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라진 일 년 반, 만 7살이 2학년이 된 사연

그땐 그저 현실에 충실했을 뿐

by 새록

1994년 3월.


유치원 선생님은 아이의 엄마를 호출하고도 내내 아이를 주시했다. 아마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줄 만한 단서를 더 찾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이가 집을 떠나 이모집에 잠시 동안 머물며 다니게 된 유치원에서는 교구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놀잇감을 꺼낼 때 자신의 명찰을 교구장에 붙여놓고 놀잇감을 꺼내가고 반납할 때 명찰을 다시 떼어가야 하는 과정이 있었다. OO이가 OO교구를 사용하는 중이라는 일종의 표식 행위였다.


그런데 보통의 유아들은 놀이에 집중한 나머지 처음 놀잇감을 집어온 교구장에 명찰을 붙여놓고는 이쪽 가서 다른 놀이를 하고 저쪽 가서 다른 놀이를 하기가 일쑤였다. 명찰은 자연스레 바닥에 버려지거나 엉뚱한 교구장에 붙어있는 채로 말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다섯 살 유아들에게는 벅찼는데, 아이는 놀이시간 내내 주인 없이 교구장에 붙어있는 이름들을 떼서 주인을 찾아다 주기 바빴고 한시도 놀이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듯 보였다.


새로운 유치원에 적응하게 된 아이는 낯설 새도 없이 분주했다. 해가 바뀌어 겨우 다섯 살이 된 아이는 교실 바닥에 친구들이 떨어트린 머리핀, 명찰 등을 주워 주인을 찾아주고 널브러진 교구나 책을 크기 순서대로 정리하느라 바빴다. 어떤 때는 친구들을 모아놓고 책을 읽어주기도 했고, 놀이터에 나가서는 그네를 타지는 않고 친구들을 밀어주느라 3월의 꽃샘추위에도 땀을 뻘뻘 흘리곤 했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놀이터에서 아이와 어울려 놀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새로운 친구랑 노는 거 재미있니?” 친구들은 목청이 떨어져라 그렇다고 대답했고, 이번에는 아이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새로운 친구들이랑 노는 거 재미있니?” 아이의 대답은, “그냥 놀아주고 있어요".


언젠가부터 꽤 궁금해졌던 아이의 엄마란 사람을 드디어 처음으로 만나게 됐다. 그런데 아이의 엄마는 독해 보이 기는커녕 너무나 마르고 앳된 모습이었고 잠시 동안이지만 독한 계모의 모습을 상상한 스스로가 무안했다. 부러질 듯 가는 팔로 갓 출산한 둘째 아이를 감아 든 아이의 엄마에게 아이의 놀이 모습이 '일반적이지 않다'라고 말하자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또래랑 노는 것보다 손 윗사람들이나 어른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고 했다. 또래보다 글을 빨리 익혀 다른 놀이보다 책에만 관심을 보이며 또래가 좋아하는 인형놀이, 역할놀이 등을 뒷전으로 해 친구들과 점점 멀어졌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아이를 윗반으로 월반시키는 것을 권했고 그렇게 아이의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이 두 어른의 결정으로 순식간에 압축되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유치원 졸업을 끝으로 8살이 되던 해, 아이는 7살이 되었다. 생일이 빠르지도 않고 아직 만 5세인 절반짜리 7살이었다. 친구들 앞으로는 취학통지서가 날아오는데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이 통째로 사라진 아이는 유치원도, 학교도 갈 곳이 없었다. 아무도 월반, 그 후의 일을 이야기해주지 않았고 주변에 이런 일을 물어볼 사람도, 방법도 없었다. 결국 아이의 엄마는 공립, 사립 할 것 없이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란 초등학교에는 모두 전화를 돌려보았지만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 5세 밖에 되지 않는 아이를 받아주는 학교는 없었다.


그러던 중 교차로에서 우연히 보게 된 어떤 사립초등학교의 홍보글을 보고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일단 아이를 데리고 와보란다. 아이의 엄마는 서둘러 아이의 손을 잡고 대전행 기차에 올랐다. 찾아간 학교에서는 아이가 글을 뗐는지, 셈은 하는지 등 몇 가지를 물어보더니 3월부터 입학시키라고 했다. 그 길로 두 아이와 엄마는 아빠와 떨어져 대전에서의 삶을 살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자 아이의 엄마는 다시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란 초등학교에 모두 전화를 걸어보기 시작했다. 만 7세 반 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2학년으로 전학시키기란 쉽지 않았고 아이의 사촌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교무실에 찾아가서 사정하기를 몇 번째, 결국 아이를 교장선생님 앞에 데려갈 수 있게 되었다.


펄펄 뛰며 반대하는 교감을 뒤로하고 교장선생님은 아이가 적응하지 못할 경우 즉시 유급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아이 엄마의 확언을 받았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길 수 십 번째, 어느덧 너덜너덜해진 서류봉투를 받아 든 교장선생님은 이 비쩍 마른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느껴졌다.


모든 교직원은 만 7살에 2학년이 된 아이에 대해 하나같이 걱정을 했고, 같은 학급 학부모들은 교문 앞에서부터 아이를 보고는 수군 수군댔다. 하필 여느 1학년 아이들보다 작아 가방이 걸어가듯 보이던 아이의 뒷모습이 우려를 더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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