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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피곤한 변주곡, 감정 <하>

다섯 번째 염탐

by B급 사피엔스

윤성은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차마 못 했던 최후의 수단을 꺼낸 것이다.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미 10분을 넘게 상황을 이해시키고 설득했다. 물론 업체도 억울할 만했다. 그러나 윤성도 오늘 중으로 업체와 타협점을, 아니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해야만 했다. 핸드폰 너머로 정적이 흘렀다.


“차장님. 이거 너무...”

“네네. 부장님. 제가 생각해도 너무한데요. 업체 바꾼다는 말씀은 제가 안 드리려고 했는데, 액면 그대로 전달해야만 할 것 같아서...”

“하... 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뭐 일 이년 한 사이도 아니고...”


윤성은 눈을 질끈 감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부장님. 오늘 중으로 보고해야 돼요. 안 그럼 박상무가 그런 줄 알겠데요. 죄송하지만 내부적으로 결정해서 최대한 빠르게 오늘 중으로 연락 주세요.”

“아. 차장님. 저도 입장이라는 게 있죠. 책임지라는 것도 그런데, 오늘 전화해서 당장 오늘까지 결정하라는 게...”


처음 입을 떼는 게 어려웠지, 한번 내뱉고 나니 그다음은 술술 나왔다.


“5시 이전까지는 연락 주셔야 돼요. 받을 경우, 향후 재발 방지계획을 추가로 요청드리게 될 거예요.”

“...”

“소주는 나중에 제가 살게요. 부장님 5시까지입니다. 늦으시면 안 돼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업체 담당자는 말이 없었다. 윤성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낮에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고 생각하며 담담한 척했지만, 밤이 되니 소화불량처럼 자신의 말과 행동이 마음 한 켠에 남아 내내 부스럭거리고 삼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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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알람입니까?”

“알람?... 그럴지도”


윤성은 에로프 말처럼 밤이 되면 감정이 변하는 이유가 스스로를 돌이켜보라고 내면의 소리가 신호를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 브로의 감정은 어떤 상태입니까?”


윤성은 자신의 감정들을 하나씩 곱씹듯 생각했다.


“글쎄. 딱 손꼽긴 어려운데, 자책감, 미안함, 안타까움 그리고 약간의 서글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자책감은 나 스스로에 대한, 미안함은 업체에 대한, 안타까움은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그리고 약간의 서글픔은 궁상맞긴 한데,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나?’ 하는 반문과 이런 현실 속에서 나도 맞장구를 치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비애?”

“가족과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까?”

“가족이라고 모든 걸 공유하진 않아. 할 게 있고, 아닌 게 있는데, 시시콜콜하게 이런 일까지 말하기도 그렇고, 말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해결을 위해서만 가족과 이야기합니까?”


윤성은 맥주를 들이켜며, 에로프를 이해하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건 아니지만... 뭐 공감이나 위로는 받겠지... 결국엔 스스로 삼키고 익숙해지는 것도 필요해.”

“인간은 힘들게 사는군요. 가족을 위해 희생도 하고, 가족이 있지만 혼자 익숙해지는 것도 배우고.”


안방에서 자고 있던 와이프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기 소리에 잠깐 잠이 깬 모양이다.


“여보. 안 자고 뭐 해? 또 술 마셔? 고만 마셔. 맨날 피곤하다면서 일찍 자야지.”


윤성에게 1차 경고가 내렸다. 맞춤 알림처럼 이맘때쯤이다 싶으면 어김없이 날아들었다.


“어어. 캔 하나만. 친구랑 통화 중. 금방 잘 거야.”


1차 경고는 비교적 간단히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행이 되지 않을 경우, 2차 경고는 공습경보 수준으로 격상된다. 윤성은 거실에 있는 가족사진을 보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에로프에게 귓속말하듯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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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들 살지. 그래서 마음에 병도 생기고, 그래도 또 사람에게 위로를 받고.”


라디오에선 들릴 듯 말 듯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절, 자주 따라 불렀던 노래였다. 잠자리에서도 침대에 누워 자장가처럼 계속 불러달라던 노래였다. 윤성이 따라 흥얼거리자 에로프가 물었다.


“음악은 감정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윤성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아이가 어렸던 때를 회상했다.


“음악은 마음속에 간직돼 있던 잊혀진 기억들을 꺼내 보여줘. 그 기억에는 어렴풋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 그래서 듣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거든.”

“브로 역시 밤이 되니까 감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감정은 인간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숨기기도 해야 하고, 표현도 반대로 해야 되고.”


둘은 밤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깊은 대화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창밖에는 계속해서 쏟아지는 빗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인간은 괜찮은 척하고 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어. 브로 말처럼 밤은 일종의 알람일지도 몰라. 자신의 가면극으로 인해, 지나쳤던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는. 그래서 밤에는 더 감정적으로 되나 봐.”

“감정은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입니다. 하지만 브로는 지금 안정적인 상태로 판단됩니다.”

“브로! 브로도 지금 모순 아닌 거!?”


퇴근길 지하철에서 그랬던 것처럼 핸드폰이 한동안 ‘치지직’ 거리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에로프의 해킹으로 핸드폰이 뭔가 전파장애를 받는 건 아닐까 하고 윤성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참 후에 에로프가 답했다.


“맞습니다.”

“감정은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어. 인간을 피곤하고, 복잡하게도 만들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그 감정들이 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니깐.”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변수와 통제되지 못하는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윤성은 에로프의 행성인 ‘완전한 문명’이 광기에 휩싸인 자들에 의해 한순간에 파괴됐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구도 마찬가지였다. 히틀러 같은 광인들에 의해 지구도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왔다. 전쟁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일정 부분은 동감해. 인간도 주체할 수 없는 탐욕, 욕망, 이기심 때문에 인류를 계속 전쟁으로 내몰았지.”

“브로. 전쟁은 감정과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다르다고? 뭐가?”

“전쟁은 감정보다는 여러 국가들의 이해관계나 손익에 따른 비즈니스입니다.”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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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 조금 놀랐다. 전쟁이란 것이 결국엔 자국의 이익을 우선한다지만, 비즈니스라는 말은 좀 섬뜩했다.


“전쟁의 실상은 정의라는 명분을 내세운 이익 추구에 불과합니다.”


윤성은 에로프의 주장이 흥미로웠다. 외계인 관점에서 인간의 전쟁을 어떻게 분석하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계속해 봐, 브로”

“전쟁은...”

“잠깐만! 잠깐만~ 맥주 한 개만 더 가져오고.”


윤성은 이야기가 쉽사리 끝날 것 같지가 않자, 캔맥주를 하나 더 꺼내 들고 앉았다. 사실 윤성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아무 이야기나 상관없었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마음을 털어버리고 싶은 날,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그런 윤성에게 오히려 에로프가 말동무가 되어 주고 있었다. 창밖으로 굵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대화는 또 전쟁이라는 대화로 옮겨가고 있었다.






※ 이 소설은 AI와 협업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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