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염탐
“아닙니다. 이것은 감정이 사라지게 된 시작에 불과합니다.”
“시작에 불과하다고?”
“‘감정 소거 주파수’, 큰 충격에 빠진 과학기술 신봉자 중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행성의 대혼란 이후, 과학기술을 신봉하던 한 과학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감정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그는 인류의 감정이야말로 예측 불가능하며, 통제할 수 없는 가장 위험한 원인이라 생각했다. 그는 은밀히, 문제의 원인을 제거할 하나의 계획을 시작했다. 인류의 감정을 서서히 제거시키는 전파, 이른바 ‘감정 소거 주파수’ 개발에 미치광이처럼 집착했다. 이 주파수는 안테나, 통신기기, 레이더로도 감지가 불가능했고, 오직 인류의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특정 영역만 서서히 파괴시키는 전파였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전파 송출기를 행성 곳곳에 설치했다. 모든 것이 준비된 어느 날, 그는 ‘감정 소거 주파수’를 활성화시키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자신이 사라짐으로써 이 전파의 존재 자체가 영원한 비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인류의 감정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것은 ‘완전한 문명’의 허무감과는 달랐다. 인류는 더 이상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고, 감정이 사라진 말은 공허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의사소통은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두뇌 간 데이터 트랜잭션 방식, 이른바 ‘의식 교환 시스템’으로 대체되었다. 인류는 생각으로만 소통했고, 그 소통은 실용적이었지만 무미건조했다. 대화가 사라지고, 결국 인류는 목소리마저 잃었다.
감정이 사라지며, 인류의 본능도 퇴화하기 시작했다. 사랑, 욕망과 함께 종족 번식의 욕구도 사라졌고, 인류는 차츰 감소하게 되었다. 새로운 출생은 제로에 수렴했고, 인류뿐 아니라 동물의 개체수도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절규하지도, 눈물 흘리지도 않은 채 인류는 깊은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고, 그렇게 아무도 인식하지 못한 ‘침묵의 행성’을 맞이했다.
“워우... 무섭네.. 끔찍함...”
윤성은 에로프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정 소름이 돋았다. 광기에 사로잡힌 과학자 하나가 이렇게까지 한 문명을 파괴할 수 있다니... 모르고 당한다는 게 더 끔찍하다고 느껴졌다. 모르기 때문에 해결할 생각조차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끔찍했다.
“결국 감정이 사라지고, 가족들도 사라진 거야?”
“그렇습니다. 이 상태는 수백 년간 지속됐습니다.”
“헐?? 그 전파는 어케 알게 됐는데?”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고, 인류에게는 희미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긴 시간이 흐르고 ‘침묵의 행성’ 어딘가에서 ‘감정 소거 주파수’에 내성을 가진 돌연변이 인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감정이 마비되지 않았고, 서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소수였지만 이끌리듯 서로를 찾아냈고,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감정이 없는 인류에게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확신했다. 연구단체를 조직해 감정과 관련된 기록들을 찾아보며, 언제부터 특이점이 시작되었는지 단서들을 하나씩 추적해 갔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수백 년에 걸친 방대한 자료들을 거꾸로 파헤친 끝에 결국 ‘감정 소거 주파수’의 존재를 밝혀냈다. 과학자의 연구 기록을 복구해, 행성 곳곳에 설치된 송출기를 찾아 모두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인류는 너무 오랫동안 주파수에 노출되어 있었다.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뇌 변형을 겪었고, 여전히 감정이 소거된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결단했다. 이 행성은 이미 끝났다. 감정을 가진 이들이 다시 문명을 건설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그들은 우주선에 몸을 실었고, 수십 대의 우주선들은 ‘침묵의 행성’을 뒤로한 채, 미지의 우주로 나아갔다. 행성은 여전히 고요했다. 말없는 인류들, 감정이 사라진 도시, 생각으로만 소통하는 인류들만 남긴 채로.
“브로는 뭐임? 새로운 행성을 찾은 후손?”
“아닙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감정을 가진 이들 중 행성에 남은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난 자들과 교신하며, ‘침묵의 행성’에서 인류의 감정을 되살리기 위한 치료방법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럼, 남겨진 자들 중 일부? 아님 그들의 후손인가?”
에로프는 남겨진 자들의 후손이 아니었다. 감정을 잃은 인류의 인공부화 방식으로 태어난 드문 케이스였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류의 감정 치료는 진척이 없었고, 데이터를 통해 이해시키는 감정 학습은 한계가 있었다. 행성의 인류는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던 중 윤성은 ‘완전한 문명’에서 죽음조차도 유예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 또한 유예한다 하지 않았남?”
“유예일 뿐 영원할 순 없습니다. 인간보다 평균 2배 이상 길게 유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행성을 찾으러 떠난 이들은?”
“일부 우주선과 계속 교신은 하고 있지만 아직 적당한 행성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미 오래전 일입니다. 대부분의 우주선은 사고로 교신이 끊긴지 오래됐습니다. 행성에 남겨진 자들은 이미 사망했고, 그들의 일부 후손들 만이 문명을 유지해 나가고 있습니다.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우리 인류는 곧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윤성은 에로프의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놀랍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이들이 테러와 전쟁 그리고 인류의 감정까지 말살시키는 일까지 벌이다니. 에로프가 자신의 감정과 상황에 대해 질문하는 이유가 비로소 이해가 됐다. 윤성은 질문하는 존재, ‘외계인’에서 어느덧 대화하는 존재 ‘브로’로 에로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 이 소설은 AI와 협업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