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염탐
원래 투자 기질이 강했던 서대리는 그 일을 계기로 더 위험한 코인의 길로 뛰어들게 되었고, 지금은 인생 한방을 노래 부르고 사는 지경이 되었다. 어차피 그간 모았던 전 재산을 날리고, 그 덕분에(?) 파혼까지 하게 되니, 남은 건 ‘인생 한방!’ 그것밖에 없다는 식이었다.
“모를 일이지. 누가 또 얼마나 손해를 봤을지?”
“전쟁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자본의 재분배는 필연적입니다.”
“누구에게 분배되었는데?”
“전쟁의 설계자들입니다. 침략, 국토, 전쟁 물자, 무역, 전쟁배상금. 그들에겐 이익이 없으면 전쟁도 없습니다.”
“그건 현대에나 그런 거 아닌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도 강대국들은 식민지 개척이라는 대규모 약탈 시스템을 세계 곳곳에 설치했습니다. 스페인은 아즈텍과 잉카제국을 침략해 금과 은을 대량으로 약탈했고, 이는 유럽 금융의 핵심 동력이 됐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 실상은 해가지지 않는 대영 침략국이었다. 에로프는 계속해서 제국주의 침략 사례들을 열거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서해안과 브라질을 침략해 사탕수수와 커피 농장을 건설했습니다. 대규모 노예를 수송했으며, 노예무역은 주 수익원이었습니다.”
윤성은 설탕과 커피가 과거 식민지 개척으로부터 본격화된 부산물이란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 식민지 지배의 영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었고, 윤성 또한 매일 같이 그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영국은 중국과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인도의 아편을 밀수출했고, 청나라가 이를 단 속하자 두 차례 아편전쟁을 일으켜, 홍콩을 빼앗고 불평등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아편전쟁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전쟁이었다. 아편 단속을 빌미로 전쟁을 일으키고 국토까지 빼앗다니. 조폭도 이렇게 막무가내로는 못할 짓이었다.
“당시 영국 동인도 회사의 이사회 회의록은 철저하게 수익성과 무역 독점에 초점이 맞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문맹 국가의 근대화’ 명분을 내세워, 침략국의 통제와 수탈을 설계했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경제적 이익을 장기간 유지하기 위한 전쟁 명분으로 포장하기에 매우 유효했습니다.”
“범세계적 범죄 연합 조직이었네.”
윤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전쟁의 명분은 항상 근대 문명의 전파와 개혁, 세계질서 유지였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강자만을 위한 질서 재편과 자원의 이동이었다.
“브로가 살고 있는 한국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갑자기?”
“한국은 1953년부터 휴전 상태입니다. 종전이 선언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쟁도 하지 않잖아?”
“전쟁도 없고, 평화도 없는 이 상태는 지속 가능한 긴장 상태입니다. 이 긴장은 지정학적 수요를 생산하며, 이해관계자들에게 일정한 이익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이익?”
“분석해 보면 군비 산업의 지속성과 위협의 유지, 중국과 러시아의 완충지대, 한국 내부의 산업구조와 정치 동력, 북한 내부 체제의 경제적 안정성. 이런 지속 가능한 긴장 상태는 곧 지속가능한 이해관계 구조입니다.”
“전쟁은 없지만, 그 가능성이 이익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지금 체계에서 이익을 취하고 있다면, 그 구조를 바꿀 이유는 없습니다.”
윤성은 들고 있던 캔맥주를 마저 비우고, 캔맥주를 꽉 쥐어 찌그러트렸다. 한국의 분단 현실을 짚은 에로프의 분석은 상당히 논리적이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이미 수십 년이 흘렀고,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를 일이었다.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통일의 필요성은 점점 낮게 나타나고 있었다.
비도 잦아들고 거실엔 정적만 감돌았다. 윤성은 맥주를 마시려다 빈 캔인 걸 확인하고, 냉장고에서 다시 캔맥주를 하나 더 꺼내 들고 앉으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원시시대는?”
“고고학적 분석에 따르면,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공존했던 시기에 집단 간 충돌 흔적들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더 나은 사냥터, 풍부한 열매, 생존을 둘러싼 경쟁이었습니다. 근현대의 문명화된 전쟁처럼 체계화되진 않았지만, 생존 자원, 영토 장악, 종족 번식, 본질은 비슷합니다.”
에로프가 화면을 띄웠다. 원시시대 동굴벽화처럼 전쟁 벽화가 재구성된 장면이었다. 한 무리의 사피엔스들이 창과 돌도끼를 들고, 언덕 위에서 아래 계곡으로 접근하는 낯선 무리를 주시하며, 금방이라도 공격할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전쟁은 본능에 가까운 비즈니스 네. 트로이전쟁 같은 낭만은 존재하지 않는 건가?”
“브로, 트로이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찬가지라고?”
“트로이전쟁은 헬레네 왕비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트로이가 ‘헬레스폰트’를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헬레스폰트는 유럽과 아시아,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해협이자 전략 요충지였습니다.”
트로이는 헬레스폰트 해협 동쪽에 위치해 번영을 누렸고, 당시 이 해협은 흑해 연안의 식민도시와 그리스 본토를 연결하는 상업상의 핵심 관문이었다. 배를 세워 물자를 확인하고, 관세를 받고 통행료를 징수하는 알짜 땅이었다.
“헐. 그럼 헬레네는 핑계고, 통행료가 진짜인 거? 와~ 빵형 나온 트로이전쟁 찐 재밌게 봤는데, 홀딱 속았구만... 근데 브로, 비즈니스도 결국은 탐욕이라는 감정에서 시작되는 거 아닌가?”
“탐욕에서 시작되겠지만 전쟁은 숫자입니다. 숫자는 감정이 없습니다.”
감정 없는 숫자. 윤성은 그게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자연과 인간이 희생되든 말든 숫자는 감정이 없을 테니 말이다. 윤성은 말없이 캔맥주만 들이켰다. 왠지 세 번째 캔맥주는 더 씁쓸하게 느껴졌다.
“브로도 음주를 즐기는 편이군요.”
에로프의 말에 윤성은 원샷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윤성은 개운하다는 듯이 트림을 한바탕 쏟아냈다. 벌써 3캔째, 평일치고 많이 마신 편이다. 한동안 바닥에 놓인 빈 맥주캔만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윤성은 술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고, 마음은 느긋해지고, 가라앉았던 기분도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었다. 윤성은 술기운이 올라오면, 세상이 조금 천천히 움직이는 듯이 느껴지는 기분이 좋았다. 에로프의 말에 뒤늦게 윤성이 장난처럼 말했다.
“술도 감정만큼이나 모순적이거덩~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과 술은 절대로 끊으려야 끊어낼 수 없는 그런 불가분의 관계고!”
“어떤 부분이 그렇습니까?”
술기운에 흥이 오른 윤성은 핸드폰을 얼굴에 바짝 가져다 대고, 핸드폰이 에로프인 것인 양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건 말이지!”
※ 이 소설은 AI와 협업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