참 가지런하게도 바르게 썼던 그 글씨체를 잊지 못한다.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엄마, 아빠는 그 긴 시간 동안 인정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욕심’ 일 것이다. 생활교사는 글씨도 학교에서 종종 이야기하니 집에서는 안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집은 그저 몸도 마음도 편안히 쉴 수 있는 곳. 눈치 보지 않고 스트레스받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고 진심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와이프와 나는 동시에 수긍하고, 글씨도 ‘입꾹닫’ 하기로. 또 하나의 갈등의 시간들. 이젠 안녕이다.
또 하나의 부탁이 있었다. 아이를 지켜보면 본인 스스로에게 갖는 기대치가 높은 편 같다고. 그래서 긴장도가 높고, 스트레스도 있는 편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끔 학급 친구들에게 잔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그건 바로 본인의 기대치를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기 때문일 거라 했다. 그리고 그 기대치는 부모에게서 비롯되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음. 이번엔 와이프는 순순히 수긍을 했지만, 내가 쉽게 수긍하기 어려웠다. ‘아이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가?’ 스스로 반문했다. 직장이나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는 종종 깐깐하다는 말을 듣는 편이긴 하다. 다만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방적 소통, 강요 이런 것을 나 스스로도 싫어하는 스타일이므로.
아빠의 변이 길어졌다. 내가 아이와 평소 대화하는 방식을 이야기하는데, 생활교사는 바로 이런 점들이 기대치가 높은 것이라고 콕 집어 말했다. 내 말과 생활교사의 말이 동시에 겹치는 그 순간, 이해가 확 와닿았다. 아이와 대화하는 나의 습관 중 하나는 어떤 상황이나 현상을 마주할 때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아이가 잘 이해되는 않은 듯한 표정을 지으면 다른 예를 들어가며 묘사하듯 상황들을 하나하나씩 설명하기도 한다. 상황에 잘 들어맞는 정확한 단어를 생각하며 이해시키려 노력하는 편이다. 생활교사는 바로 이런 점이 나의 기대치가 높다는 반증이라 했다. 이해를 못 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해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명쾌했다.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인정하고 또 한발 물러섰다. 고로 또 하나와 작별을 고했다. 오늘 여럿과 안녕한다.
이별을 했는데 참 홀가분하다. 안녕이 이렇게 좋을 순 없다. 가정상담에서 그간 생각하지 못했었던 일상에 대한 깨달음의 시간. 아이가 생활교사에게 고맙다고 말했던 것처럼, 나도 오늘의 시간이 그리고 그동안 아이와 함께 해준 시간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감사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