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경계, 교육의 출발점

by B급 사피엔스

며칠 전 재미난학교의 해냄식(졸업식)이 있었다. 곧 있으면 이제 열음식(입학식 겸 개학식)이 시작된다. 입학 후 일 년의 교육과정을 한 바퀴 돌아본 셈이다. 졸업 가정들은 각자 연단에 올라 아이의 졸업 소감을 한 마디씩 전했다. '건강히 잘 자라주어 고맙다.' '너무 자랑스럽다.' '이 순간이 오긴 하는구나.' 한 가정은 둘째 졸업까지 무려 18년의 시간이 지났다고 소회를 밝혔다.


일 년 전 내가 중등 신입 가정일 때 환영회 자리에서 한 학부모가 했던 말이 스쳐갔다. 아이 둘을 재미난학교 졸업시키고 나니, 팔팔했던 30대가 어느새 머리가 하얘진 50대가 되었다는. 그땐 유별난 사람들의 여정쯤이라고 생각했다. 기간은 짧지만, 나도 그 여정에 합류한 건 마찬가지다. 아이 한번 잘 키워보겠다고 이곳으로 부랴부랴 이사를 오지 않았던가?


'따뜻한 돌봄과 자유로운 배움'이란 무엇일까? 일 년 가까이 스스로에게 또 주변인에게 계속했던 질문이다. 한 학기가 끝나갈 때까지 그 질문은 계속됐다. '따뜻한 돌봄과 자유로운 배움'이란 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 실체가 모호하게만 느껴졌다. 누군가 나에게 "'따뜻한 돌봄과 자유로운 배움'이란 게 어떤 거예요?"라고 물어본다면 대답하기기가 곤란했을 것이다. 재미난학교를 한 바퀴 돌아본 최근이 되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학부모들과 교사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던 이야기들, 혹은 미처 흘려들었을 수도 있었던 이야기들이 비로소 내 안에서 정리가 되었다. '관계와 경계 교육'이라는 의미로.


내 생각은 이렇다. 재미난학교는 상호적인 관계와 경계 교육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서로의 적절한 경계를 파악하고, 그 경계를 기반으로 다시 관계를 맺는다. 그 경계는 개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각자의 거리도 다르고, 성질도 다르다. 상호적인 대상에 따라서도 다르게 작동한다. 학생들이 성장하고 변화함에 따라 각자가 가지고 있던 경계의 범주도 함께 달라진다. 재미난학교는 이 경계를 기반으로 관계를 맺는 교육에 매우 섬세하게 접근한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이거나 우위에 서지 않도록 마련된 대표적인 문화가 평어와 별칭이다.


몸이 약하거나 불편한 친구들과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개별화 교육과 장애/비장애 통합 교육이 제도적으로 갖춰져 있다. 서로의 다양성과 배려와 존중을 배우며, 이런 배움을 바탕으로 서로가 불편하지 않을 경계를 깨닫고, 편안한 관계를 맺는다. 상호적인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학교는 물리적으로도 작은 학교로 운영된다. 이런 문화와 제도 안에서 학생들 서로가 안전하다는 믿음이 싹트며, 따뜻한 돌봄과 자유로운 배움이 발현된다. 내 생각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재미난학교의 교육 철학과 문화, 다양한 제도들이 내 안에서는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었다.


재미난학교를 졸업하는 초등학생들은 일부는 재미난 중등으로, 일부는 국공립중학교로 진학을 택했다. 일 년 동안 재미난학교에서 함께 추억을 만든 졸업생들에게 축하와 더불어 훌륭한 청소년으로 성장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어느 곳에 가더라도 이곳에서 배운 관계와 경계 교육을 잊지 말고 계속 실천해 주었으면 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이 시기에 정말로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Ps. 해냄식 마지막 순서에 졸업생 한 명이 "커피는 언제 사줄 거예요?"라며 방긋 웃으며 지나갔다. 지난여름 도서관캠프에서 자기도 커피를 사달라고 졸랐던 아이다. 나아~중에 적어도 고등학생이 되면 사줄 테니, 지금은 딸바를 먹는 게 어떻겠냐고 했었다. 반년이 지났어도 나를 보며 그게 떠올랐나 보다. 그 해맑은 웃음을 가지고 건강히 자라고 있으렴. 몇 년 뒤엔 커피 한잔 꼭 사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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